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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스콘 Aug 29. 2023

빛나는 상상력과 끓어오르는 사랑

<엘리멘탈>

픽사의 세대교체는 잘 진행되고 있는 걸까? 황금세대(존 라세터, 피트 닥터, 앤드류 스탠튼, 브래드 버드, 리 언크리치) 이후 <토이 스토리 4>처럼 시리즈의 담론을 확장한 대단한 걸작이 나오기도 했고, <루카>처럼 지브리의 순수함과 청량함을 닮은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굿 다이노>나 <온워드>, <메이의 새빨간 비밀>처럼 마음을 살짝만 건드리는 범작이 나오기도 했고, <버즈 라이트이어>처럼 무난하지만 왜 만들어졌는지 모를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세대교체는 필연적으로 시행착오를 겪기 때문에 전성기 때의 완성도를 기대하는 건 다소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픽사의 위상을 생각하면 지금의 영화들에 아쉬움이 짙은 건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엘리멘탈>이 향후 픽사의 세대교체를 더 수월하게 할지, 아니면 더 어렵게 만들지 결정하게 될 거라 생각해 기대와 우려를 모두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시청각적 쾌감의 절정

다행히도 <엘리멘탈>은 어느 정도 기대를 충족해 준 영화였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시청각적 쾌감이었다. 오프닝에서부터 엘리멘트 시티의 풍경을 하나둘씩 보여주는데 가히 절정의 아름다움이다. 4개의 원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는 많은 관객들이 언급한 것처럼 디즈니의 <주토피아>를 연상케 한다.


물론 단순히 아름다운 것에 그친 것은 아니다. 각 원소들의 생활방식은 기발하면서 직관적이라 단번에 이해가 가능하다. 가령 불 캐릭터들이 숯을 통해 음식을 만들거나 공기 캐릭터들이 날아다니며 벌이는 가상의 스포츠인 '에어볼'을 하는 장면은 원소의 특성을 활용한 재치 있는 설정이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무리 없이 엘리멘트 시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피터 손의 빛나는 연출

또 하나 놀랐던 부분은 바로 영화의 연출이었다. <엘리멘탈>은 창의적인 소재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미 피터 손은 전작 <굿 다이노>에서 기발한 연출을 선보인 바 있었다.


특히 먹구름 속에서 익룡들의 부리가 튀어나와 이리저리 활공하는 장면은 상어떼의 지느러미를 연상케 하면서 공포감을 조성한 명장면이었다. 비록 영화 자체는 아쉬운 완성도였으나, 이때부터 피터 손은 자신의 연출력을 어느 정도 증명한 상태였다.


<엘리멘탈>에서의 연출은 <굿 다이노> 때보다 더 향상되었다. 각 원소의 특성과 차이에 따른 소동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예를 들어, 물 캐릭터 웨이드가 자신의 몸을 돋보기처럼 사용해 불 캐릭터 앰버에게서 나오는 불빛을 모아 불을 붙이는 장면은 분명 기발하다. 동시에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원소들이 화합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또한 후반부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원소의 성질로 인해 발생한 위기가 등장하는데, 이때의 연출은 비극의 불가피성과 그로 인한 캐릭터들 간 애절함을 극대화한다. 이를 보면서 나는 예전의 픽사가 떠올랐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반대에서 나를 찾다

<엘리멘탈>은 반대되는 원소의 화합과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는 물이 불을 꺼뜨릴 수도 있고, 불이 물을 끓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왔다. 즉, 이들의 접촉은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의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기에 화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앰버는 부모님의 희생을 떠올리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속여왔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화합과 자신을 찾는 이야기를 그려냈을까?


바로 물에 비친 불이다. 앰버는 웨이드를 추격하던 도중 당황해하며 멈춰 선다. 웨이드의 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앰버가 다리 밑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한 번 더 나온다. 앰버가 웨이드와의 대화를 통해 물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게 되었다는 걸 떠올려보자. 앰버는 물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았다. 즉, 반대되는 성질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진정한 꿈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한 장면만으로 정체성을 찾고 화합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지점은 분명한 성취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서사

이렇듯 <엘리멘탈>은 비주얼과 연출 면에서 기발함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발함이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굿 다이노> 때도 제기된 문제점이었다. 분명히 우리가 아는 픽사는 연출, 비주얼뿐만 아니라 스토리에서도 놀라움을 주는 제작사다. 우리는 평생의 꿈을 이룬 뒤에 오는 허무와 대사 한 줄 없이 이미지와 음악만으로 사소하지만 소중한 추억이 하나하나 모여 아름다운 삶을 만든다는 걸 보여준 <소울>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전적인 수동성에서 벗어난 장난감이 시리즈의 절대 규칙을 깨버리고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간 <토이 스토리 4>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스토리를 가졌다.


혹은 바닷속 여정과 부자간의 성장을 풍부한 상상력과 흥미진진한 각본으로 풀어낸 <니모를 찾아서>나 히어로의 인간적인 매력을 극대화하여 가족 드라마로서 성공을 거둔 <인크레더블> 시리즈의 사례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최대치의 재미를 주면서 서사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엘리멘탈>은 서사적인 충격 없이 다소 전형적인 틀에서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창의적인 소재와 창의적인 각본은 엄연히 다르다.


현실의 문제를 가져온 시도, 절반의 성공

<엘리멘탈>은 현실의 문제를 가져온다. 먼저, 앰버의 부모가 고향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 정착하는 이야기는 누가 보더라도 현실 속 이민자의 이야기다. 불의 민족이 혐오 표현을 듣는 등 차별받는 경험은 인종차별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앰버 가족은 아시아 이민자, 그리고 신도시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웨이드 가족은 백인 중산층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 두 가족의 비교는 계층 및 경제적 차이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거기에 더해 앰버는 부모의 희생과 기대로 인해 부담을 느끼며 자신의 꿈을 저버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픽사는 이 문제들을 다루면서 우리 현실의 갈등을 봉합하고 위로를 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멘탈>이 이 문제들을 과연 현명하게 다루었다고 볼 수 있을까?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을까? 영화가 내세운 건 그저 진심 전하기와 진실한 사랑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민자의 어려움과 인종차별, 경제적 격차에 따른 관점의 차이, 부모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자녀의 문제 등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견고한 문제들이다. 영화는 문제의 본질로 나아가지 않고 원소의 특성을 활용한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픽사에게 혐오 문제와 계층 간 갈등에 따른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건 다소 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가져온 만큼 적어도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가져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라고 한 웨이드의 대사는 잠깐의 용기나 위로를 줄 순 있겠지만 현실의 문제를 봉합하기에는 직설적이고 낙관적이며 편의적이다.


또한 결말부 앰버의 선택에 응원을 보내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도 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차별의 시선을 지울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앰버가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과연 자신의 꿈을 온전히 펼쳐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관객으로서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물론 앰버를 응원하고 밝은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믿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엘리멘탈>은 현실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끌고 온 영화이기에 현실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엘리멘탈>은 지금까지의 픽사 영화를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축에 속한다. 우리는 예상을 뛰어넘는 픽사의 걸작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창의적인 이야기로 우리를 매혹시킨 픽사는 여기에서 멈춰선 안 된다.


하지만 <엘리멘탈>은 탁월한 시청각적인 표현과 향상된 연출을 보여준 영화였다. 특히 시청각적 표현의 경우 역대 픽사 영화들 중 최상위권에 놓을 정도였다. 무시할 수 없는 성취에 향후 픽사의 세대교체가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고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현실을 다루는 태도에 다소 불만을 표했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전한 건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엘리멘탈> 같은 영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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