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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May 08. 2024

EP.41 언제나 나만 어려운 운동

- 외벽 홀로 첫 완등!

 밖에서 하는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이 안 그러겠냐만은 클라이밍은 더더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홀드를 손으로 잡고 발로 딛으며 가는 운동이기에 홀드의 상태가 참으로 중요한데, 이놈의 홀드가 날씨에 따라 상태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선 누구라도 예상 가능하듯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야외 클라이밍은 어렵다. 홀드가 젖어 평소보다 잡기 어려워 미끄러질 위험이 더 큰데 등반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빌레이가 빌레이를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여름에는 작렬하는 태양을 뒤에 두고 습기에 젖은 홀드를 잡고 올라가기에 운동이 힘들고 겨울에는 홀드가 너무 차가워져 얼 것 같은 손과 얼음으로 인한 미끄러움 때문에 운동이 힘들다. 그래서 야외 클라이밍의 적기는 봄과 가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은 날씨의 영향 따위는 받지 않는다.)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사계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사라져 봄과 가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나 같은 초보 클라이머들은 야외 운동은 점점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실력이 더 안 늘고 그러니 더 야외 클라이밍을 더 못하고 이게 뭔 악순환인 것이야!!!     

 저번 첫 외벽 이후 또 외벽에 나가고 싶어졌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그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고소공포증에 덜덜 떨던 기억과 힘들어서 오토바이를 수 백 번 타던 그 기억들은 다 잊고 재밌었다!!라는 왜곡된 기억만 남아 또 가고 싶어! 가 된 것이다. 나란 여자 누가 뭐래도 정말 단순한 여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첫 번째 외벽을 경험하게 해 주신 선배님께서 또 외벽 모임을 주관하셨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더니 이게 웬 떡이야?!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마음에 기존에 있던 약속을 취소하고 바로 콜을 외쳤다. (이래도 네가 운동 중독이 아니라는 거냐?)    

  

 꿈에 그리던 두 번째 외벽이라니! 이번엔 저번과 다르리라! 진짜 멋지게 해내고 말 것이다! 비장함 마음으로 하루하루 외벽에 갈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 그럼! 계획대로 흘러가면 나의 인생이 아니지! 우리가 가기로 한 갑자기 비가 온다는 것이 아닌가!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두 번째 외벽 경험은 허무하게 무산이 되어 버렸다.  

   

 근데 그거 알아요? 사람이 하기로 했는데 못하면 더더더더더더 하고 싶어다는 것! 두 번째 약속이 파투 되니 가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커져서 진짜 너무 가고 싶어 가 되어버린 상황! 거기다 슬프게도 날씨는 아직 봄인데도 불구하고 27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거보다 더 더워지면 외벽은 진짜 못하게 될 터.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이번엔 내가 직접 외벽에 나갈 사람들을 모집하기로 했다.  

   

 날짜는 5월 5일 어린이날. 어린이들은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는 그날. 나는 득근을 찾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것. ㅋㅋ 그렇게 날짜를 정하고 암장 사람들을 하나둘 꼬시기 시작했다. 가장 꼬시기 쉬운 S를 시작으로 하나하나 사람들을 포섭해 나갔지만 포섭은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포섭에 난항을 겪고 있는 와중 들려온 청천벽력의 소식! 5월 5일에 또 비가 온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놈의 비는 나랑 무슨 원수를 진 거냐? 왜 내가 외벽에 갈려고만 하면 비가 와! 운동을 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이냐! 깊은 빡침과 좌절감이 밀려왔지만 그것들은 절대 나를 막을 수가 없지. 날짜야 아직 당도하지 않았으니 변경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급하게 날짜를 변경하여 암장 사람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날짜가 변경됨에 따라 기존의 약속은 또 취소한 것은 안 비밀)     


 다행히 나를 포함하여 5명의 사람이 외벽에 가기로 했고 그렇게 당도한 두 번째 외벽의 날.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외벽을 나가야 하는 날이 있다면 바로 이런 날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나의 운동은 하늘도 도와주는구나! (며칠 전까지 하늘을 원망했던 1인)     


 저번과 다른 곳으로 운동을 온 터라 스트레칭을 하며 문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발견한 5.9 문제! 보통 외벽은 5.10부터 문제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그것보다 쉬운 5.9라니! 이거 몸 풀기로 딱이겠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려고 벽에 매달리는 순간 내 귀에 들어온 한마디.     


“5.9도 못 풀면 클라이밍 한다고 하면 안 되지”     


그전까지는 걱정이 1도 되지 않았는데 저 말을 듣자마자 밀려오는 걱정. 혹시 나 5.9도 못 푸는 거 아니야? 설마.. 설레는 마음은 곧 긴장감으로 변했고 그렇게 나는 차근차근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긴장과는 다르게 문제는 확실히 쉬웠다. 그러다 보니 평소와는 다르게 거침없이 빠르게 한 홀드 한 홀드 잡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너무 거침없이 빠르게 올라간 탓인지 3분의 2 지점에 올라서자 급 호흡이 가빠져 달려오고 양 두 팔은 펌핑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두 개의 자아의 싸움. 여기서 떨어지면 쪽팔려서 더 이상 암장을 못 다니니 죽을힘을 다해 완등하자는 자아와 쪽팔림이고 뭐고 지금 힘들어 죽겠으니 그냥 포기하자는 자아의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과연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60초 후에 공개 됩...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아의 싸움에선 완등하자는 자아가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그래서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분명 그전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급 고소공포증이 덮쳐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시작된 오토바이 타기! 와. 5.9 풀면서 이게 맞는 거야? 수많은 의문들이 들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른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오로지 완등에 집중하자!! 다양한 죽음의 경우의 수가 내 눈앞에 수도 없이 지나갔지만 이거 떨어지면 쪽팔려서 암장에서 다신 운동 못 한다!! 생각 단 하나로 난 모든 죽음의 경우의 수를 비껴갔다. 그리고 드디어 탑 고리에 로프를 걸었다.     


엄마 나 드디어 아무런 도움 없이 외벽 완등 했어!!     


누군가는 5.9를 완등하고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죽음을 건(?) 사투였고 가장 중요한 건 아무런 도움 없이 첫 완등을 했다는 것! 그것이 제일 기뻤다.      


이 문제 이후 텐 3번을 받고 각도가 엄청난(언제나 그렇듯 나의 기준이다) 5.10b도 완등했지만 그것보다도 사실 5.9를 아무 도움 없이 완등한 것이 제일 기쁘다. 역시 사람은 혼자 하는 것이 제일 기쁜가 봅니다. 아 지금 글 쓰니 또 외벽 가고 싶네. 저랑 외벽 가실 분 진정 어디 없나요? 이번이 가을 전 진짜 마지막 외벽일 것 같은데 저랑 함께 하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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