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좀 하자"는 말은 "술 한번 먹자"만큼이나 기약도 알맹이도 없다
"얘기 좀 하자"는 말은 "술 한번 먹자" 만큼이나 기약도 알맹이도 없다.
대화는 숏츠를 넘기 듯 진행된다. 한 쪽이 "뉴스에서 보니 이렇다더라."라고 하면, 다른 쪽은 좋아요 대신 "헐" "아 진짜?"를 눌러준다. 다음 뉴스와 가십 같은 분절된 정보를 건넬 뿐, 책(이야기)을 건네 받긴 어렵다. 그것도 큐레이션 아니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바라는 게 그거라면 사람보다 유튜브를 만나는게 좋다.
그나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감상'분야도 납작하기 짝이없다. "그거 진짜 재밌더라" / "연기 좋더라" 이외에 아무런 감상도 늘어놓지 못하는 빈약한 시각은, 연예기사 아래 있는 이모티콘 만큼이나 시덥지않다.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나름 각종 트리비아나 유튜버의 요약본을 늘어놓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이야기라기 보다 조금 더 긴 숏츠, 정보에 불과하다. 정말 재밌고 궁금해야할 이야기는 그 트리비아를, 그 영화를 어떻게 해석했냐하는 화자의 시각이다. 나무위키에 별의별 정보가 다 담긴 요즘에 사람을 만나 들어야 할 건 칼같은 팩트가 아니라, 설익은 사람의 생각이다. 또, 대화의 주제를 명확히 지키는 칼같음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말하니까 생각났는데..."로 시작하는 중구난방이 더 중요하다. 이야기는 매끈하지 않아도 되며, 매끈하지 않아 더 매력적이다.
'추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게 되면서, 예전보다 더 촘촘하고 쉽게 삶을 기록하고 정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예쁜 건물을 배경으로 한 사진, 아름다운 풍경을 쓸어넘기며 "예쁘지?"하는 행위도 숏츠 콘텐츠에 불과하다. 물론, 사진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란 장점이 있지만, 그것도 결국, '기억'을 위한 도구일 때 한한다. 명확하고 변질되지 않는 디지털 사진은 순간적으로 감정의 스파크를 일으키고선 파사삭 식을 뿐이다. 사진 자체로는 추억을 설명해줄 수 없다. 진짜 추억은 그것을 이야기할 때, 이야기 하면서 조금씩 기억과 해석이 변할 때 가치있다. 추억은 정확할 필요가 없다. 불변하는 이미지 데이터와 달리, 말할 때마다 달라지는 게 추억과 이야기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런 시류를 이해 못한단 건 아니다. 나도 저렇게 산다. 생각을 잘못 말했다 좆돼버리는 사례를 숱하게 학습한 모두는, 의견을 말하기 두려워한다. 반론을 당하기 두려워한다. 맥락과 다른 이야기를 하기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씩 두려움에 밀리다 가장자리로 매몰린 '이야기'는 조만간 추락할 일만 남아보인다. 그렇게 나는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잃어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서사의 위기>를 읽다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