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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 Jul 26. 2023

나쁜 일이 좋은 일보다 많을 때

안타까운 뉴스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다. 최근 며칠 동안에도 신림 칼부림 사건으로 사람 한 명이 사망했고, 전국에 독극물이 든 소포가 도착했고, 교사 한 명이 자살했다. 잘 살고 있었더라도 괜히 죄책감이 생기는 나날들이다. 세상에 감도는 우울감과 어두움이 나를 덮쳐버릴까 봐 두렵기도 하다. 기후위기, 혐오, 폭력 등 우리는 수많은 위험에 놓여있다. 우스운 건 그렇게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어도 막상 내가 고민하는 건, '난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살 빼고 싶다' 같은 사소한 문제들이다. 세상이 물에 잠기고 있는데 거울을 보며 볼살이 빠졌는지 그대로인지 확인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부류에 어쩐지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때 나는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간간히 건너 건너 부고 소식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본 적은 없었다. 막연한 공포가 더 무서웠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죽음이 우리 가족을, 나를 덮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열다섯 살의 나를 불안하게 했다. 국어 수업을 들을 때에도 머릿속으로는 죽음을 시뮬레이션했다.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죽음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상상 속에는 나의 죽음, 부모의 죽음, 동생의 죽음, 친구의 죽음이 있었다. 모든 상상의 끝은 언제나 비극이었으므로 그 시절의 나는 잔잔한 우울감을 마음속에 파묻고 살았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자동으로 신에 관심이 생겼으며 가톨릭 신자였던 나는 성당을 꾸준히 나갔다. 성당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공간이었는데 성당에 가면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이었다. 눈을 꼭 감고 마음속으로 신에게 하소연도 했다. 마치 내 고민을 하느님과 예수님만은 알고 계실 거 같았다. 죽음과 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열다섯의 나는 세상을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이기적인 사람들을 특히 싫어했는데, 어차피 다 죽을 텐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답답했다. 재미없어 보였고,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절대 그들처럼 되지는 말아야지 다짐했다. 

 지금 다시 보니 그때의 내가 참 어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다. 폭우가 쏟아져 어딘가가 물에 잠겨도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살아간다. 과거 나의 논리에 따르면 당장이라도 그들을 구하러 달려가야 한다. 스무 살의 나는 홍수 피해 기사를 본 뒤 마음이 아파진다. 눈을 꼭 감고 홍수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게 끝이다. 이후부터는 밥을 먹고, 과제를 하고, 잠을 잔다. 나는 이기적인 걸까.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니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열다섯의 나는 염세적이고 반항기가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했다. 먼 훗날 내가 어른이 되면  보란 듯이 이타적이게 살고 싶었으니까. 5년이 지난 지금 열다섯의 나에게 묻고 싶다. 네가 보기에 지금의 난 어떠냐고 말이다. 왠지 열다섯 꼬맹이한테 호되게 까일 것 같다. 아닌가,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했으니 따뜻하게 말해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속으로는 마음에 안 들어할게 분명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축하해야 마땅한 좋은 일은 아주 극 소수다. 정국의 Seven이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거나, 미숙아 치료에 성공했다는 소식들. 박수가 절로 나오는 기쁜 일들이지만, 나쁜 일들에 비하면 한없이 적다. 나쁜 일이 좋은 일보다 많은 세상에서 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할까?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복잡한 생각들을 계속해서 되새김질하며 침대에 눕는다. 깜깜한 천장을 보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끝내 매우 이기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답을 모르겠다면 끊임없이 질문이라도 하자고 결심하는 것이다. 관심과 시선을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나 같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현대인들이여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자. 우리는 연예인들처럼 1억을 선뜻 기부할 수도 없고, 당장 달려가 물을 함께 퍼낼 만큼 이타적인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이 정도라도 하자.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면,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하는 걸 어떻게 할지라도 생각하자. 같은 지구에서,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낼 수 있는 마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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