사회마다 다른 '체중'에 따라붙는 평가들, 지겹다 이제.
20대의 나는 꽤 마른 편이었다.
키가 160대인 걸 감안하면 대략 41kg~46kg를 오가는 몸무게였으니 나는 '마른 편'에 속했다.
이 몸무게를 유지한 것이 내 의지냐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고, 일이나 스트레스가 많으면 빠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찌는 식이었다. 그러니 내게 몸무게는 스트레스 정도의 지표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는 스트레스가 심해서 두 달 동안 7kg이 빠진 적이 있었는데 더 날씬해졌다는 만족감 같은 것보다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몸에 무슨 문제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병원에 찾아갔더니 일단 급격한 체중감소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의심되니 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니 "이게 아니면 암 검진이라도 해봐야 하나..."라는 의사의 말에 덜컥 겁이 났었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고, 의사도 나도 그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빠졌나 보다 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나의 '몸무게'나 '몸매'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무엇보다도 '건강'의 영역이다.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아도 체지방률이 너무 높으면 건강하지 않은 것이니, 근육을 늘리고 지방을 줄이려 노력한다.(나는 근육량이 적어서 체지방의 비율이 높게 나온다). 몸매는 스스로 몸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자세가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와, 육안으로 지방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군살'이 늘어나면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아, 거기에 셀룰라이트가 심해지면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스트레칭 등을 좀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내 체형'과 '내 상태'에 맞는 '내 기준'을 남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건강에는 관심도 없고 끊임없이 그들의 기준으로 평가를 하고, 또 내 반응에 따라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게 뭐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렇다고 도통 좋아지지는 않는다.
나는 신장과 체중만으로 평가하는 BMI(Body mass index의 약자, 신체 질량지수)로 비만도를 보자면 되려 저체중이 나오지만, 체성분 검사를 하면 경도비만, 복부비만 등이 나오는 일이 종종 있다. 결국 내 경우를 보자면 BMI로 일률적으로 키와 몸무게만 가지고 사람의 비만도를 결정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체성분 검사의 결과에 따라 근육을 늘리거나 지방을 빼야겠다는 목표에 맞춰 식단이나 운동을 조절하는데, 이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매우 피곤한 일이 생긴다.
"너 하나도 살 안 쪘어~ 무슨 살을 뺀다고 그래?"
"너무 마르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
"지금이 딱 보기 좋아, 여기서 더 빼면 이상해져"
원치 않던 몸매 평가가 이어지는 것이다.
아... 남들한테 잘 보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만.
제 건강 제가 챙기는데 왜 자꾸 몸매 평가를 하세요.
자 여기까지가 한국에서의 일이다.
그럼 독일에서는 어땠을까?
독일에서의 내 주변인은 다니던 학교의 친구들과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고용주들 정도였는데, 독일인들은 대체로 한국인들보다는 체형이 크기 때문인지 그들은 나를 아주 작고 마른 존재로 인식하는 듯했다. 실제로 독일의 비만률은 23.6으로 우리나라의 5.5에 비하면 네 배에 가까운 수치인데, 나는 거기서 47kg 정도의 체중이었으니 그들의 눈에 나는 아주 분명한 마른 체형으로 보였을 것이다.
문제는 내 전공은 인권 관련 사회학이었고(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을 지양하는 내용을 주로 배움), 내 주변 친구들은 대체로 같은 과 학생들이었으며, 마침 그때가 Body and Health라고 몸과 건강, 그중에서 몸에 따른 차별과 Body Positivity, 즉 내 몸 긍정하기를 배우는 학기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필이면 그때,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6kg이 쪘다.
