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 little kitty Feb 29. 2024

2024년에 3000원짜리 밥 사 먹는 법

지속 가능한 방법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다.

<국민식당제도>라는 것이 있다. 자고로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이니, 국가에서 통제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먼저 국민 식당 셰프가 되려면 식품조리학과에 가서 6년간 공부를 마쳐야 한다. 입시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도전하는 곳으로, 초중고 시절 값비싼 사교육은 기본이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면 대학 등록금은 한 해 1000만 원 정도다. 6년간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나면 대규모 국민 식당에서 수습 셰프로 5년간 일을 배워야 하고, 전문 셰프가 되고 싶으면 1-2년을 더 일하게 된다. 주당 80-100시간을 일하고 연봉은 4500만원 안팎이다. 근로시간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교육이 끝나면 대규모 국민 식당에서 남아서 셰프로 일하거나 자기 식당을 차릴 수 있는데 국민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임대료, 직원 고용 등에 국가지원은 없었다.


대신 국가에서는 밥값을 정해준다. 셰프들은 식재료비, 인건비 상승으로 적정한 밥값은 9000원이라고 생각하지만 국가에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먹거리는 기본권이고 누구나 싼 값에 원할 때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에서는 밥값 3000원으로 통보했. 3000원 중 1000원은 손님이 내고, 2000원은 국가에서 후불로 준다. 2000원을 받기 위해서는 매달 청구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국가에서 정한 원칙에 어긋나는 레시피나 새로운 재료를 쓰면 금액을 덜 준다. 서류 작성 방법이 조금만 틀려도 돌려보낸다. 물론 2000원에서 3.3%는 제하고 준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식당의 셰프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자 부모들의 염원이었다. 식당은 옷가게, 보석가게와는 달리 경기를 덜 타고, 국가에서 통제하는 사업이라 안정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만 되면 옷가게, 보석가게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게다가 나랏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부모의 어깨를 펴게 했다. 부모들은 초중고 10년 동안 고액의 사교육비와 6000만 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국민식당의 셰프가 된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나랏일을 한다고 했는데, 공무원이 직접 가게자리를 임대받고 직원을 고용해서 자신이 번 돈으로 직원 월급을 주는 공무원이 있던가? 그렇다면 자영업자여야 하는데 전국에서 밥값이 3000원으로 고정되어 있으니 평범한 자영업자는 아니었다. 정부에서는 물가 상승을 고려해 5년에 100원씩 밥값을 올려주었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 250 그릇을 팔아야 식당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혼자 식당을 할 경우 하루에 판매할 수 있는 최대치는 100그릇이었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면 겨우 250그릇을 팔 수 있었다. 하지만 40대, 50대에도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고민하던 셰프들은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 커피는 기호식품이기에 국민의 기본권이 아니었고 나라에서 가격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셰프들은 라테 아트를 배우고, 스타벅스에 못지않은 훌륭한 음료를 제조해서 팔았다. 음료는 밥보다 비싼 가격에 꾸준히 팔려나갔다.


그러자 이제는 음료만 파는 식당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3000원짜리 밥을 하려면 식재료를 구입해 오고 위생관리도 해야 했다. 메뉴 중에는 표준 식사 외에 알레르기식, 당뇨식도 필수였는데, 알레르기, 당뇨 손님이 많은 날에는 밥을 따로 지어야 하므로 손이 모자라 하루에 250그릇을 팔 수 없었다. 하지만 커피는 손님들이 만족하면 사장이 정한 가격을 지불했기에 파는 만큼 가게를 유지할 수 있었고, 보람을 느꼈다. 셰프들은 점점 커피를 비롯한 음료와 디저트를 취급하기 시작했고, 3000원짜리 밥을 파는 국민식당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국민 셰프가 되기 위해 들인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 창업 금액, 직원 고용비 등을 고려할 때 수지가 맞지 않는 식당은 폐업을 했다. 새로 생긴 식당들은 점심시간 동안에만 밥을 팔고 나머지 시간에는 커피를 팔았다. 커피를 팔면 설거지를 하고 서빙할 직원을 뽑지 않아도 되고, 식재료도 최소로 구입하면 되었다. 구청의 위생 단속도 최소로 받을 수 있었다. 원래 국민 식당에서 밥의 맛이나 위생 상태에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구청에 가서 소명을 하고 벌점을 받았다. 불만을 가진 손님이 청와대 신문고에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 벌점을 받거나 밥값을 돌려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밥 대신 커피를 파는 가게가 많아지고, 밥을 팔아도 제한된 시간에만 당뇨나 알레르기 식은 제외하고 표준식만 취급하는 가게가 많아지자 정부에서는 국민 식당을 더 늘려야겠다고 나섰다.

"여러분, 요즘 밥보다 커피를 파는 국민 식당이 많아졌으니 국민 식당 셰프를 2배로 늘리면 어떨까 합니다. 국민 셰프대학에서는 정원을 2배로 늘리고 교수진도 2배로 뽑도록 하세요."

