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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스콘 Oct 26. 2021

짐승의 세계에서 인간임을 외치다

<인랑>을 지켜주고 싶은 이유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나는 김지운 감독의 <인랑>을 흥미롭게 관람했기 때문에 영화 개봉 이후 벌어진 혹평 세례에 당혹감을 느꼈다. 네이버를 포함한 각종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를 읽어보았는데, 배우 논란에 관한 몇몇 글들은 영화 자체가 아닌 오로지 배우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찬 글이었기에 가치가 없었다. 실제로 각종 영화 사이트의 네티즌 한 줄 평을 보면, 배우에 대한 비난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인랑>에 대한 무분별한 혹평이 작품 내의 문제가 아닌 외부의 문제로도 귀결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냉철한 시각으로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분명 <인랑>의 만듦새는 김지운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낮고 실망스럽다. 나는 대체로 이들의 입장에 동의하는 한편,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결국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이 영화에 대한 무분별한 혹평과 비난에 대해 반론하고 이 영화가 지니는 가치를 지키고 싶어서이다. 이는 내가 특정 배우나 감독을 사랑해서가 아니며 긴 시간 동안 이 영화를 기다린 것에 대한 일종의 정신 승리도 아니다. 나에겐 이 영화를 지켜야 할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짐승이 되길 강요하는 집단

영화 속 특기대는 ‘피의 금요일’이라 불리는 ‘과천 오발 사태’ 이후 강철 투구를 장착한다. 이 투구는 자신의 신변 보호뿐 아니라 감정을 숨기기 위한 도구이다. 이후 특기대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행한다.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감정이 없는 짐승과도 같다. 이는 라인홀트 니부어의 사회윤리를 떠오르게 만든다. 니부어는 사회 집단의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성보다 현저히 떨어지며, 개인적으로 상당히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한 바 있다. 또한 사회 집단이 클수록 이기심은 강해지고 도덕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기대의 목적은 통일 한국을 반대하는 반정부 테러단체 ‘섹트’를 처단하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기관이 무장 테러단체와 맞서 싸우는 것은 분명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분별한 희생이나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과천 오발 사태’와 그 이후에 일어난 ‘빨간 망토 자폭 사건’이 그 예다.

 

그럼에도 특기대는 묵묵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영화 초반, 특기대장 박무영(김법래)은 대통령 비서실장(최진호)과의 대화 중 “섹트가 미성년을 폭탄 운반에 쓴 게 하루 이틀이냐”며 빨간 망토 소녀의 자폭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그 사건을 빌미로 특기대를 해체시키려는 공안부의 입장에 불편한 심기를 토로한다. 개인의 도덕심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오로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인간이 아닌 짐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기대는 정의의 집단이라기보다 정의를 행한다는 명목으로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고, 상부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며, 자유의지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짐승의 집단이다.


특기대뿐 아니라 공안부와 섹트 역시 짐승의 집단이다. 공안부는 특기대로 인해 입지가 줄어들자 특기대를 해체시킬만한 스캔들을 설계한다. 그 중심에 공안부 제1차장 한상우(김무열)가 있다. 그는 특기대 해체와 공안부의 이익을 위해 섹트에서 활동했던 윤희(한효주)를 이용하여 친구였던 임중경(강동원)을 위협하거나 김철진(최민호)을 고문하다 우발적으로 죽이고 만다. 그럼에도 그는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일이 틀어지면 분노하거나 무시하고 다음 작전으로 넘어간다.


섹트는 앞서 언급했듯이 미성년자를 폭탄 운반이라는 매우 위험한 임무에 떠넘기는 악랄한 집단으로, 반통일을 주장하며 일반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집단이다. 결국 특기대와 공안부, 섹트 간의 암투는 사상이 다른 인간들의 싸움이 아닌 세 짐승들의 격돌이다. 이를 통해, 영화 초반 특기대와 섹트의 대결과 영화 중반 임중경과 공안부 간의 대결은 짐승이 짐승을 물어뜯는, 매우 잔혹하고 어두운 현실을 대변한다.


멜로의 탈을 쓴 영화

혹평론자들이나 일부 호평론자들이 영화 내에서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부분은 임중경과 이윤희의 멜로다. 액션과 미래의 정치 상황, 멜로라는 이질적인 세 요소가 결합하여 이도 저도 아닌 스토리라인이 되었다며 비판한다. 이는 이상한 일인데, 김지운 감독이 직접 밝힌 바와 같이 영화의 멜로는 서브플롯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대로 멜로가 극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스토리의 중심에 위치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영화 속 멜로는 임중경이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중경과 윤희의 첫 만남, 극의 진행 도중 다소 이상해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두 인물이 국숫집에서 국수를 함께 먹는 장면인데, 뿌옇게 처리된 창문과 다채로운 색의 사용, 한효주의 아름다운 미모가 함께 어우러져 아련한 화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김지운 감독이 영화를 섹시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인데 관객 입장에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후 윤희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에 간 둘은 빨간 망토 소녀 이야기 설명이 끝나고 돌연 키스를 한다. 대다수의 관객이 충격을 받은 부분이며 나 역시 의아했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은 바뀐다. 사실 윤희의 이러한 행위는 한상우의 계략이며 임중경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한 윤희의 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볼 땐 부자연스럽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후에는 납득이 가는 전개인 것이다.