한 달에 6kg이 찐 건 어떻게 봐도 정상적인 대사활동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입던 옷들이 안 맞는 불편함은 둘째 치고, 갑작스럽게 찐 살에 튼살도 조금 생겼고 나는 몸이 아주 무겁다고 느꼈다. 많이 먹어서 쪘다면 또 그러려니 했을 텐데, 나의 먹는 양이나 신체활동에는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더 적게 먹는데도 체중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정체모를 피로감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이때 이 갑작스러운 체중 증가에 대해 "갑자기 살이 너무 쪄서 걱정이야, 왜 이러지? 이렇게 빠르게 살찌는 거 정상이 아닌데"라고 하자 내 독일 친구들은 '갑자기'와 '빠르게'는 듣지 못했는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여줬다.
"Pang, 너는 살찌지 않았어! 어떤 기준에서도 너를 살쪘다고 할 수 없어,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살이 좀 찐다고 해도 너는 여전히 아름다워, 너의 체중은 정상이고 네가 살쪘다고 느끼는 건 말도 안 돼"
"한국의 뷰티 스탠더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선 누가 봐도 너는 살찌지 않았어, 바보 같은 소리 마"
아... 그렇다. 그들은 나를 미디어와 사회의 '뷰티 스탠더드'에 세뇌된 '왜곡된 몸에 대한 미적 감각을 가지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으로 본 것이다.
갑자기 한 달 만에 6kg이 쪘다고. 내 몸무게의 10%를 훌쩍 넘는 체중이 늘어났다고. 그런데 그게 걱정할 일이 아니야?
왜 어느 사회나 집단에서건 '살쪘다' 혹은 '살 빠졌다'를 말하면 무조건 반사처럼 외모 얘기가 나오는 거야?
내 학교 친구들은 알고 있을까 나의 체중 증가에 대한 걱정이 반드시 미적 기준과는 관련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내 몸 긍정하기'가 내 몸의 어떤 이상신호도 무시하고 긍정만 해주기가 아닐 텐데?
결국 독일에서 나는 '살쪘다'라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정신'이 어딘가 좀 병든 인간으로 평가된 것이다. 고작 그런 말로 자신의 몸을 긍정하지 못하는, 과도하게 마른 몸을 선호하는 사회에 찌들어 자신을 망치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니. 이들은 하나같이 내게 "너는 아름다워,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칭찬'과 '긍정'을 가장한 외모 평가와 그 말속에 숨은 내 가치관이나 정신상태 평가는 꽤 불쾌했다. 내가 무슨 뷰티 콘테스트에 나간 것도 아니고, 내 아름다움과 괜찮음을 왜 너희가 평가하는데?
그래서 이러한 '칭찬'들에 되려 대단히 기분이 나빠진 나는 이것이 정상적 몸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져서 그 "괜찮다"라는 말을 전부 무시하고 곧장 병원에 갔다. 살이 갑자기 너무 많이 쪘다고, 몸이 무겁고 피로하다고 말했더니 혈당과 혈압, 심전도, 갑상선 호르몬 검사등을 했고 병명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나아지는 병이었다. 주요 증상이 체중 증가, 피로감, 무력감, 근육통 등등인 병이었으니 어쨌든 나는 내 체중증가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좋아할 일은 아녔지만). 남들의 기준에서 "괜찮다" 소리를 듣고 방치했으면 나는 원인을 찾지 못하고 한동안 끊임없는 체중 증가와 피로감을 안고 살아갔겠지.
Body positivity, 내 몸 긍정하기 좋단 말이야.
근데 나는 건강한 내 몸이 좋고, 예쁜 몸보다 일단 건강한 몸을 갖고 싶어.
체중이나 몸매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한다고 외모든 정신이든 남들에게 평가받고 싶지 않아!
한국과 독일에서 같은 주제로 다른 부분을 평가당하며 내가 느낀 건,
어느 사회나 기준이 다를 뿐이지 '체중'을 건강보다는 '외모'에 관련한 대상으로 본다는 것. 몸의 모양새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 (뭐 같은 '몸' 주제라도 장기나 눈알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엔 좀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글을 마치자면,
여러분, 몸이든 정신이든 남에 대한 습관적 평가를 멈추세요.
특히나 '몸으로 평가하기'는 당신이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상대의 인생에 하등 쓸모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