국민들은 환영했다. 국민 셰프대학에 입학하기가 수월해졌으니 학부모와 학생들은 대학 입시에 호재가 생긴 것이고, 3000원의 식사를 원했던 국민들은 일단 셰프가 많아지니 당뇨나 알레르기 식을 포함해서 일반 식사가 가능한 국민 식당도 지금보다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옷가게, 보석가게 사장들은 그동안 국민 식당만 경기를 타지 않고 국가에서 돈을 받았는데 이 참에 무한 경쟁에 노출되니 공정한 처사라고 기뻐했다. 정책을 내놓은 정치인은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국민식당 셰프는 생각했다. 교장선생님에게 직접 학교 건물을 짓고 선생님들을 고용해서 그 해에 받은 학생수 한 명당 학원의 1/3에 해당하는 등록금을 주겠다고 하면 학교는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을까? 소방관에게 소방서를 직접 짓고 소방차도 직접 구매해서 화재 현장에서 올린 실적만큼 금액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소방서에서 계산한 적정가에 못 미친다면 소방서는 존재할 수 있을까?




A, B, C 국가에서는 국민 식당을 소방서나 학교처럼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고, 국민 셰프를 고용한다. 국민 셰프가 되기까지 학비를 지원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일정한 급여를 주고 요리 업무만 하도록 한다. 국민 식당에서는 호텔 뷔페 같은 요리는 먹을 수 없지만, 식당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셰프들은 일정한 맛이 나는 요리를 제공했다. 국민 식당에서는 하루 50그릇의 밥을 판매한다. 국민들은 하루 50그릇이 다 팔리면 먹고 싶어도 다음 날 와야 했다. 셰프들은 일정한 월급을 받기에 밥값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셰프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1인당 할당된 업무가 줄어들기 때문에 급여가 보장된다면 셰프들은 국민 셰프가 더 늘어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국가에서는 셰프의 학비와 급여를 부담해야 하기에 무작정 셰프를 늘릴 수 없었다.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수 있거나 좀 더 비싼 사립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국민 식당 쿠폰을 1년에 4개만 지급하고, 독거노인이나 사립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1년에 12개의 쿠폰을 주었다. A국가의 국민 식당에는 특별한 제도가 있는데, 무료 쿠폰 대신 현금 9000원을 내는 사람에게는 대기하지 않고 바로 밥을 준다. 같은 메뉴여도 가장 경험이 많은 셰프가 따로 요리를 해서 내 오기 때문에 현금을 내고 먹는 사람도 있었다. A국가는 이렇게 받은 비용으로 식당 운영을 유연하게 해 나갈 수 있었다.


D국가에서는 국민 식당을 국가에서 운영하지 않는다. D국가는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는 퍼져 있어 효율적인 통제가 불가능했다. D국가는 모든 식당을 사립으로 운영하되, 밥을 혼자 해 먹을 수 없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푸드스탬프를 지급했다. 근처에 식당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 1회 차량서비스를 지원했다. 사립 식당은 비싸고 예약을 해야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은 최고의 호텔뷔페를 먹을 수도 있었다.


먹거리가 기본권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내일 내가 밥을 먹을 수 있을지를 그날의 운에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당이 안정적으로 그 자리에 존재해야 하고, 밥을 제공하는 자가 그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A, B, C 국가는 셰프의 고용과 근무시간, 급여를 보장해 주었다. D 국가는 셰프의 사업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는 금액을 지원해 주었다. 두 국가의 국민들은 모두 국민 식당에 크고 작은 불만이 있지만, 식당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지는 않았다.


오늘날 한국의 국민식당 셰프는 생각한다. 지속 가능한 제도 중에 우리는 어디에 속했던 걸까? A, B, C 국가처럼 국민식당을 운영하려면 국가에서 식당을 만들고 셰프를 고용하고 식재료를 공급해야 하니 세금이 필요할 것이었다. D국가처럼 하려면 국민들은 1000원을 내고 먹던 밥을 10000원 이상 내고 먹어야 하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그 누구에게도 그동안 제공했던 국민 식당의 적정 가격이 9000원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국민 셰프를 증원할 때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여전히 사교육비와 등록금은 입학할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었다. 국가는 돈을 들이지 않고 생색을 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4억의 대출을 받아 창업한 국민 식당의 매출이 3000원 밥메뉴로만 유지될 수도 없을뿐더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들인 비용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맞았다.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국민식당제도를 운영하는 국가가 기본적인 경제원리와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속 불가능한 정책으로 국민과 셰프를 속이려 한다는 것이었다. 밥 대신 음료만 파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셰프는 고민 끝에 식당을 폐업하기로 했다.  





아마추어 바이올린 도전기 브런치북의 연재일에 글을 발행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사람을 위한 식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