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멘탈 심리학자 Jan 11. 2023

어떻게 대화해야 잘하는 것일까

말하는 것 너무 어렵다

새해가 밝아 엄마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통화는 약 3분간 이어졌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는 기분이 상했다. 엄마는 대체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이 어떤 것이든 그 안에서 기가 막히게 트집을 잡아낸다. 트집 잡히는 주제는 매번 다르지만 패턴은 같다. 내가 하는 말을 온전히 다 믿지 않고 ‘네가 무슨’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다. 말을 하고 싶어도 상대방을 위해 삼켜야 할 때가 있는데 그게 어렵나 보다.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면 한두 번은 조금 신경 쓰는 듯해도 다시 예전으로 귀신같이 돌아간다. 나도 안다. 엄마는 바뀌기 힘들다는 걸. 아는데 매번 상처받는 것을 보면 나도 참 징하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다. 엄마가 살아온 시대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하늘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식에게 굳이 예의를 갖춰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나는 그러면 안 된다. 새해에 겪은 이 에피소드로 과연 말을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상념에 빠졌다.





말과 관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크게 무리 없이 잘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말이 클라이언트, 동료, 상사 등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생각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하급자 일 때는 발표, 보고, 회의, 동료들과의 대화 등의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하는데 실수하고 깨지며 수정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말에 대한 스킬과 매너가 늘 수밖에 없다. 상급자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갑질’이 이슈인 만큼 요즘 시대에서는 내 마음대로 아랫사람에게 말을 막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강제적으로라도 매너를 갖춰 말하는 스킬을 유지한다. (물론 마음 내키는 대로 아랫사람에게 막 말하는 갑님들도 여전히 많긴 하다.)


말을 할 때 일반적으로 조심해야 할 것을 생각해 봤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상대방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구구절절 하소연 금지, 비난, 조롱, 트집, 지나친 간섭 금지,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자기 말만 하는 것 금지, 화났다고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퍼붓기 금지, 자신감 없는 작은 목소리로 얼버무리기 금지, 그리고 뒷담화.. 아 뒷담화는 되도록이면 안 하면 좋긴 한데 뒷담화 없는 세상이 가능한가. 이건 그럼 낄끼빠빠가 중요한 필요악 정도겠구나. 와 당장 생각나는 게 이 정도이니 많기도 많다. 대화에 관한 구체적인 스킬을 배우려면 책이든 강의든 정보는 흘러넘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듣고 상대가 원하는 대화의 맥락에서 말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기본이 제일 중요한 법이다. 일터에서 윗사람이나 클라이언트   목숨줄을 쥐고 있는 사람 앞에서 말할 때는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철저히 따져보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그만큼의 에너지를 들여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같다. 특히 듣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이미 일터에서 듣는 것으로 시달렸기 때문에 퇴근  들으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는 것을 많이 봐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전달하는 것이 대화인가? 관계에서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강조되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성이 간과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 자녀 간에 소통이 중요하다고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이 바라는 것과 자녀가 해야  일을 일방적으로 다다다다다다 말하는   보고 아이가 불쌍하게 느껴졌을 때가 많았다. 비슷한 예로 부부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상대에게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끊임없이 말하는 것부터 상대에 대한 불만  부정적인 감정까지 일방적으로 모두  쏟아부어 상대를 지치게 하는 것을 보아 이게 무슨 소통이고 대화인가 말로 하는 고문이지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또 다른 예로 흔히 여자와 남자가 대화할 때 여자는 공감, 남자는 해결책을 바란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통계적인 경향성으로 보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 보면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에 맞게 말하는 것이다. 여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냉철한 피드백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남자가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힘내! 우쭈쭈’ 이러면 빡친다. 반대로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한껏 지쳐있는 남자에게 냉정하게 질책하고 잔소리 해대면 그 남자 아예 주저앉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말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듣는 것과 관련해서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목에 문제가 생겨 2-3주간 말을 거의 못 했던 때였다. 나는 말을 못 하니 사람들의 대화를 제삼자 입장에서 강제로 관찰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화할 때 상대방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채 자기 말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뭐라 말하든 그 말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자기 생각대로 말을 이어간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대화가 어찌저찌 이어가고 대화의 마무리도 각자 자기 입맛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이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말을 정말 안 듣는구나라고.


나도 일할 때를 제외하곤 안 듣는 사람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 아니 더 나아가서 어쩌면 엄마의 대화 습관을 물려받았을지 모른다. 아니 그랬을 확률이 높다. 마치 학대 가정의 아이가 폭력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해 학대 부모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사적으로 교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 주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새해부터 그런 경험을 한 데에는 다 뜻이 있겠지. 이제부터라도 더 조심히 말해야겠다. 나이 들수록 사는 게 조금은 더 쉬워질 줄 알았는데  노력 없이 그냥 흘러가는 건 아무것도 없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는 게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분통 터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