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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l 31. 2022

엄마가 만들어 준 게 제일 맛있어

맛있는 요리의 조건

“엄마, 오늘 저녁 뭐 먹어?”

“.........”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돌아서면 또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아이들.

아침엔 된장찌개, 계란말이, 과일 샐러드, 점심엔 토마토 파스타, 중간 간식으로 참치 주먹밥, 저녁엔 고추장찌개.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식사 중간에 조각 케이크, 식빵 토스트, 달달한 과일을 찾는다.     


어제는 갑자기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해서 미리 준비해둔 소스로 토마토 파스타를 뚝딱 만들어 주자, 작은 딸이 한마디 한다.

“아니, 이렇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왜 그동안 파스타를 배달시켜 먹은 거야? 엄마가 해 준 게 제일 맛있어.”     


엄마가 해 준 게 제일 맛있다는 말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엄마가 해 준 요리가 왜 가장 맛있는 걸까?     


엄마는 취향을 맞춰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김치볶음밥을 먹을 때 큰 아이는 햄을 넣지 말라고 하고, 대신 다진 파, 김치, 참기름을 넣어서 담백하게 먹고 싶어 한다. 반면 작은 아이는 볶음밥에 햄이 없으면 입도 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김치만 먼저 준비하고, 나머지 재료는 각각 다듬어서 두 번 요리한다.


그리고 볶음밥 위에 얹는 계란 프라이도 큰 아이는 반숙, 작은 아이는 완숙이다. 귀찮은데 패스하면 어떨까? Oh, No! 계란 프라이가 없으면 김치볶음밥은 앙꼬 빠진 찐빵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나도 한때는 누군가 해 준 요리를 먹는 사람이었다. 이제껏 내 취향에 맞게 누군가 해 준 요리 3가지를 기억에서 꺼내 본다.     


 첫째, 어릴 때 고모할머니가 담가 주신 명태 식해다.

식해는 함경도 고유 음식인데, 생선을 통째로 넣은 젓갈이라고 보면 된다. 조밥과 잘게 썬 무를 넣고 신선한 명태를 썰어서(강원도에서는 가자미를 사용한다) 고춧가루 양념에 무쳐 삭힌다. 함경도 출신인 외할아버지는 누님과 단둘이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하셨다. 고모할머니는 해산물이라면 비린 것도 잘 먹는 나를 위해서, 소량씩 명태 식해를 담가주셨다.     

https://m.smartstore.naver.com/10045005

둘째, 입덧할 때 남편이 만들어준 수제버거다.

늦게 군 복무를 하게 된 남편을 따라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게 된 나는, 입덧할 때 갑자기 수제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당시만 해도 수제버거는 백화점이 있는 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남편은 비장한 각오로 패티 만드는 법을 검색하고 제대로 된 햄버거 빵도 사 왔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비율대로 갈고 치댄다. 하루 숙성시켜야 한다며 한 땀 한 땀 장인의 마음으로 패티를 완성했다. 적양파와 양상추, 조촐한 소스를 준비하고 다음 날 숙성시킨 패티를 구웠다. 오븐 없이 프라이팬만 사용하면 타기 쉬운데,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 1박 2일간 공들인 수제버거를 먹으면서 눈물이 났다.

냉정한 입맛으로 따지자면 2% 부족하지만, 마음으로 판단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수제버거니까.

https://m.blog.naver.com/happyandjojo

 셋째, 엄마가 끓여주시던 잔치국수다.

소면을 탱글탱글하게 삶고, 짭조름한 멸치국물에 양파와 호박을 썰어 넣는다. 노란 계란 지단을 올린다. 양념간장은 새로 만든다. 간장을 곁들이지 않은 잔치국수는 간이 맞아도 왠지 허전하다. 김치를 송송 썰어 설탕과 깨를 뿌리면 달콤하고 고소한 김치 고명으로 변신한다.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skimjang

 세 가지 음식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음식은 정성이라고 하는데, 그 정성이란 먹는 이의 입맛과 취향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고모할머니는 함경도를 떠나온 지 수 십 년이 되도록 고향의 맛을 그리워할 외할아버지와 그 입맛을 그대로 닮은 자손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의 수제버거에는, 입덧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어떻게든 못하는 요리를 해 보려는 애틋한 노력이 배어 있었다. 잔치국수를 말아주던 엄마의 정성 역시 우리의 취향을 한껏 배려해 준 결과다.


국수는 빨리 소화되기 때문에 식사로 먹기엔 부족하고 간식으로 먹기엔 과하다. 면을 삶아서 식히고, 따로 국물을 내고, 고명을 준비하는 수고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지는 음식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밥보다 면을 좋아한다. 밥은 늘 먹을 수 있지만 갓 삶아낸 면 요리는 집에서 호로록 먹을 때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다 하면 다시 밥을 먹여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말없이 국수를 준비해 준 것은 엄마가 우리를 사랑한 방식이었다.     


 이제 주부가 되어 보니 엄마의 요리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모든 서비스가 그렇듯 받는 이의 취향과 입장을 고려한 것이 가장 따뜻하고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 요리도 그렇지 않을까? 

‘엄마가 해 준 게 제일 맛있다.’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분 좋게 들리는 것은 요리를 엄마의 사랑으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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