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이들을 감당하기 힘든 이유
나이를 먹을수록 곁에 두는 사람에 대한 기준은 변할 수 있다. 나는 삼십 대까지 말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괜찮았다. 내가 말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견디기 힘들어졌다. 정확히는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유쾌한 투머치토커가 아니라 온통 자기 말만 늘어놓는 기빨리는 투머치토커가 힘들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중장년 이상의 세대에서는 흔한 고민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 에너지가 달려 듣는 것이 갈수록 힘들게 되면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예외상황이 있다. 아주 힘든 특정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살려고 주위 사람들에게 구조 요청으로 자기 말만 하는 경우는 제외이다. 그렇다면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 악성 투머치토커는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단순하게 보자면 그들은 자잘한 스트레스라도 겪으면 대화 상대에게 그것을 그저 쏟아내는 것이다. 마치 입으로 음식물이 들어갔는데 소화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밖으로 배출되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스트레스 자극이 들어갔는데 이것을 자기 안에서 소화 못 시키고 바로 입으로 튕겨내는 것이다. 사실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데 있어 상대방에게 모두 쏟아내는 것이 이기적이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다.
또 다른 양상으로는 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이다. 여럿이 모인 모임 자리에서 악성 투머치토커가 대화를 독점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려고 애쓰는 모습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일대일 상황에서도 이들은 상대방이 어떤 주제로 얘기하든지 간에 모두 자기 얘기로 관련 지어 대화를 자기 쪽으로 끌고 온다. 얼마나 자기 안이 공허하면 자신의 존재감을 말로 일일이 드러낼까 싶다.
어릴 적 교육을 잘못 받아 습관으로 굳어진 경우도 있다. 부모가 밖에 나가서 꿀 먹은 벙어리 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고 교육한 것이다. 또는 말 잘하는 것이 지능발달에 좋다고 말 많이 하는 것을 어릴 적부터 과하게 유도하기도 한다. 물론 아동이 어휘를 다양하게 쓰고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언어적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교육이 뒷받침 안된다면 오히려 말만 많은 이기적인 수다쟁이로 자랄 가능성도 크다.
이렇게 투머치토커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했다만 사실 말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아직 어리거나 사회 경험이 적어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라면 괜찮다. 배우고 고치면 되는 것이다. 또는 앞서 말했듯이 특수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 살기 위해 누구라도 잡고 버둥거리는 경우도 괜찮다. 그런 거라면 주위 사람들이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듣고 또 들어줄 수 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도 못해줄까. 하지만 악성 투머치토커 문제의 핵심은 자기중심적인 미성숙한 태도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러고 있다면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런 악성 투머치토커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의 경우 어느 정도 참다가 자신의 한계점을 넘어가면 거리를 둔다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내 생각이 정답도 아니고 하나의 의견일 뿐이지만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선한 마음으로 포용하려 했던 내 마음이 시궁창에 처박히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힘들 때 투머치토커의 무신경함에 데어 크게 상처받을 수 있다. 내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