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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Oct 31. 2024

가벼운 사람이 되려고 한다.

why so serious?


괜찮아? 많이 지쳤지? 몸도 마음도..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일이라 이렇게 묻는 것도 미안하다.

아버지를 오랜 기간 간병하느라 지쳐있던 친구에게 건넨 위로의 말이었다.

아니야. 아직 버틸만해.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은데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재미있는 영상들 공유 좀 해줘.


원래도 자기 힘든 일을 많이 내색하지 않는 친구였다. 그래서 나한테 힘든 감정 다 쏟아내도 된다고 일부러 판깔아줬다. 그런데 자신은 그저 웃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이 그 친구가 현재 닥친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식인가 보다.



과거의 나는 웃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뭐가 그리 심각했는지 한껏 어깨와 눈에 힘 빡주고 진지하게만 살았다. 그때의 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내 인생에서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큰 시련이 닥쳐도 이것은 모두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니 진짜 꼴값이지 뭐야.


그것이 그때의 내가 고난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이 또한 의미가 있고 이 시련이 나를 성장시키리라. 그래서 악착같이 온갖 심리적 어려움을 나노단위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답시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하루하루가 무거워지고 나 자신은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20대 후반 즈음 예능 프로들이 한바탕 인기를 끌 무렵 조금씩 변해갔던 것 같다. 답도 없는 의미 찾기를 집어치우고 탁 털고 일어나 그냥 웃어젖혔다. 그저 넘어졌을 뿐인데 돌부리에 화내고 다시 일어서는데 의미 부여할 순 없잖아. 그저 냅다 일어서면 되는걸. 그러니까 문제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 문제 자체 때문에 내가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실제보다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해석한 내가 내 팔자를 꼬았을 수도 있었겠구나.


이제는 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큰일이 닥쳤을 때에도 일단 웃는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면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작게라도 보이는 것 같고 다시 슬슬 일어설 힘도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전쟁 같던 청춘이 점차 사그라들자 나 또한 그에 맞춰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몸에 힘을 빼고 하나 둘 내려놓다 보니 웃음의 의미와 유머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현재의 나는 가벼운 말장난 코미디 쇼가 너무 좋다. 각종 예능프로들도 참 좋다. 우리가 살면서 웃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웃을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웃긴 프로들을 보고 있으면 그 시간만큼은 마음의 고민들, 짐, 부담 모두 내려놓고 마음껏 웃을 수 있다는 게 참 정신적인 보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웃음과 유머, 가벼운 삶에 태도가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 걸 어렸을 때는 몰랐다. 유치한 코미디 프로가 인기를 끄는 것도 애들이 되지도 않는 가벼운 유행어 쓰는 것도 매사 진지하지 않고 가벼운 사람이 싫었다. 진짜 혐오스러웠다. 진지하고 묵직한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는 방식이 좋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보니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사람에게도 실은 내면에 무수한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내가 그렇게 변해가면서 시련을 이겨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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