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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a Jan 21. 2021

00. 적당한 돈

서울 청년이 퇴사하고 지방에 내려가 초보 창업가가 되기로 한 이유




글쓴이 : MORA

국어교육을 전공했지만, 금융권과 항공사, IT 회사의 마케터로 일했습니다. 세상의 수많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45개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경험보다 더 많이 배우는 것은 없으니 두려움 대신 항상 도전하는 사람, 꿈보다 목표를 실현하는 모험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2년 넘게 다닌 회사를 홀연히 퇴사 후 홀로 창업의 꿈을 키우는 중입니다. 서울 태생으로 28년간 서울 살이를 했으나 서울이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대화와 소통을 벗 삼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중시하고 제 좁은 시야와 가치관을 확장하려 합니다.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픈 일을 하고 싶기에 바다가 보이는 거제를 발판으로 새로운 삶의 첫 장을 넘기려 합니다.  

    instagram : @mora_so  





적당한 돈


2020.09월 작성/수정함

적당히 벌고, 재미있게 살자.



여기서 과연 ‘적당한’ 돈은 얼마를 의미하는 걸까. 


Photo by Gregory Pappas on Unsplash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5시간 이상 잤다.


누가 들으면 기겁할 만한 이야기다. 내가 일과 중 침대에 8시간 이상 있다니. 휴가나 여행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군. 중간중간 잠은 깼어도 8시간 이상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그렇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살던 내가 아무 생각과 고민 없이 그저 누워있었다는 거다. 그동안 정해진 행동 루틴 덕분에 꾸준히 새벽 6시에는 운동을 가려고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있지만, 오늘처럼 개운하게 눈을 뜬 적은 정말 오랜만이다.


할 일은 많고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답답하지만 몸이 똑똑 쉬라고 노크하면 신호를 들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금 깨닫는 아침. 


무작정 달리기보다 쉬어가려 퇴사를 결심했는데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조급함이 큰 걸까 고민해보면 결론은 또 금전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벌써 퇴사 후 3개월, 뼈 빠지게 일한 대가의 퇴직금이 주어진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였다. 그만큼 신나게 놀았던 대가로 이제 돈이 거의 닳아가기 때문이다.



처음 퇴사하면서 먹었던 마음이 딱 퇴직금을 온전히 나에게 다 쓸 때까지 열심히 놀자는 거였는데, 생각 외로 온전히 내가 고생해서 얻은 나만의 퇴직금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들어갔다. (부모님이라던가, 집이라던가) 이를 오롯이 나 자신에게 투자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은 이제야 든다. 그렇다고 크게 쓴 돈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돈은 누군가의 삶을 좀 더 편안히 만들어줬으니. 당장 먹고는 살아야 하고, 모아둔 돈을 쓰기는 싫은 이 배반적 마음가짐이란.





사실 예전보다는 돈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정말 많이 줄었다. 불안했던 청소년기와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던 20대 초창기와 비교해보면 말이지, 돈이 내 인생의 최우선적인 가치에서 빠졌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나 자신과 남을 둘러볼 여유도 생겨났다고 느꼈다. 국어교육과에서 최초로 미국 교환학생을 가면서도, 홀로 남미 배낭여행을 6개월 떠났을 때도, 인턴과 아르바이트로 점철된 20대를 달려오면서도.


그동안 많은 경험을 통해 돈을 "잘" 쓰는 법도 배우고, 아등바등하지 않는 마음가짐도 터득했다.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돈으로 인한 여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높아진 자존감과 다양해진 문제 해결 방식, 상처를 극복할 용기가 생겼으니까.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항상 필요한 물질이 돈임은 부정할 수 없고(솔직히 없으면 못 살지 않는가?), 스스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하고픈 것도 많은 나. 그러려면 돈이 많으면 좋겠지. 그래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터이다.



그럴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적당히 버는 행복한 삶에서 그 '적당한' 돈의 기준은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전국으로 출장 다니던 시절. 하루를 열흘처럼 살았던 나날들.

지난해 6월, 퇴사를 고민했던 건 그런 지점에서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연봉 4천을 받는 사람은 월 300 조금 안 되는 돈이 통장으로 떨어진다. 잘 저축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연봉 3천5백이면 약 250. 솔직히 월 200~300만 원 정도의 돈이면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사고(다는 못 사도 안 부족하게는 살 수 있다) 놀고 싶은 것 놀고 선물할 것 선물하고, 갖고 싶은 것 가지고, 그리고 심지어 저축도 가능한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며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생이 따른다. 이 세상의 모든 회사원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렇다고 자영업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 친구의 예만 봐도 사업 스트레스가 더 큰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회사 일에 대한 심적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 물론 일이 잘 맞고 즐거웠다고 생각했으나, 그 재미있는 감정은 셀프 모티베이션, 자기 위안에 따라 만들어진 감정이기도 하다. 일이 너무 힘드니 스스로를 재밌다고 세뇌시켜 계속 돈을 버는 과정이었던 걸까.


