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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해슬 Sep 12. 2021

우리 아이는 겁이 많아요

3  아장아장 걷는 첫째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을 때였다. 주인은 벤치에 앉아 있고,  곁에 순한 강아지  마리가 쉬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귀엽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저쪽으로 가볼까?” 아이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강아지 앞으로 데려갔다.  상상 회로 속에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강아지를 예뻐하는 우리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강아지를 발견하자 예상과는 달리 겁에 질려 내 다리에 매달렸다. 자신을 빨리 안아달라고 재촉했다. 그 강아지는 멍멍 짖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엄마 품에 안겨 강아지를 외면하는 아이를 보며 ‘아, 우리 아이는 겁이 많나 보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아파트 화단 꽃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도 질색했다. 산책로를 걸으며 자그마한 날벌레들이 보이면 소리를 지르며 품에 안겨서 바들바들 떨었다. 길고양이를 멀리서만 봐도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5살 때 즈음 밖에 나가기만 하면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몸을 흔들며 걸었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개미를 피하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걸 알았다.


아이의 반응 하나하나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만 유난스럽게 구는 것 같아 한숨이 늘고 짜증이 솟구쳤다. 어느샌가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아파트 1층에 살아서 창문을 통해 한 번씩 거미가 들어온다. 어느 날 거미를 발견한 나는 “악, 거미야. 얼른 잡아야 해.”하며 휴지로 누른 뒤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데 한 마리가 더 있었나 보다. 거미를 발견한 둘째 아이가 ‘악’ 소리를 지르며 거미가 있다고 알려줬다.

‘어라, 우리 둘째는 겁을 안 내는데 왜 소리를 질렀지? 아차, 내가 조금 전에 거미를 보고 큰 소리를 냈었어.’


그때부터 내 행동과 말 습관을 돌이켜 봤다. 1층에 살다 보니 집안에 날벌레가 자주 들어온다. 눈에 띄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질색하거나 과한 몸짓으로 벌레를 잡았다. 엄마도 저렇게 무서워하는데, 정체를 알 길 없는 그 조그마한 벌레들이 첫째 아이 눈에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아이의 불안은 엄마를 학습하며 무럭무럭 자랐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개미편 자연관찰 책을 읽어줄 때였다. 둘째 아이에게 “자꾸 개미 밟으면 개미가 화나서 콱 깨물어. 그러면 안 돼.”라고 말했다.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심코 말했던 건데, 첫째 아이는 내게 물었다.

“엄마, 개미가 깨물면 많이 아파요? 그럼 어떻게 걸어야 해요?”

첫째 아이는 동생에게 물린 경험이 많다. 동생이 야무지게 형을 깨물어 이빨 자국을 선명하게 찍어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고통을 아니 개미가 깨문다는 말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상력을 자극해서 아이에게 공포를 안겨준다는 걸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저기 강아지 산책하네. 지나갈 때까지 엄마랑 같이 여기서 가만히 있을까? 그래도 무서우면 엄마 손을  붙잡고 있어도 .”

아이가 불안에 떨지 않도록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쓰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이제야 깨달으며 엄마는 오늘도 아이를 통해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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