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나의 머릿속은 축축하고 안개 가득한 어두운 새벽 바다가 되었다. 밝은 밤의 작가 최은영은 섬세하고 잔잔한 문체로 나를 희령의 어둑한 해변에 두고 떠났다. 녹록하지 않은 삶을 펼쳐 놓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모래알이 되어 머릿속을 흘러내렸다. 유명 서점 판매 포인트 13만 부가 넘는 인기 도서인데 완독 후 느끼는 게 고작 이렇다니, 수많은 사람의 감상평을 훑어보며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나는 왜 이럴까 그래 내가 이렇지 하는 자책이 어김없이 나를 파고들었다. 밝은 밤의 주인공 ‘지연’은 바로 내 안에 있었다.
서른두 살 ‘지연’은 이혼 후 희령에서 천문대 연구원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바닷가 작은 도시인 희령은 열 살 때 할머니 집에 잠깐 머물던 때를 제외하고는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이다. 남편의 불륜으로 인한 이혼 후 나아지고 있다고 애써 믿으며 적응해가던 어느 주말, 지연은 한 할머니를 만난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가끔 마주칠 때 반가운 내색을 하던 분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할머니는 “아가씨, 내 손녀랑 닮았어. 그 애를 열 살 때 보고 못 봤어. -중략- 이름이 지연이예요, 내 딸 이름은 길미선.”이라고 말한다.
가족이지만 20년간 만나지 않았던 할머니와 지연의 관계는 조심스럽고 특별하다. 지연이 열 살이던 며칠을 제외하고 엄마가 손을 잡고 할머니를 만나러 간 일은 없었다. 다시 만나 할머니의 식사에 초대받은 지연을 보고 할머니는 자신의 엄마와 닮았다며 한 사진을 내민다. 사진 속 여성은 지연과 닮았고 그 옆에 자그마한 체구의 한 여성이 함께 앉아있다. 일제 강점기 백정의 딸로 태어나 수모를 겪은 증조할머니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새비 아주머니. 지연은 가끔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랑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한 이혼 후에도 부모에게 위로받지 못한 지연. ‘증조모로부터 자신에 이르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아픔을 자책하던 지연에게 따스하게 스며든다.
남자의 바람 한 번으로 이혼은 말도 안 된다며 전남편을 챙기고, 딸의 이혼을 부끄러워하는 아빠가 내 편이 되어줄 것이란 기대도 없던 지연이다. 희령까지 찾아온 엄마는 이혼 후 외지에서 홀로 사는 딸이 괜찮은지 묻기보다 네 젊음이 아깝다며 더 참고 더 버티고 더 열심히 살라고 한다. 위로라며 하는 말들은 상처받은 마음에 또 상처를 얹는다.
나도 나를 위해 하는 소리라던 ‘엄마만의 위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는 엄마의 말을 깊이 생각하지 말고 한 귀로 흘리라고 했지만 모르는 소리 ‘엄마’에게 나오는 말이기에 그럴 수 없다. 가장 위로받고 싶은 곳에서 나오는 가장 위로되지 못하는 말이 얼마나 나를 자라지 못하게 하고 갉아먹는지. 그런 엄마와 멀어질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달나라에 가도 끊어질 수 없는 것이 엄마와 딸의 관계이다. 밝은 밤에서도 딸의 곡성은 저승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나? 깊디깊은 애증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라서 나는 깊게 숨었고 나의 밤은 더 어두웠다. 『밝은 밤』 속 지연이의 밤도 그러했을 것이다. 더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내 탓이다 나를 채찍질했다. 지연도 아픔이 넘쳐올 때면 한없이 넓은 우주를 바라보며 그 속에 나는 작고 작은 의미 없는 존재라고 자신을 지우며 살았을 것이다.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엄마는 왜 그럴까? 그 슬픔의 덩어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잘 살고 싶은데 세상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은 백정의 딸로 수모를 겪고, 남편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한국전쟁을 겪어내며 여자여서 참고 여자라서 무시 받던 힘겨운 삶을 살아냈다. 그래서 기대하지 않고 체념하는 것이 사는 법이라고 딸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도 증조모는 살아내어 할머니를 엄마를 그리고 나로 삶을 이어주었다. 그 삶을 살아가게 해준 것은 새비 아주머니 같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외면해도 내 한구석을 채워주고 내 편이 되어 주었던 한 사람이다.
증조모에게는 새비 아주머니, 할머니에게는 함께 자란 희자, 엄마에게는 여행을 함께 하는 명희 아줌마가 있다. 그리고 지연에게는 전남편을 나쁜 놈이라고 욕해주며 자신을 위해 달려와 주는 친구 지우가 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각자의 새비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새비 아주머니의 고단한 삶에도 우리가 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혼자 오래 살아온 지연의 할머니는 이제는 화사한 빛의 ‘일복’을 입고 소소한 노동을 하며 한 달 한 번 곗날에는 멋지게 꾸미는 ‘스스로 돌보며 사는 법’을 알고 있다. 삼십 대인 나도 지연이도 오래오래 살다 보면 할머니처럼 나를 돌보며 사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밝은 밤 첫 문장은 희령은 냄새로 기억된다고 한다. 후각은 참 특별한 감각이다. 감정과 가장 가깝고 기억을 되살려준다. 지연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10년 전의 희령은 지연의 언니이자 딸을 잃었던 엄마에게 다시 살아갈 정리의 시간이었고 할머니에게는 증조모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어둠의 시간이었다. 그때 희령을 찾아온 10살의 지연이는 엄마와 할머니의 밤을 비추는 빛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있었지만 각각의 마음으로 존재하고 그렇지만 또 함께였다. 긴 밤이 지나 동트는 새벽이 오면 희령의 바다에 혼자 있던 게 아님을 오래된 사진 속처럼 그 옆에 증조모, 할머니, 엄마와 언니가 있었고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 것이다.
사랑을 온전히 내색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딸에게 상처 주던 어머니들, 그녀들도 세상 힘든 일이 겪고 살아낸 사랑받았어야 했던 누군가의 딸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이 그것을 알게 되면 나를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며 원망했던 나의 엄마에게도 화해의 손짓을 내밀 용기가 생기길 바란다.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고백하는 지연에게 할머니는 엄마가 딸을 용서하는 일은 쉬운 일이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그것은 나만의 숙제일 것이다.
지연은 한때 크나큰 우주에 자신을 숨기며 살았다. 그러나 두 번째 희령에서 생활 후 우주의 크기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도 측량할 수 없이 커다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처받고 외면받는 순간 스스로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 이제는 나를 탓하지 않고 귀 기울여 따스함으로 나를 대하길 바란다. 깊은 밤을 버티고 있는 모두와 이 글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