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밍꼬 Jun 21. 2022

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 박완서로부터 [feat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이 책은 엄마의 부엌 옆 책장에서 찾았다. 교사로 퇴직한 엄마는 습관처럼 책 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역할 불문의 노트와 펜을 옆에 다. 선택하는 책의 기준도 모르겠고 같은 책을 몇 번씩 읽는 게 아니면 적당히 도서관에서 빌려보라 말해도 엄마는 그게 더 귀찮다며 개의치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그랬다. 나와는 다른 취향. 그런데 엄마의 책장에서 이 책을 찾았다. 환갑이 한참 지난 엄마에게 잔소리할 때는 언제고 마음에 드는 책을 얄밉게도 가져왔다.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가 쓴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고 얇은 책은 외출할 때 가방에 넣어 읽고 다니기 좋았다. 금방 읽겠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읽다 말다 책은 가방 속, 식탁 위 다시 책장으로 옮겨 다녔다. 그사이 나는 어느 독서 토론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제 도서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였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어딘가에 실존했을 법한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여류작가 심시선, 그녀의 10주년 기일을 맞아 자녀들과, 자손들이 기억하는 심시선을 추억하며 하와이에 모이며 각자 에피소드로 풀어간 내용이다. 오랜만에 외출로 신나서 토론에 갔는데 나는 생각과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못했다. 토론을 위해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2시간은 짧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토론회에 다녀오니 내 생각이 맞나 싶고 머리만 복잡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식탁 위에 있던 《엄마 박완서의 부엌》 표지 뒤 정세랑 작가 추천글이 눈에 들어왔다. ‘일감이 몰려 바쁘게 종종거리던 어느 날 충동에 휩싸여 만두를 만들었다. ... 입에 들어갈 것이 정히 만들며 손끝에 힘을 주면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를 찾게 된다.’는 추천의 글에 다시 책을 폈다. 《엄마 박완서의 부엌》에는 내가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읽고 토론회에서 진정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 박완서의 부엌》에서 자주 배경이 되는 호원숙 작가가 박완서에게 물려받은 집 앞마당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소설 속 심시선의 집 마당 같았다.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며 젊은 작가 정세랑이 삼대에 걸친 가상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에 놀랐는데 책 속 여기, 그런 곳이 있었다. 예전 박완서의 집은 글과 예술이 탄생하고 사람이 드나들던 소설의 주인공 심시선의 앞마당과 닮아 있었다. 비록 소설 속 가상의 인물 심시선은 음식에 재주가 없었지만 박완서 작가의 집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랐던 음식의 온기가 있다. 그것은 달라도 두 곳 모두 작가이자 엄마였던 사람의 입김이 서려 있었다. 엄마와 딸, 아이들에게 세대를 이어 내려가는 삶의 진정성이 닮아있다. 그 시절 살아내 온 사람의 삶이 매일을 통해 세대를 따라 내려간다. 그것이 토론회에서 《시선으로부터》에 대해 내가 하고 싶던 말이었다. 




  호원숙 작가가 들려준 엄마의 부엌 이야기는 맛깔스럽고 생생하다. 굵직하고 선명하다. 그녀가 만드는 음식도 기억 속의 엄마 음식도 방금 한 밥처럼 생생하고 맛깔스럽다.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기 때문일까? 그녀의 문장은 제철 좋은 재료를 가져와 맛을 잘 살린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 같았다. 그런 작가의 글 매를 닮고 싶었다. 그런 문장이 흘러가다 엄마에 대한 기억과 닿는 곳에서는 박완서 작가의 글을 나왔는데 그 글이야 말로 오래 묵은 무엇처럼 그 맛은 깊고 귀한데 군더더기 없이 전하는 맛은 비법을 물어도 아무것도 없다 그냥 했다 말하던 온전한 인생이 배인 할머니의 손맛 같았다. 


  그런 박완서 작가의 맏딸이라니 얼마난 부담을 안았을까. 공립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 덕에 내 학창 시절은 선생님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있었다. 특히 중학교 때는 대부분의 선생님이 엄마와 아는 사이여서 나는 편하게 졸기 한 번이 힘들었다. 항상 허리를 꼿히 세웠던 3년도 피곤했는데, 박완서 딸로서의 삶은 어땠을까?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머니를 닮고 싶고, 더 나아가고 싶었을 텐데, 무던히 자기 삶을 살아야 했을 삶. 그러나 환갑이 훌쩍 넘은 호원숙 작가는 자신만 완성할 수 있는 박완서의 부엌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의 글을 따라 찾아가는 여정에는 뜻밖의 발견이 숨어 있었다 했다.




  책은 어머니에 대한 뭉근한 추억만 있지 않다. 유튜브로 베이킹 영상을 보고 어머니가 물려주신 오래된 가스 오븐에 당근케이크와 레몬 마들렌을 굽고 실한 뉴질랜드 단호박에 생크림을 넣어 수프를 끓인다. 그 맛이 세련미를 더한다. 그러나 가장 진한 맛은  어머니가 남겨놓은 무엇에 대한 글이다. 박완서 작가와의 나의 세대의 간극은 호원숙 작가를 통해 연결되고 그 내용은 세대를 넘어 나에게도 진실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텃밭에서 받은 박을 손질하며 어머니의 소설 [해산바가지]의 한 구절을 기억한다.

내가 첫 애를 뱄을 때 시어머님은 웃돈을 더 주며 사람을 시켜 시골에 가서 해산 바가지를 구해오게 했다. “잘생기고 여물게 굳고 정한 데서 자란 햇바가지여야 하네. 첫 손자 첫 국밥 지을 미역 빨고 쌀 씻을 소중한 바가지니까” 우리 세대가 들었다면 기함했을 구절이, 전에는 이해 못 했을 사랑을 알게 한다.


  짐이 되니 새 책을 그만 사라 투덜거리며 나온 나의 엄마의 부엌에도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이 내 것인 기억이 있겠지? 내게도 엄마 부엌의 성품과 풍미가 전해왔겠지. 또 그것이 나의 음식을 통해 나의 아이들에게 가겠지. 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 노록 노록 애쓰면 사는 나도 호원숙 작가처럼 지긋해지도록 어머니를 따라 살아지면 어느새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도 되어 있겠지.

  눈을 감고 그려 본다.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인 박완서 엄마의 부엌.     

(p18) 어머니는 음식을 많이 차리는 것을 싫어했다. 지나친 것을 싫어하는 성정과도 통하는 것이지만 음식을 많이 하거나 가짓수가 많으면 무슨 맛인 줄 모르겠다고 하며 음식을 남게 될까 지레 걱정하셨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건 참을 수 있지만... “ 어머니의 이런 목소리를 나는 좋아한다. 맛있는 것을 굳이 따라다니거나 집착하지 않는 넉넉한 여유를 따르고 싶다.
(p115) 물건 값을 깍지 않았고 악착스레 더 달라고 하지도 않았던 부드럽고 우아했던 엄마. 얼마 되지 않는 거리로 시장을 보러 나갈 때도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입은 우리 엄마는 얼마나 예뻤던가  
(p147) 남은 음식에 관한 문제를 음식점의 갈비구이가 아니라도 매일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게 그리 구차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 데우고 약간의 조리를 가하여 번듯한 식사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마음이 개운하다고 해야 하나?... 남은 음식을 거두어 먹을 때 떳떳하고 알뜰함에 스스로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다.
 (p157) 음식을 하며 세월이 간다. 음식을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며, 그 음식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추앙으로 채운 서평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