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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Jun 13. 2024

야오야이 어드벤처

난생처음 탄 스쿠터

야오야이. 이름부터 낯선 이 섬.


 항구에 내리자 스쿠터 업체 직원들이 4대의 스쿠터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스쿠터를 못 타는 사람은 나와 유미뿐이었다. 유미는 자연스럽게 남자친구 앤톤의 뒤에 탔고, 나는 누구의 뒤에 탈지 고민했다. 일단 나의 룸메이트인 로렌의 오토바이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도 오랜만에 타는 초보라며 자신 없어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칼로스에게 갔다. 자신보다 이안이 더 잘 탄다며 이안에게 가라 했다.

1시간 전에 처음 만난 이안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안! 네가 전문가라며? 나 좀 태워줄 수 있어?”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전문가라기보단 그냥 조금 잘 탈뿐이야. 뒤에 타. 같이 가자!”


 항구에 홀로 남을 뻔한 나를 구해준 이안에게 감사하며 그의 뒤에 앉았다. 나는 어디를 잡아야 할지 몰라 일단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안은 웃으며 말했다. “어깨보다 허리를 잡는 게 나을걸.” 나는 어색하게 이안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렇게 나는 이안의 허리에 의지한 채 스쿠터에 몸을 맡겼다. 그의 허리는 생각보다 얇아 두 손으로 거의 감싸질 지경이었다. 이 얇은 허리에 오장육부가 다 들어있는 건지 의심이 되었다. 이안은 스쿠터를 출발시켰다. “으억” 외마디 비명이 새어 나왔다.


 비명을 지른 게 민망하게 5분 만에 정차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스쿠터를 가게에서 직접 고르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혼자 스쿠터를 타고 싶어졌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자전거를 탈 줄 알면 생각보다 쉽게 탈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 따릉이 실력은 꽤 출중했다. 두 번째는 영어 울렁증 때문이다. 이안과 함께 다니면 하루 종일 영어를 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영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스트레스였다. 마지막으로, 이안에게 계속 신세 지는 게 미안하고 불편했다.


 스쿠터 가게 직원과 이안에게 시동 거는 법과 브레이크 잡는 법, 앞으로 나가는 법, 시트 여는 법 을 배웠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출발할 때 중심을 잡는 것이 좀 어려웠지만, 곧 익숙해졌다. 이점은 자전거와 비슷했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노란 스쿠터와 핑크색 헬멧을 골랐다.


 정비를 마친 우리는 10분 거리에 위치한 해변으로 향했다. 온 신경을 스쿠터 타는 데에 집중했다.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온몸을 지배했다.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아스팔트에서 모래로 바뀌었다. 때문에 스쿠터가 모래에 푹푹 빠졌다. 앞서가는 친구들을 따라 최대한 안전한 길로 향했다. 모래에 바퀴가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한 속도 이상을 달려야 했다. 곡예를 하듯 겨우 중심을 잡고 모래를 빠져나와 주차까지 끝마쳤다. 모래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무사히 도착한 나 자신이 제법 기특했다. 


 우리는 해안가에 자리를 잡아 잠시 수영을 했지만, 쓰레기가 많아 다른 해변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는 30분 거리에 있는 비치클럽이었다. 유미언니가 괜찮겠냐 물었지만, 자신감이 붙은 나는 주저하지 않고 따라가기로 했다.


 스쿠터에 시동을 걸어 모래 바닥을 다시 지나갔다. 이번에도 정신을 집중해 모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내 앞에 가던 로렌이 중심을 잃고 옆에 있는 도랑으로 빠졌다. 다행히 로렌은 다치진 않았고, 힘을 합쳐 스쿠터를 도랑에서 끄집어냈다.


 드디어 다시 출발하려는데, 이번엔 내가 넘어졌다. 스쿠터가 말을 듣지 않아 당황한 나머지 손잡이를 더 돌려 속력을 낸 것이다. 더 속력이 붙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창피함이 몰려왔다. "젠장…젠장…"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아 곧장 일어나 스쿠터를 세웠다.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박살 났다. 이걸 당장 수리하러 스쿠터 가게로 돌아가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친구들이 괜찮은지 살펴보러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아주 멀쩡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넋이 나간 나에게 친구들은 약을 사러 일단 세븐일레븐에 가자고 했다.


 세븐일레븐에 도착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바지에는 구멍이 뚫렸고, 흰 셔츠는 흙먼지로 노랗게 변해 있었다. 오른쪽 팔꿈치와 무릎, 골반 쪽에도 쓸린 상처가 있었다. 그래도 햇빛을 피하려고 입었던 긴 바지와 긴팔 덕분에 조금은 덜 다쳤다.


 앤톤과 로렌은 함께 약을 찾아주고 소독을 도와줬다. 생수로 흙을 씻어내고 알코올로 소독한 후, 빨간약을 발랐다. 로렌은 나의 팔꿈치를 소독해 주며 이것도 다 추억이 될 거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겼다고 위로해 줬다. 로렌의 말처럼 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상처를 치료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스쿠터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비치클럽에 가지 않고 근처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어도 됐는데, 그때는 무조건 비치클럽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게임의 퀘스트 모드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친구들이 갈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도 씩씩하게 당연하다고 답했다.


 유미 언니와 앤톤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출발했다. 넘어진 이후로 나도 모르게 겁을 먹었는지 이전보다 더 천천히 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앤톤은 내 스쿠터에 이상이 있는지 계속 물었다. 나는 내가 불안하게 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답할 뿐이었다. 결국 앤톤과 유미 언니는 나에게 세 가지를 명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첫째, 자전거처럼 일정속도 이상을 내어야 스쿠터가 중심을 잘 잡는다. 둘째, 도로에서 턱을 조심해야 한다. 셋째, 도로 가장자리로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앤톤의 조언 덕에 무사히 비치클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사히 살아서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힘이 빠졌다. 친구들은 곧장 바다로 들어갔지만, 나는 그늘에 앉아 코코넛 주스를 마시며 멍을 때렸다. 30분 정도 멍을 때리고 나니 바다에 들어갈 기운이 생겨, 보노보노처럼 배영을 하며 둥둥 떠다녔다. 파도는 거의 없었고, 물은 따뜻했으며 모래는 부드러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패딩 입고 있었는데. 저번주에는 회사에 앉아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딘지 모를 바다 위에 떠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스쿠터를 타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지만,

앞으로 1주일 넘게 유럽친구들과 영어를 써야 한다는 사실도 막막했지만,

앞으로 뭐해먹고살지 막막했지만,

그 막막함 아래 숨겨진 미래를 기대하며 바다 위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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