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미술품. 현대 미술을 다루는 도서가 아니라면 다룰만한 콘텐츠는 정해져 있다. 사람들이 찾는 그림이라거나, 미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그림, 관련해 에피소드를 갖춘 그림일 것이다. 그렇기에 미술을 다룬 도서는 '어떤 주제로 어떤 작품을' 선정하느냐에 따라 그 도서만의 매력과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다시 말해 '큐레이팅'이 미술 도서의 핵심이다.
미술 도서 권태기(?)에 들어섰던 와중, "무서운 그림들"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들었다. '기묘하고 아름다운 명화 속 이야기'라니, 왠지 새로운 작품들을 다루어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
1장의 첫 작품으로 바로 무서워 보이는 그림이 나온다. 책 제목처럼 무서운, 아르놀트 뵈클린의 <페스트>를 보자마자 책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옆 페이지에 이어지는 상황 묘사.
푹. 사신은 무심하게 낫을 휘둘렀다.
p.13
로 시작하는 생생한 묘사에 그림을 다시 한번 자세히 쳐다보게 되었다. <무서운 그림들>은 그림을 제시하고, 바로 훅 몰입하게 만드는 그림 묘사와 에피소드를 제시한다. 그림과 글이 함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라 책이 영상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가끔 그림 뒷면에 텍스트가 있을 때에는 번갈아 읽느라 고생을 했지만, 도입의 텍스트가 그림을 보조하기보다도 텍스트가 곧 그림과 같은 느낌이라 좋았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위해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삶이 다루어진다.
밝은 화풍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그림은 아픔으로 어둡고 무서워진다. 뵈클린은 각종 전염병으로 자식의 죽음을 여덟 번 겪으며 죽음이 옆에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그린 자화상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죽음이 있는 자화상>에는 그에게 속삭이고 있는 해골이 있다.
뵈클린이 위대해지게 된 계기 또한 죽음이다. 뵈클린의 <죽음의 섬>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경험과 공감에서 비롯된 작품이나, 이 작품으로 뵈클린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비극이 곧 개성이 되었고, 그 비극 덕분에 뵈클린은 성공할 수 있었다.
뵈클린의 말년, 페스트가 세계를 덮쳤다. 뵈클린은 페스트에 대한 분노와 전염병의 무자비함을 작품 <페스트>에 담아낸다. 처음에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그림을 다시 보면 무서움보다도 그의 처절함과 슬픔이 보인다. 무서운 작품 너머의 작가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무서운 그림들>의 '무서운 그림들'에는 무서운 그림들이 나오나, 그 사연은 다채롭다. 슬프고 안쓰럽고, 기묘하며 아름답기도 하다.
사실, 대가들이 남긴 어딘가 섬뜩하게 느껴지는 그림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림들을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안에선 뜻밖의 세상이 열리곤 합니다. 절박한 사랑의 순간과 삶에 대한 자세, 한 번 알면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신화와 역사,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싶은 기상천외한 상상과 환상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p. 6
섬뜩함 한 꺼풀을 벗겨보면 슬픔, 아름다움, 환상 등이 나타난다. 무서워 보이는 작품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무서움과 엮여 있는 풍부한 감정들을 알 수 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미술을 다룬 도서들을 읽어 왔다. 한 미술관/박물관이 소장한 그림을 다룬 도서, 예술 교양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구성된 도서, '위로'라는 테마로 작품을 다룬 도서. 이 도서들의 핵심은 단연 '큐레이팅'이다. 익숙한 작품을 새로운 시선에서 보도록 하고, 새로운 주제로 익숙하지 않은 작품을 가져오는 것.
그런 점에서 이원율 저자의 <무서운 그림들>은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다. 새로운 그림으로 새로운 주제를 읽는다. 익숙한 그림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그 예이다) 새로운 면모를 파악한다. <무서운 그림들>에 내재된 다채로운 감정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림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