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에 담긴 마냥 예쁘지만은 않은 마음
이민지에 도착하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돈 버는 얘기가 아니라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 문제 말이다. 내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음식점이 다양하게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식당과 한국슈퍼도 이제는 비교적 흔해졌다. 하지만 이민 초기에는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먹거리를 제대로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한 끼 한 끼 살기 위해 때우는 수준이랄까. 이때 먼저 정착한 한국 사람들로부터 이런 종류의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한다. “요새 뭐 먹고살아? 이거 내가 만든 건데 한번 먹어봐.” 일단 고맙다. 감동적이다. 그런데 마냥 고맙지만은 않다. 고마운데 고맙지 않은 그런 복잡한 느낌이랄까? 반찬은 단순한 물건일 뿐인데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선물이었다고 한다.
반찬 선물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먼저 단순하게 맛이 없거나 입맛에 안 맞는 경우이다. 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준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원치 않는 선물을 받은 경우라면 교환, 환불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무료 나눔, 정 안 되면 집에 박아두기라도 하는데 반찬은 이것이 안 된다고 한다. 좋은 말로 사양했는데도 굳이 싸주면 냉장고 자리만 차지하게 되고 결국은 쓰레기통 행이 돼버린다. 다른 물건과 달리 음식을 버릴 때면 뭔가 크게 죄짓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반찬 뒤에 담긴 주는 사람의 속내 때문이다. 처음 낯선 곳에 정착할 때면 마음이 복잡하고 어수선해지기 마련이다. 세상에 나 홀로 뚝 떨어진 것 같은 버려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을 때 마치 가족처럼 먹거리를 챙겨주면 내 마음으로 무엇인가가 훅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러면 마음적으로 굉장히 의지하게 된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말이다. 심하게 말하면 종속되는 느낌이라고까지 한다. 만약 주는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별다른 의도 없이 베푼 것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 실제로도 좋은 마음으로 챙겨주시는 좋은 분들의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꼭 그렇게 좋은 분들의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중에 보니 반찬을 미끼로 자기를 구워삶아 마음껏 휘두르려 한다는 것이다. 이제 막 이민 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먹을거리 챙겨주는 착한 이미지를 챙겨가는 것은 덤이다. 그것에 넘어가지 않고 거부하고 거리를 두면 뒷말이 돈다. 내가 자기한테 반찬도 챙겨주고 알뜰살뜰 챙겼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몰아서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반찬만 놓고 보면 밖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그냥 물건일 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참 이상하다. 보통 선물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고 한다. 만든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것이라 그런가 아니면 사람 입으로 들어가서 그런가 사람의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도 양가 부모가 자녀부부에게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는 경우가 있다. 정작 부부는 주중에 회사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주말에는 외식에 의존해 집에서 잘 먹지도 않는데 말이다. 결국 버리게 된다고 극구 사양하는데도 손에 들려주셔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요 없는 반찬을 처리하는 것도 일인데 그것에 상응하는 효도까지 요구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한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감히 그럴 수 있냐며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자기 부모 혹은 배우자의 부모와도 이런데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반찬 갈등이라니. 까놓고 말해서 예전처럼 못 먹고사는 시대가 아니다. 받는 사람이 사정사정한 것도 아닌데 굳이 줘 놓고 그것을 미끼로 상대방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은 폭력과 다름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