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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g Lee Jan 14. 2022

이력서에 이 공백기는 뭐야? 수상하다 이 사람...

경력 단절기가 있다면, 어떻게든 마땅한 이유를 붙여야만 한다.

서른을 훌쩍 넘어오는 과정에서 나는 내 전공과도 관련이 없으며, 서로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직업 여러 개를 거쳤다. 단순 이직만 한 것이 아니라, 직무도 업종도 바꿔왔기 때문이다. 남들이 전문성 있는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시간에 나는 곧 승자가 정해질 젠가처럼 빈틈이 많고 위태로운 이력서를 만들고 있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넌 왜 그렇게 끈기가 없니.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 하지만 다들 참고 다니는 거야"라는 논지의 말들을 참 많이 했다. 다들 참고 다닌다라... '먹고 살기'에 대한 묵직한 무게가 담긴 이 말은 그들의 눈에 비치는 나의 '가벼움'에 대한 질책의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간절히 원할 자리들을 나는 기껏 얻어놓고서는 참을성 없이 금세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하지만 이건 내가 금수저라 먹고사는 게 중하지 않다거나 시한부 인생이라 긴 미래를 생각지 않는다거나 그런 상황이 아니고, 사실 가볍게 하는 결정도 아니다. 뭘 처음부터 새로 배우고 다시 구직 시장에 뛰어드는 게 쉬운 일일 리가 없잖아. 근데 나는 이게 내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데 어떡해. 의식주는 해결해도 주 40시간이(물론 40시간일 리도 없지만) 괴로우면 나는 의문이 생긴다고. '과연 삶의 대부분이 즐겁지 않고 의미없다면, 반드시 생존해야만 하는 마땅한 이유가 있는가?'(한다면 왜, 그리고 언제까지?)


"다들 참고 다니는 거야"에서 참는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 고압적인 상사, 과도한 업무, 불합리한 시스템,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 적은 보상, 형편없는 복지, 출근길 지옥철 등등 각자가 참는 부분은 다 다를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참는 이유는 대부분 '생존'을 위해서. 우리 중 대부분은 무슨 일이든 해서 어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사회에서 생산적 존재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직업이 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얼마간의 불행은 참아야 하는 일이 된다. 생존 자체가 목표가 되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전적 보상'이고, 나도 과정은 어떻든 이 보상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것에 만족하려 애써왔다.


그렇게 매달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에 쫓기며 꽤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일했다. 소질과 적성은 사치로 여기고 지금 내 스펙에 가장 높고 안정적인 수입을 안겨줄 일을 했다. (하고 싶은 일에 잠시 도전했다가 대출 끼고 자취하는 나로서는 생존이 안 되는 월급에 포기했었지) 사범대를 나왔으니 취업이 가장 용이한 교육 관련 일을 계속했는데, 수입과 별개로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세상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그사람들은 그래서 만족하고 산대? 그 분야에서 성공했대? 나는 그럭저럭 업무 평판도 좋았고, 아무도 내게 더 큰 걸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뭔가 더 가슴뛰는 일을 해서 마음도 풍족한 삶을 살고싶단 말이야.


그러다 결국 당장 월세와 대출원리금이 벅차더라도 직무전환이라는 '가볍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일단 이전처럼 살아서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확실해졌으니까. (하는 일이 단순히 돈이 별로 안 되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혹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직무전환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이 경우에도 직무전환 과정은 그걸 반드시 보장하지 않는다)

매슬로의 욕구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피라미드의 아래쪽부터 차례로 욕구를 채워나가고 그 마지막에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생리적 욕구나 안전의 욕구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는데 자아실현부터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기질/성격 검사 결과에서도 나는 안전과 애정, 인정에 대한 욕구가 낮은 편이긴 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첫 번째 생리적 욕구를 채우고, 안정된 직장으로 안전의 욕구를 채우며, 세 번째 애정과 소속의 욕구는 가족, 연인, 직장동료로 등으로부터 애정과 소속의 욕구를 채운다. 그러고 나면 존중 혹은 존경의 욕구,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채워져야 하고, 마지막 종착지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


나처럼 자아실현의 욕구가 다른 것보다 우선이 되면 안전하게 생존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는 일이 자아실현과 관련이 없으면 삶은 그저 돈과 인생의 일부를 맞교환하여 연명하는 것이 되고.(심지어 내다 판 내 인생의 조각이 헐값이면…) 직장의 지향점이 그저 수익뿐이고 나는 그를 위한 도구 중 하나며, 이게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없어보이는데 그래도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한다니.


