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jo Mar 13. 2022

피그:: 죄책감은 결코 혼자 죽일 수 없다


내게 덕지덕지 붙은 허구를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은, 순수했던 과거를 끄집어 내는 일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포틀랜드는 허구에 찌든 사회다. '명성', '평론가의 눈치', '그럴듯한 미사여구'들. 그 쓸데없는 것을 쫓는 이들이 포틀랜드의 상류층을 지배하고 소위 말하는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주인공 롭은 그런 것에 염증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는 15년 전, 포틀랜드의 정점에 섰던 셰프였고 그랬기에 현재 허구를 좇는 이들을 양산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의 죽음으로 부터 그 모든 것에 환멸을 느껴 15년간 산에서 은둔했으며, 그랬기에 차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대한 과장된 설명도 듣기 싫어한다.


허구로 찌든 포틀랜드 미식계의 중심엔 트러플이 있다. 트러플은 허구사회를 만드는 인간들의 주요한 재료다. 때문에, 트러플은 맥거핀 같은 존재다. 사실상 영화의 주된 주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롭은 트러플 따위 없어도, 명성이나 그럴듯한 미사여구 없어도 진정성 있게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방식은 '기억'이다. 그들이 찌들기 전 혹은 잠시 찌들지 않았던 떄의 모습을 15년 전 '기억'으로 교감한다. 그리고 그들의 진실된 모습을 이끌어낸다.


돼지는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결코 혼자 죽일 수 없다.

그렇다면, 돼지가 중요한 것일까. 롭은 사실 돼지 없이도 트러플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롭은 돼지에 집착하는가. 롭은 그 질문에 "돼지를 사랑하니까"라고 답한다. 이는 죄책감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으로 보인다.

"다른 돼지를 사줄게" 라는 숱한 제안을 롭은 거절한다. 그에게 돼지는 대체될 수 없는 존재. 아내를 상징하는 존재다. 한 때 포틀랜드에서 허상을 쫒느라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아내에 대한 '죄책감 덩어리'다. 인간은 죄책감을 스스로 떨쳐낼 수 있는가. 어렵다. 영화는 롭이 15년간 세상과 단절하며 노력했지만, 아내의 녹음 음성을 끝까지 듣지 못한다. 


나는 모두가 죄책감을 미워하지만 한편으론 애정한다고 생각한다. 죄책감은 나를 괴롭게 만드는 이유지만 끝끝내 놓지 못한다. 그래서 집착한다. 그리고 그 집착은 비로소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롭이 돼지를 찾기 위해 아미르의 아버지에게 '과거'를 선물했을 때, 그래서 아미르의 아버지가 눈물을 보였을 때. 롭은 비로소 자신의 죄책감 또한 위로 받는다. 타살된 돼지는 타인과의 교감으로 얻어낸 죄책감의 죽음이다. 롭은 비로소 해방되자 괴로워하지 않고 후련하게 울 수 있다. 아내의 죽음을 현재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아내의 녹음 음성을 이제 끝까지 들을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끝없음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