이후에도 멜로는 계속해서 나오는데, 버려진 건물에서 잠을 청하려던 중경에게 한상우의 계략을 전부 알리고 같이 떠나자던 윤희의 오열이 상황을 점점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부분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거슬렸을 거라 본다. 하지만 이후 중경은 전화벨이 울리자 반사적으로 울고 있는 윤희를 내버려 둔 채 전화를 받는다. 이에 실망한 윤희는 순간적인 분노와 복수로 위치 추적기를 작동시켜 한상우에게 알린다. 


이 부분만큼은 강력하게 옹호하고 싶다. 이때 중경은 특기대의 프로텍트 기어와 강철 투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 중경을 윤희는 무수히 많은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 완전히 망가진 내면을 가진 인간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즉, 윤희는 그를 보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경 역시 윤희에게 작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늑대의 모습인 중경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그녀를 이용하고(윤희도 처음엔 중경을 이용했지만) 그녀의 간절한 부탁보다 상관 장진태(정우성)의 명령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경은 여전히 사나운 늑대의 모습이다.


이후 벌어지는 인랑 중경의 공안부 학살 시퀀스는 포악한 짐승의 날뛰는 모습을 관객들의 감각을 모조리 깨워가며 표출한다. 더 흥미로운 건 다음 장면부터다. 임무를 마친 중경은 투구를 벗은 채 미묘한 표정으로 진태와 윤희를 바라본다. 신기하게도 그의 표정만 봤는데도 감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과천 오발 사태’를 겪은 임중경의 감정이자 눈앞에서 자폭한 빨간 망토 소녀를 목격한 임중경의 감정과 동일하다. 이미 앞선 두 사건의 경험은 견고하고 냉철한 중경의 마음을 조금씩 허물게 했다. 집단에 대한 회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 그리고 각 집단 간의 암투 속에서 희생당하는 윤희라는 존재가 짐승에 불과했던 중경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은 둘의 첫 만남이다. 책방에 들어간 둘은 정전이 되자 불을 찾는다. 윤희가 램프에 불을 붙이고 그 불빛은 중경을 비춘다. 윤희는 중경을 비춰주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차가운 내면을 가진 짐승에게 따스한 불빛을 전해준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내면 변화와 사랑은 뜬금없거나 과장된 것이 아닌 앞선 사건들에 의한 점진적인 효과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이 영화의 멜로에 대해 납득한다.


짐승의 죽음, 인간의 탄생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주제는 수동적인 집단의 부품에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의 재탄생이다. 초반부 특기대와 섹트의 대립, 중반부 특기대와 공안부의 대립이 집단과 집단 간의 피 튀는 암투, 짐승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면 후반부 임중경과 장진태의 대결은 개인과 시대의 대립이다. 임중경은 집단의 부품이자 짐승인 상태에서 죄책감과 연민,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상관 장진태의 명령에 복종하고 집단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장진태가 윤희를 죽이기 위해 끌고 갈 때 중경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죄책감과 후회, 슬픔이 극대화된다. 아마도 윤희에게서 과천 오발 사태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여고생들, 자신의 눈앞에서 자폭하여 죽은 빨간 망토 소녀(심지어 당시 윤희가 입은 옷은 빨간 코트였다)가 보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중경은 또 한 명의 희생자가 생기는 것에 큰 두려움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윤희가 죽는다면 그것은 시대에 의해 희생된, 중경의 끊이지 않는 트라우마가 생기는 셈이다. 중경은 어떻게 해서든 희생의 연속성,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윤희를 구출하는 것을 선택한다.

 

즉, 그는 선택을 통해 인간이 된 것이다. 인간의 탈을 쓴 늑대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윤희를 구하기 위해 상관의 명령을 어긴 순간부터 그는 암울한 시대를 대변하는 진태를 거부하고 인간이 되길 선포한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진태와 중경의 대결이 유치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이라며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에 대항하는, 선전 포고를 하는 개인의 모습을 보았기에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렇기에 대결 후 들려오는 총소리는 맥거핀이 아니라 진태가 짐승이었던 중경을 쏜 것이라 본다. 그는 짐승을 쏨으로써 인간 중경만 남게 했다. 이는 중경을 개인으로서 인정한 것이다.


<인랑>이 흥행과 비평 면에서 참패를 당한 것은 김지운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만큼은 아니겠지만 몹시 안타깝다. 프랑스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뱅상 말로사는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는 이상한 영화”라고 한 바 있다. 이 말은 모두가 싫어하는 영화 역시 이상한 영화라는 것이다. 난 <인랑>에 대한 무분별한 혹평은 <아수라>나 <군함도>와 비슷한 현상이라 본다. 이 영화는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었고, 지나치게 비난을 받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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