그렇게 나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더 즐거운 일을 찾아 서로 관계없는 직무와 업계로 몇 번이고 자리를 바꿨다. (이게 된다고? 싶지만 이전보다 연봉을 낮추거나 나의 직무/회사 선택에 대한 의지와 직무능력을 증명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 가능하다)


 과정에서 이력서에는 공백들도 생겨났다. 같은 업계, 직종으로 '이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입'으로 다시 시작하려면 준비 시간이 필요했고, 보통 풀타임 일을 하면서는 병행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부했었다. (학원 강사라던가 과외라던가, 독서실 알바나 서빙도 하고. 대학 입학과 함께 학자금 대출 및 생활비를 직접 벌어 써서 열아홉 이후로는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많은 면접에서 (나의 용감한 도전의 증거인) 이력서의  공백기들이 면접관들에게는 부정적으로 판단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솔직히 나는 이 '공백'을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쓸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직무와 연관 없는 생존활동인 아르바이트를 이력으로 쓰기도 뭐하고, 이직 준비를 이력으로 쓸 수도 없으니 공백으로 표시했을 뿐이었는데, 거의 매번 나는 이 공백을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리둥절했다. 왜 이력이 아니라 공백에 대해 이렇게까지 묻지?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날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 같기도 하고. 휴학 2년은 뭘 했을까? 졸업하고는 대체 뭘 한 거지? 일하다 갑자기 관두고 6개월 후에 외국엔 왜 간 거야? 다 궁금할 수도 있지. 내가 중간에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갔다 왔을 수도, 알코올 중독증으로 폐인이 되어 보냈을 수도, 병에 걸려 병원에 누워있었을 수도, 혹은 어느 영화처럼 어딘가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다가 탈출했을 수도 있고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에 빠져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잖아? 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수상한 공백은 이력서의 채워진 부분에 서술된 내 직무능력과 경력보다 더 중요한 부분으로 보일 수 있지 뭐.


하지만 면접에서 여러 직업을 오가며 생긴 공백에 대해서 설명하는데만(약간 변명하는 모양새가 된다) 주어진 시간의 반 정도를 쓰고 나면 이게 맞나 싶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 어떤 일을 해서 나도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 시간, 그런 능력을 가지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라고 간단히 설명하면 나는 그걸로 타인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것 보단 직무관련된 내 경험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도 되는걸까.


대부분의 회사는 이력서에 공백기가 없는 인재를 선호한다. 끊임없이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 쉬지 않고 레벨업을 해 온 그런 사람들의 성실함에 점수를 주는 것일 테지.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만약 이력서에 공백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경력상' 혹은 '이력서상'공백기에 세상에서 사라졌던 사람들은 없다. 이력서에 적지 않은 시간에도 사람들은 다 나름의 삶을 살았겠지. 여행을 다녔을 수도,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졌을 수도, 아이를 키우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경력을 쌓을 때 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성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앞으로 이 공백을 긍정적으로 어필해보려고 한다. 남들 같은 이력서는 안 되겠지만 더 나은 일과 삶을 위해 고민해왔던 시간, 공부하거나 방황했던 시간, 지친 나를 돌보았던 시간 등도 내 '이력'으로 서술해보면 어떨까. (채용담당자 입장에서 왜 이런 tmi를..? 일 수도 있지만 이력서에 적지 않으면 어차피 면접에서 물어볼 거잖아)


'경단녀'라는 말이 참 나와는 관계없는 사회문제 중 하나인 것처럼 느껴졌던 때가 있었는데, 경력의 단절을 실제 구직시장에서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알고 나니까 경력단절녀라는 용어와 그 줄임말까지 생길 만큼의 ‘단절’을 부정적으로 평가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마음이 쓰인다.


나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

아이와 함께 가족을 만들어 간 시간

세상을 둘러보며 시야를 넓혀간 시간

취미에 푹 빠져서 행복만을 추구해 본 시간

가슴 뛰는 일을 찾아 자아 찾기에 나선 시간


이런 시간들이 이력서에서 단순한 경력의 '단절'로 평가되지 않고, 개인의 입체성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게 매우 사적인 일이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일 지라도 그게 쉽게 그 사람의 흠이 되지 않기를. 이력서에 비어있는 기간보다는 채워진 시간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그리고 또 언젠가는 '공백' 혹은 '여백'에 더 관대 해지는 것을 넘어서, 일을 멈추는 시간이 있는 것이 당연한 세상도 오면 좋겠다.


(*지원자가 공백기에 범죄로 수감생활을 했는지 등이 걱정될 경우엔 범죄경력조회동의서를 요청해보심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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