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YULI /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진 도시, 독일 하이델베르크
여는말: 각기 다른 분야에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10개의 질문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를 맡아 브런치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100KYULI 작가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100KYULI / 평소 순간순간의 일상을 기록하곤 했는데 이렇게 저를 돌아보는 글을 쓰는 건 처음이에요. 가장 사적인 다이어리조차 누군가가 볼 것을 의식해서 쓴 적이 있는데 이 101개의 질문에는 오로지 저에게 집중하며 글을 써보려 합니다.
뉴욕의 하이라인, 플로리다의 올랜도 디즈니월드, 샌프란시스코 모마, 한 해에만 네 번이나 간 홍콩의 곳곳. 내가 사랑하는 장소들은 많지만 그중 내가 장소라는 것에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곳은 독일이다.
(인트로가 조금 기니 바로 본론으로 뛰어넘어 읽어도 지장은 없다.)
대학교 1학년, 그 당시 우리 학교만의 필수 교양이었던 신입생 세미나에서는 5명씩 팀을 이뤄 해외탐방 계획을 세우는 것이 수업이었다. 주제는 자유롭게 선정하고 답사 후 우리나라에 적용 가능한 방안도 계획하여 수행하는 내용이었다. 1학년 전부가 참여하고 여러 번의 발표를 통 해 아시아권 5팀, 비아시아권 15팀을 선발하고 실제로 답사비를 학교에서 지원하여 계획한 대로 답사부터 국내 반영 계획까지 진행해야 했다. 팀장이기도 했고 경쟁심이 강한 나는 답사보다 그저 1등에 목적을 두고 무조건 우승하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색다른 주 제를 찾으려 1주일 간 엄청나게 서치 하고 그 후 1주일은 또 엄청나게 PPT를 만들었다. 우리 팀 5명 중 나를 제외하고 2명은 교양에 크게 신 경을 안 쓴다고 유명한 학과였고, 1명은 과제가 많은 학과였고, 다른 1명은 수업 후 집합이나 체력단련이 있는 체대였다. 한 학기 동안 준비부 터 발표까지 98% 정도를 모두 내가 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그렇게 혼자 열심히 서치한 결과, 독일의 친환경 건축 및 조경이라는 주제를 선정했다.
어쩌다 그걸 찾게 됐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는 사실 다들 암묵적으로 답사 겸 해외여행으로 생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전략적으로 비인기 국가일 것 같은 국가들부터 추리기 시작했고 독일로 정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독일의 우수한 사회공헌 사업이나 개 발 아이템들을 찾았고 그렇게 추려진 최종 후보군은 두 개였다. 독일의 반려동물 입양 및 유기동물 보호 시스템 VS 독일의 패시브 하우스. 전자는 너무 좋지만 독일 보호소와 컨택이 되지 않았고 후자는 그 지역 담당 공무원과 대학 교수와 컨택이 되어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하 여 후자의 주제로 선정하였고 우승팀으로 선발되었다.
우리 팀의 답사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하이델베르크 반슈타트 마을-뉘른베르크였다. 처음으로 가 본 유럽이었지만 별 다를 거 없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건축물과 조경공간을 답사하며 나는 그곳과 사랑에 빠졌다.
처음부터 바로 사랑에 빠진 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여 도심으로 나가는 기차표를 구매하려는데 티켓 머신은 전부 독일어라 팀원들과 헤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매우 친절한 독일인이 다가와 우리를 도와줬는데 티켓 머신에 넣을 티켓값을 달라고 해서 넘겨주고 우리는 티켓을 무사히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숙소에 와서 비용을 정산 해 보니 돈이 꽤 많이 비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티켓 구매할 때 정신없는 틈을 타, 그리고 독일어 특유의 센 발음을 듣느라 더욱더 혼란스러울 때 그 사람은 우리에게 한번 더 돈을 요구해서 우리가 이중으로 돈을 낸 것이었다..!
이런 일과 프랑크프루트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 때문에 유럽.. 뭐 별거 없네..라는 생각이 들 때쯤 우린 하이델베르크 반슈타트 마을로 이동했다.
하이델베르크 반슈타트 마을은 독일 내에서도 친환경 도시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나도 이 도시를 보고 답사 주제를 정했기 때문에 반슈타트 답사는 매우 중요한 일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반슈타트와 사랑에 빠졌다.
반슈타트는 친환경 건축물인 패시브하우스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패시브 하우스란 직역하자면 수동적인 집이다. 액티브 하우스의 반대 개념인데 액티브 하우스는 우리가 잘 아는 태양열 등을 이용해 외부 에너지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집을 말하고, 패시브 하우스는 그 반대로 건축 내부 에너지의 외부 유출을 최소화하여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실내 온도 및 자원을 사용하는 집을 말한다.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탄소배출량도 굉장히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주로 남향으로 창을 내는데 실내의 열을 보존하기 위해 3중으로 설치하고 단열재도 다른 건물에 비해 3배 두꺼운 재료를 쓴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패시브 하우스는 한겨울에 실내온도 약 20도를 유지하고 한여름에는 냉방시설 사용 없이 약 26도를 유지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폐열회수형 환기장치를 이용해 신선한 바깥공기를 내부 공기와 교차시켜 온도차를 최소화한 뒤 환기함으로써 열손실을 막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이런 건축형태가 많이 적용되지만 독일은 2009년부터 프랑크푸르트에 패시브하우스가 아니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 정책을 실행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조경이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쪽으로 가야 했을 수도..?
건물에 대한 답사를 마치고 도시를 돌아다니는데 곳곳에 작던 크던 공원들이 많았다. 도심 곳곳에 그냥 일상생활의 일부처럼 공원이 있는 것도 놀라웠는데 더 놀라웠던 건 그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편히 누워 태닝을 즐기기도 하고, 근처 학교에서 공강 시간에 잠 시 나와 과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집이나 카페뿐 아니라 공원이 사람들에게 여유와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 놀라웠다.
그 당시 한국에서 유명했던 비슷한 유형의 공원으로는 여의도 한강공원이 있었는데 여의도 한강공원은 그런 것을 목적으로 '너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공간 만들어줄게! 여기서 쉬어!'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든 느낌이고 독일의 공원은 그냥 공원을 만들어놨는데 사람들이 내 집처럼 편히 느끼는 일상 속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디자인을 잘 모르던 나였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공원디자인이 사람들이 그렇게 편히 이용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여러 국가를 다니며 조경을 답사한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방문한 독일의 공원들보다도 더 좋은 디자인의 포켓공원들이 다른 나라에 더 많다. 하지만 건축과 조경이라는 특정 주제로 답사를 하며 그 요소들을 눈여겨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고 그만큼 더 자세히 보게 되면서 '나도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공원도 공원이고 일상 속 공간에서 친환경적 요소를 넣고 그걸 사람들이 즐겁게 이용하는 그런 공간. 나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관련 학과를 찾아보았고 조경학과가 내 목표와 부합하여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은 실무를 경험하며 그 정도의 친환경적인 디자인은 못 하지만(아무래도 정책 쪽으로 갔어야...) 그래도 이용객이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조경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의 지금을 만들어 준,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진 도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언제쯤 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종종 그 추억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