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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Feb 14. 2024

스테인드글라스

파편화된 자기와 고통 속에 피어난 아름다움

스테인드글라스


                             정호승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끓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 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 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중에서




시인은 마흔의 나이에 직장과 가정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런 고민을 하며 걷다가 그는 명동성당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고요한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며 산산조각 난 삶의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그 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이 내리비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왜 그토록 그의 인생이 산산조각 났는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통유리 대신 조각난 유리를 붙여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색채를 만들어 내듯, 그의 조각난 인생은 그와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고통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문장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문장입니다. 괴테는 <색채론>을 통해서 나름대로 뉴튼의 이론을 반박하며 깊은 연구를 했나 봅니다. 뉴튼은 색이 사물이 아닌 빛에 속하는 파장의 반사라 정의하고, 프리즘을 통해 7단계로 나누는 양적인 분석을 했습니다. 반면 괴테는 색을 빛과 눈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았고,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색채 현상을 밝음과 어둠의 양극적 대립 현상으로 보면서, 빛의 질적인 측면을 분석했습니다. 뉴튼이 색을 관찰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객관적 실체라고 본 것에 반해, 괴테는 사람의 눈과 빛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보았던 것입니다.1) 밝음과 어둠이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하며 나타난 현상이 색채라면, 그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없이 시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산산조각 났다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자기심리학의 '파편화된 자기'(fragmented self)를 떠올렸습니다. 경미한 수준의 파편화란, 밖에서 자존심이 심하게 상하는 일을 겪고 난 후 집에 돌아오면 자신이 조각조각 난 느낌을 받게 되는 현상입니다. 자세도 풀이 죽고 걸음거리도 휘청거리는 등 신체 통합성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양육 대상의 통합적 반응이 결핍된 경우 사소한 실망에도 자기 파편화가 심하게 나타납니다.2)


 이처럼 병적인 자기 파편화는 신체의 조각난 느낌에 건강 염려증으로 나타날 수 있고, 때로는 망상적 수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만성적 자기 파편화는 시간과 공간의 영속성을 상실하여 시간 관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실망이나 비난에도 자기 파편화가 심하게 일어나므로, 방어적인 분노반응, 해리현상, 극도의 공황발작을 보일 수 있습니다. 통합된 자기의 느낌이 없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 중독적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도 합니다.2)


파편화의 반대 개념은 무엇일까요? 응집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런 면에서 스테인드글라스라는  훌륭한 상징을 제시합니다. 사소한 실망이나 비난에 부서지고 마는 파편화 자기에 반해, 응집적 자기는 외부의 충격에 쉽게 부서지지 않습니다. 일시적 파편화를 겪더라도 결국 다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통합해 나갑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것은 파편화를 통한 고통을 극복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다시 붙여서 조화롭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심리학에서 건강한 자기의 특징을 꼽으라면 응집성(cohesion), 조화(harmony), 활력(vigour)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병적인 상태에서 자기는 파편화, 혼란, 쇠약의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응집성과 조화를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서 시인은 다시금 살아갈 활력을 얻습니다. 나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시적으로 파편화된 자기를 다시 조화롭게 붙여 통합해 갑니다.


색채는 어쩌면 빛의 파편화를 통해 얻어진 고통일지 모르나, 그것을 조화롭게 다시 붙여 삶과 존재의 활기를 얻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가슴 깊이 와닿는 시를 읽으며 이번 여행에서 보았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을 첨부합니다. 고통 속에 피어난 아름다움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St Patrick'Cathedral, New York



 

참고문헌


1) 김정운,창조적 시선 중 <색채학자 괴테>,아르테,2023


2) 최영민, 쉽게 쓴 자기심리학 중 <자기의 장애>,pp111-125,학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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