2년 반 여를 일하며 배운 점도, 얻은 점도 많았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참 많았더란다. 매일 밤을 새우고, 야근을 하고, 몸을 혹사시키며 느꼈던 바는 아, 목표를 이루고자 회사를 다녔는데 돈을 벌면 다시 그 돈을 제대로 된 곳에 잘 쓰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쓰게 된다는 것이다. 


회사 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번 돈을 욕구 충족과 스트레스 해소, 병에 걸려 병원에 다 쏟아부 버렸던 때가 2년이 막 지났을 때였나. 일하고 돈을 벌었다는 게 의미 없을 시점에 이르자 인과 관계가 완벽하게 도치된 것 같았다. 병원에 다니려고 돈을 버는 꼴이 된 셈이다.


그렇기에 퇴사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회사보다는 좀 더 편하게 일하거나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도 비슷한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가서 더 큰돈을 벌자는 게 아니고.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마음 속의 꿈을 항상 품고 다니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지만-커뮤니티 바와 나만의 숙소- 실현을 빨리 할 줄은 몰랐다) 일단 무작정 바다 앞에서 살고 싶어 거제도로 향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거제도에 터를 잡고 머무르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많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돈에 대해 욕심이 있고, 또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거제 한달살이를 시작하며. 이땐 뭐가 이렇게 고민이 깊었을까?


맞다. 내가 돈에 욕심이 있다는 건 정말 맞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돈에 아등바등하면서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돈이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이다. 과연 나뿐일까? 세상엔 그리고 돈을 욕심내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그런데 하나 그 지점과 다른 생각은, 내가 생각보다 크나큰 돈에는 욕심이 없다는 거다. 나는 월 천, 이천을 벌자는 게 절대 아니다. 물론 그렇게 쉬이 돈을 벌면 좋겠지만, 안 되는 게 당연하다. 그 돈을 버는 만큼 바빠질 것도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월 200을 벌더라도 조금 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자유롭게 갈 수 있으면 더 좋다. 누군가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네~ 하겠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


난 사실 디지털 노매드를 선호하고 동경하며,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즉 노트북 하나 들고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으면 되고, 여행을 좋아하는 내 수중에는 항상 피곤하거나 힘들 때 어디든 휙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여유 자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 



Photo by Dan Burton on Unsplash


위에서 서술했듯이 먹고살 만큼의 적당한 돈은 월 150~200이라도 가능하다. 사실 조금 더 적어도 먹고살 수 있다. 한 달을 10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버틴 적도 있는데 뭐. 단지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면 더 좋겠다는 거지, 그건 뭔가 희망찬 꿈같은 이야기다.


그렇게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괜찮지만, 그냥 내 성격상 뭘 하든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하게 되기에 어차피 뼈 빠지게 할 거 돈이나 많이 벌자는 의미로 바뀌어 "돈 많이 벌고 싶다"라는 표현이 나온 걸 사람들은 알까.





나에게 ‘적당한 돈’이란, 그저 어디든 여행을 즐겁게 갈 수 있을 정도의, 나의 마음을 다소 ‘여유롭게’ 만들어줄 정도의, 주변 사람들에게 밥 한 끼 살 수 있고 베풀 수 있을 정도의 돈. 그 마음의 소리가 요즘은 잘도 입 밖으로 나온다. 예전엔 왜 "적당히 살고 싶어요"라는 말을 못 했는지 스스로에게도 궁금한 요즘.


그 범주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겠느냐만은, 생각 외로 크지 않다. 그리고 그 ‘적당한 돈’을 ‘행복’하게 벌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받지 않는다는 건 정말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기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내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예전엔 어떤 인생을 살면 좋을까 늘 고민하고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생각 외로 이가 힘든 것 같기도 하다. 항상 넌 생각이 많아서 문제라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이를 해결하려 늘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것조차 노력하다니, 나 아직 정신 못 차렸군. 노력도 그만하는 날이 내 인생에서 올까?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또 열심히 살겠지. 동사형 꿈을 품으며.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 조금 더 힘을 내보다가도 바다를 쳐다보며 ‘쉬어가도 돼, 그럴 수 있지, 괜찮을 거야.' 다짐해보는 아침이다.


거제도에 내려오기 전 머릿속 가득했던 잡생각들이 최근 들어 많이 사라짐을 느낀다. 지방 살이는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는 것도. 적당한 돈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재미있는 걸 기획하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꿈을 꾸기에. 거제도는 참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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