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나서기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나는 어릴 적부터 학생회장부터 각종 동아리 및 모임장, 디렉터 등의 온갖 타이틀을 달고 이런저런 활동들을 이끌어나갔다. 그 덕분에 항상 최소 한 달에서 한 달 반 앞의 일정까지 캘린더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지인들과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최소 2달 전에 연락을 주고받아야 해서 종종 "무슨 연예인이냐"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살았다.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면(그것도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뿐이었다) 괜스레 죄책감이 들고, 하루를 헛되이 살았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어서 항상 뭐라도 해야 되고, 움직여야 되고, 바쁘게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세상엔.
그리고 작년 3월, 캐나다로 넘어오며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부족한 건 '여유'였다는 걸 깨달았다. 캐나다에 살기 시작한 지도 1년 하고도 4개월- 그간 쌓아온 모든 관계와 인맥들이 사라지고 새롭게 리셋되어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느낌이랄까, 가족도, 친구도, 집도, 차도, 심지어 일자리도 없이 수중에 단돈 200만 원만 들고 이 먼땅 캐나다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밴쿠버에서 한 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스쿼미시(Squamish)에서 지냈는데, 한국인은 고사하고 아시안도 쉽게 만날 수 없어 생각보다 향수병이 금방 왔다. 맙소사, 평생 여행만 하고 살아온 내가 향수병이라니. 하지만 한국어를 쓸 일도, 한식을 먹을 일도, 그리고 가깝게 지내는 지인도 없는 곳에서 매일 가벼운 만남만 이어가며 삶을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외로움이 더 빨리 찾아오게 만들었다.
스쿼미시에서 6개월의 시간을 보낸 뒤 지금은 알버타주 캔모어(Canmore)에서 지낸 지 어연 10개월 차. 스쿼미시에서도 좋은 인연을 만났고,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는데 이곳 캔모어에서 그 허전함과 외로움을 다시 채워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없이 많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 일 끝나고 같이 운동 가자는 친구, 주말에 함께 캠핑 트립을 계획하는 친구, 그리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마음을 보내주는 남자친구까지.
계속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사랑이었다.
관계에서 오는 사랑. 사람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마음. 한국에 있는 가족 그리고 지인들과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직접 만나지 못하니 그 마음을 온전히 전하고 느낄 수 없더라.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냥 원래 그런 것인가, 인스타그램으로 소통을 하고 소식을 주고받는 것보다 역시 직접 얼굴 맞대고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게 더 정겹다. 인생은 결국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 아닐까. '사랑'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낯간지럽긴 하지만 요즘은 부쩍 그 단어가 참 좋다. 사랑하고, 사랑 주고.
이제는 되려 캐나다를 떠나면 이 친구들 그리워서 어떻게 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 게 아름답고 모든 게 행복한 캐나다에서의 삶. 곧 떠남을 준비하고 있기에 더욱 아쉬운 요즈음이다. 이별이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