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함은 놓지 않겠다
순수한 어린 시절에는 노력이 사는데 제일 중요한 줄 알았다. 아니 쥐뿔도 없이 태어나 그런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유전자와 돈의 위력을 실감한다. 세상에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나 보다. 사람들이 공부 또는 성취에서 어떤 요인이 중요한지에 대한 노력 (환경)과 유전에 대해 끝도 없이 논쟁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이 이슈는 심리학에서 꽤 오랫동안 논란 속에서 연구되 온 주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문적이든 개인의 경험이든 양 측 다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욕심 많게 태어난 죄로 그저 노력만이 살길이다라는 태도로 살아왔다. 이런 내가 노력타령에 질색팔색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단, 내가 말하고 픈바는 자신의 목표와 꿈에 한 발짝 한 발짝 성실하게 다가가는 건강한 의미의 노력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악영향을 미치는 투머치한 노력의 강조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노력이 중요하다고 믿는 분들은 너무 노여워마시라.
‘하면 된다’라는 이 진부한 표현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노력만 하면 천재들의 리그인 세계적인 석학과 경쟁도 가능하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저 한국의 수능 정도는 충분히 노력으로 성취 가능한 수준이니 핑계 대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뜻일 것이다. 아무래도 예체능 시장에 비해 공부는 먹고사는 길이 널려있어 한국에서 태어나 성실하게 공부하면 굶어 죽는 일은 그렇게 많이 없을 것도 같다. 공무원 시험만 해도 고시류 제외하고는 죽어라 하면 못 붙을 것도 없으니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투머치한 노력의 강조는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평범한 4년제 입학 성적 정도인 아이가 죽어라 노력하면 인서울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가까스로 올라서면 이제 스카이가 보인다고 마구 등을 떠민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스카이 가보자 또 죽어라 노력한다. 노력과 운이 합쳐져 스카이에 도달했다고 해도 이게 끝일 리가. 요새는 학벌이 아니라 전문직 세상이라고 메디컬을 목표로 하라고 등 떠민다. 끝이 안 보인다. 메디컬 세계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그곳에서 밀려나지 말라고 끝도 없이 잔소리하며 쉬지 못하게 한다. 왜냐면 노력하면 못할 것도 없으니까. 여태까지 그렇게 잘 해왔잖아.
그래. 수능정도는 충분히 노력해서 자신의 등급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왜 경쟁자가 노력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지는 의문이다. 경쟁자에게 좋은 유전자와 충분한 재력뿐만이 아니라 노력이 결합된다면 쉬지 않고 몸 갈아서 경쟁해도 될까 말까이다. 상대는 첨단무기를 장착하고 있는데 나는 맨 주먹으로 싸우는 꼴이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달리는데 뒤로 가는 억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단기로는 함빡 주고 뼈를 갈아 경쟁할 수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로 장기 레이스를 가다 보면 큰 병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한국 사회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나 발전이 바로바로 보이지 않고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타인의 노력을 후려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사회는 만만치가 않다. 한국에서 살기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가 자빠져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그 사람을 둘러싼 온갖 사람들이 참견하고 간섭 한 마디씩 얹는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산다.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과 번아웃이 세게 와서 쉬어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망치고 타인을 등쳐먹기 위해 드러누워 게으름 피우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두 번째로 투머치한 노력의 강조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성실하게 노력하며 사는 자세 너무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기가 스스로 노력하는 경우에도 과도하면 탈 날 수 있다. 과도한 경쟁으로 공부하다 또는 일하다 죽는 사람도 많다. (내가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을 많이 보다 보니 그런 케이스들만 편향적으로 보게 된 걸 수도 있다) 이 경우 스스로 압박감에 짓눌려 생을 마감하는 비극뿐 아니라 과로사도 해당된다. 또한 자신에게 투머치한 노력을 강요하는 자세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미래에 그 어떤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지닌 채 자의식 과잉 상태로 살아가게 될 위험이 있다. 또는 무언가가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에 대한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노력은 숭고한 가치를 지닌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하루하루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사는 노력이라는 가치를 강조할 것이다. 또한 자신을 성장시키는 내적 동기로 내가 원하는 바가 있을 때 계획, 실행하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다만 이것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휘두르는 폭력의 수단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말 후회 없이 열심히 했는데도 실패해 괴로웠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분명 노력이 부족했다는 세상의 채찍질도 필요하다. 하지만 수고했다는 격려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노력만큼 중요하다. 죽도록 노력해서 안 됐다고 포기하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당장 무엇인가를 해내려고 자신을 지나치게 괴롭히려고 하지 말고 뚜벅뚜벅 하루하루 성실하게 걸어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내가 세운 목표에 정말 똑같지는 않더라도 어찌어찌 비슷하게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노력조차 안 했다면 그 행로와는 전혀 다른 길에 가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인생에서 노력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