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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탄력성 너는 대체 무엇이더냐

나도 잘 모릅니다.

by 유리멘탈 심리학자
그 사람은 멘탈이 세.


나는 아직도 사람들이 이 말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말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감이 있다, 자기 효능감이 높다, 자존감이 높다, 회복탄력성이 좋다, 심지어 싸이코패스 성향이 있어 다른 사람이 뭐라든 다 밟고 제 갈길 가는 사람한테도 저 말을 쓰는 경우도 봤다. 그러나 흔히들 많이 쓰는 멘탈이 좋다는 말과 관련되는 용어는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인 것 같다. 일반 대화에 등장하는 빈도로 따지자면 자존감이 압도적이겠다만 회복탄력성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굉장히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대체 무엇이냐?라고 정확한 정의를 묻는다면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 모두가 동의하는 정의는 없다고 우선 말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정의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내면의 힘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요새 부쩍 힘들어서 그런지 유독 회복탄력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한다.




회복탄력성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뭐가 고난이고 역경이냐? 나에게 닥친 큰 역경은 아이와 어른 사이 그 어딘가 즈음에 갑작스럽게 닥친 병마였다. 목숨을 위협하던 중환자실 시절을 넘기고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1년 여가 걸렸다. 정말 열심히 싸웠다. 희망을 가지고. 그때 알았다.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저 하루하루 전쟁하듯 그렇게 살아내게 된다고. 이 고비를 넘기면 그 힘으로 더 잘 살아가겠지 그 일념 하나로. 그럴 리가. 인생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 병마가 사정없이 할퀸 내 영혼은 이미 황폐화되어 버렸다. 겨우겨우 일상을 되찾았지만 남들이 그냥 무심하게 툭 넘기는 가벼운 스트레스에도 나는 걸려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열심히 싸웠다. 그때 내 머리채를 잡고 앞으로 이끈 것은 강력한 동기와 목표였다. 지금은 비록 거지 같은 현실이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야. 끈기를 갖고 해 보고 또 해보자. 물론 이 과정에서 가족들이 나를 위해 희생한 부분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회복탄력성과 관련되는 유연적 사고, 긍정성, 자기 조절 능력 같은 부분은 굉장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다른 중요한 관련 요인들인 목표의식, 동기와 끈기는 워낙 강력해 그나마 잘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런 나도 이제는 지쳤나 보다. 잠시 멈춰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희망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살아남으려고 이글이글거리며 아득바득 악을 쓰는 모습만 남은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지쳤다. 사실 늙어서 그런 거지 뭐. 인간이 지구 1 짱이라고 그렇게나 잘난 체를 하고 살지만 결국엔 호르몬의 노예라는 생각이 든다. 뇌에 원하는 인풋을 넣으면 그대로 아웃풋이 나오는 기계 같은 존재 말이다. 좀 웃긴 얘기일 수 있는데 너무 힘들 때면 나 자신이 도마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우리 뇌 안쪽에는 편도체라는 곳이 있는데 도마뱀의 뇌에도 있을 정도로 동물의 진화 단계상 초기에 발달된 뇌 부위이다. 인간은 이에 더해 여러 뇌 부위가 차곡차곡 발달하고 나중에는 넘치는 뇌 용량으로 인해 가장 바깥쪽 뇌 피질을 구겨버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나중에 발달된 우리 머리 앞쪽 부분인 전전두엽 피질에서는 계획과 실행 등 고차원적 사고가 가능하다. 즉 도마뱀은 하지 못하는 고차원적 사고이다. 그런데 사람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면 어른스러운 행동을 관장하는 전전두엽 피질이 마비되고 저 안쪽의 도마뱀의 뇌, 편도체가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안의 도마뱀이 미쳐 날뛰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때 전전두엽은 무력하다. 얘한테 뭘 계획하게 하고 실행하게 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미쳐 날뛰는 도마뱀의 뇌를 쉬게 해야 한다. 내가 찾은 답은 호흡이었다. 되게 보잘것없고 미천해 보이는데 무시하면 안 된다. 실상은 대단한 애다. 호흡은 무려 수의적 조절과 불수의적 조절 모두 가능한 생리적 신체과정이다. 스트레스로 내가 미쳐 날뛸 때 내 뇌는 이것을 위협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교감 신경계를 활성화시켰을 것이다. 이 불을 끄려면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휴식해야 한다. 이때 호흡이 핵심이다. 숨은 어차피 쉬는 거 아냐. 얼마나 쉬워. 배에 손을 얹고 복식호흡으로 배 움직임을 천천히 느꼈다. 잠들기 어려운 밤에는 수면 의식처럼 4초 들이마시고 7초 숨을 참고 8초에 걸쳐 숨을 천천히 내보내는 4-7-8 호흡법을 반복했다. 시시때때로 틈날 때마다 복식호흡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차피 매일 하는 산책도 이용했다. 늘 에어팟을 끼고 귀찮은 숙제 후딱 해치워버리는 산책을 운동하는 명상으로 만들었다. 산책을 하며 호흡과 발 딛는 감각 몸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걸었다. 내 안의 도마뱀이 좀 달래지는 듯하다.




그렇게 바쁠수록 절박하게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수록 더 잘 쉬면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으면 지금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 싶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여전히 어리석고 나약하다. 내 삶도 한순간에 깨져버릴 것 같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삶이 빛나는 장밋빛일 수도 있고 희망찬 내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몹시도 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인간이라서 고난이 닥쳤을 때 마구 감사와 긍정을 강요하는 접근법은 나에게 하나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닭살만 돋고 그게 더 스트레스이다. 그래도 나는 힘든 일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직도 그 레시피가 완성되지 않았고 구멍 숭숭 허술하다. 그래도 뭐 어쩌나. 언젠가는 그럴싸해지겠지 뭐. 완성되면 짜잔 하고 소란스럽게 등장해 마구마구 잘난 척을 해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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