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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경옥 Nov 03. 2022

방과 후 수업 종강

출근하고 첫 번째 일과는 PC에 쌓인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나랑 관련 없는 이야기.’

‘자치 시간엔 교실마다 강사님이 들어가시는구나.’

..

‘방과 후 수업?’     

방과 후 수업을 할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메시지에서 시선이 멈췄다.     


학생들의 수요조사를 통해 방과 후 수업 주제가 결정되고, 학생들은 신청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가격은 무료이거나 저렴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고 본인이 평소에 수강하고 싶었던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좋다. 교무기획부의 기획 업무를 맡다 보니 비교적 업무 양이 많았고 수업 준비만으로도 벅찬 날도 많았다. 그런데도 방과 후 수업은 해보고 싶었다. 


방과 후 수업은 평소 수업과 다른 매력이 있다. 수업을 듣는 대상에서 그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원래 수업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최대한 많은 인원을 아우를 수 있게끔 난이도를 설정하여 수업한다. 방과 후 수업은  적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수강생의 수준과 목적이 비슷하다. 그들은 학교 수업을 다 듣고 난 후에 참여하는 방과 후 수업인데도 열의가 가득했다. 일주일에 2번씩 무려 10주가 넘는 기간 동안 방과 후 수업을 진행했고 종강 날이 왔다. 


방과 후 수업 담당 선생님께 학생 출석부와 수업 사진 몇 장을 보내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방과 후 수당은 다른 선생님들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월 말쯤에 한 번에 처리할 것이라고 하셨다. 방과 후 수업을 하면 수당이 있을 것이란 건 알고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통장에 돈이 들어올 걸 생각하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방과 후 수업을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난이도로 진행해서 학생들 입장에선 힘겨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종강까지 잘 참여해준 학생들이다. 그간 늦게까지 고생하셨다고 인사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수당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학생도 있을지 모르겠다. 덕분에 돈을 벌었다는 약간의 민망함과 고마움에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결국 기존 방과 후 수업 시간에 맞춰 다시 모였고, 고기가 무한으로 리필되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햄버거 정도 사줄까 하고 먹고 싶은걸 물어봤는데 다 같이 고기를 외치는 바람에 오게 된 식당이다. 그래도 무한 리필 가게는 정해진 가격이 있으니까 예상되는 가격만 지불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갔다. 역시나 고기가 무한 리필이라 다행인 게, 자라나는 청소년이라 그런지 식당이 휘청일 정도로 많이 먹었다.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된장찌개와 공깃밥은 무한 리필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한국인의 밥심으로 큰다는 것을 그때야 실감했다. 한 사람당 찌개와 밥을 두세 개씩 주문하였고 음료수도 주문해서 마셨다. 결제하려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액수여서 얼마나 당황했나 모른다. 그래도 방과 후 수업을 함께 해준 고마움의 값이 훨씬 크니까 괜찮았다.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은 퇴근 시간이 지나도 교실로 올라가야 해서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수업을 하는 도중에도 즐거웠고 끝마칠 때는 마치 힘든 운동을 무사히 끝마쳤을 때만큼 뿌듯했다. 이후로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종강이 되면 학생들에게 어떤 방식이든 음식을 사준다. 종강까지 오느라 고생한 나 자신과 학생들의 인내심을 축하하는 것이다. 


아, 물론 무한 리필 고깃집은 다시 가지 않았다. 메뉴 선정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다음 종강 때는 무슨 음식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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