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해슬 Sep 14. 2021

우리 아이는 느려요

2015년 가을, 엄마가 되었다. 육아서를 공부하며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언어 발달에 책 읽기가 좋다고 하니 그림책을 잔뜩 사들여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한 번이라도 더 읽어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는 책에 관심이 없었다. 어떤 아가는 돌 전부터 그림책을 본다는데, 우리 아이는 책을 읽히려 들면 뺏어서 던졌다. 싫다고 몸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어쩌다 책에 관심을 가질 땐 책을 찢거나 씹으면서 웃었다.



“우리 애는 다른 애들보다 좀 느린 것 같아요.”

친정 엄마를 보며 하소연했다. 책을 거부한 것부터 심상치 않더니 말이 트이는 것도 느렸다. 육아서에서 보면 두 돌 전후로 말을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두 돌이 지나도 ‘엄마, 아빠’를 제대로 못했다.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손에 꼽힐 정도였다.


불안한 마음에 맘 카페를 찾았다. ‘늦게 터지는 애들이 있어요. 그래도 한번 시작하면 문장으로 쭉쭉 말해요.’ 다른 엄마들이 쓴 글이나 댓글에 위안 삼아 기다리기로 했다.


세 돌이 지나고 드디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자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말하기의 출발선에서 스타트는 늦었지만 금방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아이가 문장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왜요?’ 병에 걸릴 줄 알았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시간이 흘러도 아이를 보며 ‘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라는 기분 좋은 탄식은 나오지 않았다.


5살에 언어 검사를 한 뒤 또래보다 1년 반 정도 언어 지연 판정을 받았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센터를 다니면서 언어치료를 받았다. 비싼 돈도 문제였지만 아이에 대한 교육관이 남편과 달라서 무던히도 싸웠다.


남편은 말했다.

“좀 더 느긋하게 기다려봐. 네가 애를 이상하게만 보고 있으니 뭐든 못마땅한 거 아니야?”


그걸 듣고 소리를 질렀다.

“이러다 시기 놓쳐서 영영 문제가 되면 어떡할 거야? 남들이 우리 애를 보면서 쟤 이상하다고 뭐라 하면 오빠는 감당할 수 있겠어?”


결과적으로 몇 개월 뒤에 아이의 언어는 또래 수준으로 올라왔다. 이게 남편의 생각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 것인지, 아니면 내 생각처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나아진 것인지 모른다.


현재 초등 입학을 앞둔 아이는 발음도 좋고 무난하게 말한다. 한글도 읽고 쓸 줄 알며 그림책도 좋아한다. 혼자 읽다가 궁금한 건 질문도 하고 새로 알게 된 지식은 우리에게 자랑스레 알려주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우리 아이는 내가 세운 기준 속에서 항상 느렸다. 남들보다 느려요, 남들보다 못해요, 남들보다……. 아이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마다 좌절했다. 누군가 엄마는 강하다고 했지만, 아이 앞에서 나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 약함은 바로 아이를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했다는 점이다. 어떤 엄마는 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느긋하게 기다렸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다. 남들만큼 하면서 살아왔는데 왜 내 아이만 뒤쳐지는지 원망스러웠다. 그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대로 자란다. 어지간해서는 부모가 애써도 단숨에 언어 영재가 되지 않고, 언어 교육을 안 한다고 말을 못 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부모가 그 속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 교육은 조기부터 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학교에 가서도 지속적으로 받는다. 뒤돌아보면 단지 몇 년 차이일 뿐이었는데, 그 속에서 남들과 다르다며 못마땅했다. 앞으로도 아이는 계속 자라고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은데 고작 1,2년 뒤쳐지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내 기준의 잣대는 타인이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 무간지옥에 들어갔다. 기준을 아이 자체로 두고 키운다면, 아이의 성장을 보며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이다.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자라준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오늘도 배우고 성장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아이는 겁이 많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