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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Sep 26. 2024

잣죽과 시금치수프

<야무지게 비벼 먹는 소중한 하루>를 읽고서

상상한다.
시들시들해진 사랑하는 그녀가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몸을 축 늘어뜨린다. 외투를 벗지도 못한 채 그렇게 눈을 감고 피로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그녀.
                                           .....중략......
그리하여 난, 견딜 수 없던 난, 냉장고 가장 아래 칸 모여있는 채소들 사이에서 시금치 한 단과 양파 한 개를 꺼내 든다. 위쪽 날개 칸에서는 다진 마늘, 버터, 우유와 생크림, 그리고 파르메산 치즈가루를 함께 챙긴다. 양팔 가득 담은 재료를 아일랜드에 늘어놓고 차근차근 재료 소질에 돌입하는 나. 지친 그녀의 속을 달래줄 영혼을 위한 시금치 수프,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야무지게 비벼 먹는 소중한 하루> 중에서


 https://brunch.co.kr/@rassaem

웅숭깊은 라쌤 작가님의 신간 <야무지게 비벼 먹는 소중한 하루>에는 하루 일과에 지친 그녀를 위한 위로의 음식, 시금치 수프가 나옵니다. 지금 현실에는 없지만 미래에 있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음식을 만든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과거에 있었지만 이제는 떠난 사람을 위해 만드는 음식도 있습니다.



묽게 갈아놓은 액체는 고운 우윳빛이 났다. 나는 중불에서 그걸 나누 숟가락으로 저어가며 끓였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빨리 걸쭉해지지 않아 물을 너무 많이 부은 게 아닌가 하고 조바심이 났지만, 갈수록 점점 걸쭉해졌다...... 이것이 내가 원한 전부였다. 몇 날 며칠을 화려하고 값비싼 고기요리와 갑각류 요리 그리고 버터와 치즈와 크림 배합을 달리 한 갖가지 감자 요리를 만든 끝에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는, 보드라운 죽이 엄마의 갈라진 혀를 살포시 감싸는 순간을 상상했다.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중에서


미래에 존재할 사람과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요리는 '상상'하며 '소중한 사람'을 위해 만든 요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현실 속 타인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데요. 가족을 위해, 자녀를 위해, 고객을 위해 만드는 음식은 의무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상 속 그대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요?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1. 위장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요리를 시작하고 만든 이야기라는 점

2. 음식을 통해 사람 이야기를 했다는 점

3. 시금치나 가지처럼 그다지 맛있는 재료가 아닌 것으로도 맛깔난 요리를 구상했다는 점

입니다.


'상상'이라는 것은 창작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지만, 원한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상상력과 삶의 경험을 진솔하게 나누어주신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저 역시 돌아가신 엄마를 위한 요리를 해 보고 싶습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미술연재는 한 주 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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