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부모일까?
10월 초에 작성했던 글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자기 전에 창문을 다 닫고 잔다. 다음날 아침이면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둘째 아이가 뒤척이다가 먼저 깨버렸다. 제 딴에는 더웠다보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아직 집어넣지 않은 선풍기 버튼을 누른다. 틀 때마다 강풍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아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장 강력한 바람이 나온다.
“아으, 춥다. 엄마 아빠 추우니까 선풍기 좀 끄자.”
나와 남편은 아이를 달래서 선풍기를 끄게 하려고 사정했지만 아이는 덥다고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추위에 약한 나는 몇 번을 말해도 끄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내가 강제로 끄면 아이도 화를 내거나 울 게 뻔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찬바람은 싫고 선풍기가 켜져 있는 꼴은 못 보겠고, 답은 하나였다. 얼른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그 뒤 한참을 거실에서 핸드폰 속 인터넷 세상에서 놀았다. 다시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 보니 계속 답다고 했던 아이는 그새 잠들어 있었고, 아마 아이가 잠든 뒤로 남편이 선풍기를 끈 것 같았다. 한 순간 내 짜증을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화를 냈다면 다들 다시 단잠에 빠진 이 시간을 맞이하진 못했을 것이다.
뭐가 자꾸만 나를 화나게 만드는 걸까? 머릿속 화 폭발 스위치는 누르는 손은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다시 잠든 아이 곁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봤다.
브런치 이웃 작가님의 글을 떠올렸다.
통제, 지배, 의존성.
앤절린 밀러의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책에서 남편과 아이를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엄마에 대해 말한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이다.
경제권을 쥔 남편에게 무슨 자격지심이라도 있는 걸까? 자꾸만 남편보다 내가 더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었다.
‘육아에서만큼은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 난 육아서도 열심히 찾아 읽었어.’
남편이 육아 전문가들의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라고 보내주면 화를 냈다.
“내가 부족하다는 거야? 이 동영상 내용은 이미 나도 알고 있는 거라고. 나한테 이걸 보내는 의도가 뭐야?”
좋은 아내가 아니란 건 진즉 깨달았다. 요리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청소도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이젠 좋은 엄마 자리마저 흔들리니 참을 수가 없었다.
‘좋은 엄마’라고 썼지만 ‘완벽한 엄마’라고 읽는다. 마음속에 자리한 이 ‘완벽함’에 대한 강박은 꽤나 단단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나도 못 가진 완벽함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자고, 육아를 시작하며 의식적으로 마음 다스리기를 몇 년간 했는데도 의식 깊은 곳에선 여전히 얽매여 있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남편도 아이도 내게 의존하게 만드려 했다. 나 없이는 안돼 하면서. 남편도 동등한 내 파트너가 아니라 돌봐줘야 할 큰 아이로 여기며 아이들과 동급으로 놓았다. 다들 내 말 잘 들어. 그들은 내 뜻대로 통제하고 내 지배하에 두려고 했다.
이는 나 자신에게만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자격지심으로 괴로워했다. 일하는 나는 실수투성이의 부족한 사람 같았다. 임신을 하며 일을 과감히 그만두었다. 그러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육아로 10년 가까이 경력 단절을 이어가며 자존감이 다시 바닥을 쳤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런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가정과 육아에서만큼은 내가 더 전문가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잘난 사람이란 걸 드러내고 싶었다. 그게 가능하려면 결국 상대방을 내게 의존하게 만들고, 그걸 통해 내 뜻대로 행동을 통제하고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말을 듣고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나고, 내 말대로 움직이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왜 내 통제대로 안 되는 건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불안함을 느꼈다. 여기에서마저 실패하면 부족한 내가 서 있을 곳은 영영 없어질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비합리적인 생각 속에서 살아왔다. 이러한 생각은 만들어낸 잘못된 믿음이다. 불안함과 두려움이 만들어 낸 것들.
이 글을 쓰고 서랍에 묵혀둔지 2주 정도 지났다. 그새 날씨가 급변해서 서울은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라고 말이 나온다. 내가 사는 남쪽 동네도 곧 한파라는 일기예보를 들었다.
오늘은 반대로 남편이 아이에게 화를 냈다. 큰애가 주의집중력이 낮아서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한다. 실수로 그만 남편이 아끼는 물건을 박살 냈다. 신상이면 차라리 구하기라도 쉽지 오래된 거라 남편도 참기 힘들었나 보다. 곰 같은 아빠가 화를 버럭 내니 애들이 엄청 무서워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소리 질렀다.
“애들이 무서워하잖아. 그만해!”
그런데도 화를 계속 내길래 애들을 방으로 몰아넣고 짧은 시간 동안 크게 싸웠다. 가끔 난 남편에게 ‘이 구역의 미친 x은 나야.’라는 걸 드러내 보이는데 오늘도 그렇게 해서 화를 강제로 멈추게 했다. 지금은 다들 화해하고 남편과 아이들은 놀러 나갔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나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모습은 비슷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로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