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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공일일공 Jan 14. 2021

18. 어머니의 어머니를 기억하는가

100KYULI / 내 인생에서 사랑을 배운 아주 소중한 첫 사람

여는말: 각기 다른 분야에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10개의 질문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를 맡아 브런치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100KYULI 작가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100KYULI / 평소 순간순간의 일상을 기록하곤 했는데 이렇게 저를 돌아보는 글을 쓰는 건 처음이에요. 가장 사적인 다이어리조차 누군가가 볼 것을 의식해서 쓴 적이 있는데 이 101개의 질문에는 오로지 저에게 집중하며 글을 써보려 합니다.




어머니의 어머니, 나의 할머니는 내 인생에서 사랑을 배운 아주 소중한 첫 사람이다.


나의 엄마가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강원도 영월에서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셨다. 장사는 너무나도 잘 됐고 영월뿐 아니라 전국으로 청과물을 배달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그 당시 친구들은 쉽게 접하지 못하던 과일을 매일 먹는 것은 기본이고, 검정고무신에서나 볼 법 한 이야기처럼 친구들보다 항상 먼저 텔레비전이든 의류 잡화 브랜드 등을 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가 보기에 너무 부러울 정도로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애지중지하고 아꼈다고 한다. 풍채가 아주 좋고 근엄한 외모의 할아버지가 작고 아담한 할머니를 소중히 여길 때면 할아버지가 귀여우실 정도였다고.


엄마가 20대 때, 예고도 없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날도 어김없이 과일을 가지고 다른 지역으로 가시던 새벽,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기사는 멀쩡하고 할아버지만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없는 삶을 상상하지도 못하셨던 할머니의 슬픔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 지 않는다. 지금은 덤덤하게 이야기 하시는 그때의 이야기.


그런 일이 있고 몇 년 후 내가 태어났고 엄마는 할머니 댁에서 산후조리를 하며 자연스레 나도 영월의 귀요미가 되었다. 영월 시내 할머니 지 인 분들 중 나를 모르는 분들은 없었고 지금 내 어릴 적 앨범 사진을 보면 할머니 스쿠터 뒤에 타 있거나 할머니 청과물 가게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거나 하는 영월에서의 모습이 많다.


할머니의 많은 손주들 중 나는 가장 예쁨을 받았다고 자부한다. 초등학교 1학년 방학 때부터 7년간 나는 모든 여름, 겨울 방학에 혼자 할머니 댁에 가서 두 달 동안 할머니와 놀고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에 할머니와 나랑의 그 끈끈함은 다른 사촌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할머니 집에서 서울로 가야 하는 날은 세상이 떠나가라 울며 가기 싫다고 난리를 쳤다. 비련의 주인공 마냥 올라가는 날 할머니 집에서 세수를 하면 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울기도 했다. 하하


내가 점차 자라며 방학 때마다 할머니네 가는 것은 줄었지만 그래도 자주 통화하며 할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여전하다.


항상 그렇게 나와 친구같이 오래오래 지낼 것만 같던 할머니가 어느 순간부터는 만날 때마다 살이 빠지고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 가 늙는다는 걸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본인도 그런 것을 느끼시는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고, 약을 타서 마구 털어 넣으신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먹지 말라고, 그냥 나이 때문에 아픈 거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절대 짐이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나 약을 먹는 것이다.


몇 년 전, 병원에서 할머니가 치매 초기 단계를 겪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건망증이 조금 있고, 불면증이 있는 초기 단계라 약을 먹으며 늦추 면 된다고 했지만 가족 모두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였을 거다.
할머니의 자식들은 당장 심해지면 누가 모시나의 걱정이 더 컸던 것 같고, 나는 할머니를 잃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컸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 초기 단계만 겪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점점 외롭다 는 말을 많이 하신다. 할아버지 생각도 많이 나지만 티 내지 않은 려 하는 것 같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매일 가서 노시는 쉼터도 못 가시니 외로움이 더욱 커지고, 그런 증상들은 조금씩 더 심해지고 있다. 무기력함이 사람을 정말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한 적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할머니와 영영 못 보게 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가늠할 수 없는 먹먹함이 많은 생각과 함께 밀려왔다. 그러면서 할머니랑 떨어져도 그런데 만약 엄마랑이라면? 하는 생각은 그냥 바로 떨쳐버렸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일 것 같아서. 할머니와 떨어진다면 워낙 눈물이 많은 감성적인 나의 엄마는 정말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도록 슬퍼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정말 많이 슬프겠지.


내가 결혼해서 애기 낳을 때까지 살아있겠다고 할머니한테 "나는 애 안 낳을 거니까 그럼 할머니 평생 살겠네!"라고 했던 것처럼,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히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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