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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Nov 12. 2023

한 사람을 위한 식탁

시대가 바뀌면 식탁도 바뀐다.

" 저녁에 뭐 먹을래? 엄마 마트에 왔어."

"응.. 글쎄, 모르겠어."

"고기, 생선 중에 골라볼까?"

"생선 먹을래요. 카레 생선이요."


비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작은 딸아이는 카레향이 나는 생선구이를 찾습니다. 저는 수산코너에서 갈치를 고릅니다. 마침 잘 손질된 갈치가 있네요. 생선 옆에 준비된  비닐봉지에 갈치를 한 번 더 감쌉니다. 맵지 않은 카레가루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생선을 먹는 사람은 작은 아이뿐입니다. 저도 먹긴 하지만 저 혼자 먹으려고 생선을 굽지는 않거든요. 게다가 저와 남편은 장을 보면서 끼니를 때웠고, 큰 아이는 생선이 먹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요리는 작은 아이를 먹이기 위한 1인용 식탁입니다.


식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던 시절에는 주부가 장을 보고 직접 매끼를 직접 요리하는 것이 미덕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배달의 민족도 없었을 테지요.


하지만 맞벌이가 많고 아이들은 방과 후에 학원에서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는 사회에서는, 각자 식사 시간도, 취향도 다르기에 한 번에 조금씩 먹을 다양한 요리가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식이나 배달음식 중에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어 두는 것도 미덕이라면 미덕입니다.


미사고 요시아키의 <천년의 독서>를 보면, 주부라는 단어를 처음 선보인 것은 1917년 처음 발간된 '주부지우'라는 잡지라고 합니다. 저자는 각종 책과 매체를 통해 일본인의 식탁 100년 사를 짚어줍니다.


https://naver.me/GsPBomar

이 잡지의 100년 사를 엮은 <일본의 주부 100년의 식탁>에 따르면, 일본인이 지금처럼 다양한 요리를 먹게 된 것은 2차 대전 후부터니다.  전의 일본인들은 매끼 다른 반찬을 먹지 않았으며, 메인요리 없이 국 또는 반찬 1가지를 놓고 먹었습니다.


전쟁 이후 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영양을 개선하기 위해 육류 및 기름진 요리를 먹도록 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불교국가로 오랜 세월 고기를 먹지 않아, 국민들은 고기 요리에 익숙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서양식 요리법 제공했고, 이때부터 직접 만드는 가정요리가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1955년 도시바에서 최초의 자동식 전기솥이 나왔고 이후 세탁기, 냉장고 등이 널리 보급되었지만, 가정요리라는 개념 때문에 주부의 일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1970년대 주부잡지의 황금기 시절, 매일 다른 식단으로 국물 하나 반찬 세 가지를 갖추어야 진정한 가정요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과하면 부작용이 따릅니다. 주부의 과도한 노동을 담보로 한 매 끼 다른 요리는 맞벌이 시대에 이르러 반발에 부딪칩니다. 수많은 고민과 논쟁 끝에 수고를 들여 정성 담은 요리 대신, 시간 절약형 요리로 옮겨갑니다. 요리연구가 고바야시 가쓰요는 '수고로움이 없는 요리도 맛' 시대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일본 요리는 덮밥처럼 한 그릇 요리가 많아 음식 쓰레기와 설거지도 적을 듯한데, 처음부터 합리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요.


'엄마, 나 부엌 좀 써도 돼?"


지금 제 옆에는 한 사람을 위한 식탁을 준비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큰 딸아이입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큰 아이는 제가 해 준 요리를 먹는 날보다 스스로 해 먹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간단하게는 계란프라이부터, 각종 볶음밥, 버섯요리까지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는 해 먹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직접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어서라고 하네요.


아이는 큰 그릇에 밥을 예쁘게 담고, 냉장고에서 제가 장 봐둔 연어회와 양파를 꺼냅니다. 도마 위에 양파를 놓고 잘게 썰더니, 작은 팬에 간장을 붓고 양파를 조립니다. 달콤한 간장냄새가 부엌에 진동합니다. 잠시 후 아이는 연어회를 한 조각씩 예쁘게 돌려 밥 위에 얹습니다. 간장에 조린 양파를 사뿐히 내려놓아 연어회덮밥을 완성합니다.


별 것 아닌 요리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노하우와 원칙, 스타일을 살려 한 끼를 만들어내는 큰 아이는 진정한 창작자 같습니다.


카레 갈치구이가 완성되었습니다. 카레향이 더 진해야 한다는 지난번 작은 아이의 평가를 참고해서 이번엔 생선에 칼집을 더 많이 넣고, 카레도 더 많이 뿌렸습니다. 결과는 만족, 한 사람을 위한 오늘의 요리는 통과입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모습은 결국 삶과 사회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식탁이 1인분이든, 그보다 많든 따뜻하고 만족스럽기를 기원합니다.


커버이미지 출처   https://naver.me/I54w4g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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