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 불빛이 모두 꺼지고 주위가 푸르스름한 어둠에 덮인 밤 12시 즈음.
원래 태풍이 북상하는 중이었는데 한반도에 도착하기 전에 소멸하고 대신 바람이 세게 불었다. 고택은 온몸으로 바람과 맞서느라 아궁이 연기 굴뚝까지 덜컥덜컥 떨었다. 화단에 배롱나무도 의연하려고 했지만 진홍빛 꽃들이 놀라 벌써 다 바라 있었다. 바람 때문에 담장 밖 대숲인지 솔숲인지 차르르 차르르 서로의 몸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빗줄기가 내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화장실은 가고 싶고, 날은 어둡고, 화장실은 바람 부는 마당에 있고, 혹시나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물어볼까 무섭고. 그래서 딸을 데리고 나왔는데 갑자기 노란 등이 달린 한옥 처마 끝 마지막 기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이리 와 봐. 깜짝 놀랄걸. 엄마한테 꼭 보여주고 싶어.”
아주 신기하고 이상한 벌레를 발견했으니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런 끔찍한 것을 발견했으면 얼른 달아날 것이지 나를 불러서 공포와 혐오를 공유하자는 저 심보는 무엇인지. 하지만 딸이 부를 때 안 가면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나는 슬리퍼를 끌면서 다가갔다. 여차하면 꺅, 비명과 함께 달아날 수 있는 위치까지만 다가가서 고개를 빼고 보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미 허물이, 아니 정확하게는 유충의 허물이 눈높이 정도의 기둥에 붙어 있었다. 나무 빛이 도는 거무스름한 매미 유충의 마른 허물은 등 부분이 일자로 짝 갈라져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태어나 처음 보는 매미 허물 보았다. 도라지꽃 봉오리를 살짝 눌러 터트릴 때 나는 ‘퐁’하는 소리가 허물의 갈라진 틈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매미는 그 안에서 구겨진 날개를 꺼내어 처마 그늘에서 말리고 ‘맴맴맴’ 울며 날아갔으리라. 어쩌면 낮에 오릉 근처에서 들었던 수천수만의 ‘맴맴매앰’ 소리 중 하나가 이 매미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불국사의 연하문 옆길을 지날 때 시아버지께서 실수로 죽은 매미를 밟고 ‘아이고, 불쌍해라’하고 탄식하게 만든 그 매미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미가 우화한 껍질이라고 딸에게 말해주었다. 매미는 어디에 갔을까 궁금해하는 딸의 말에 속으로 아마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둥 아래를 보던 딸이 마당 구석 배롱나무를 가리켰다. 기둥 아래는 단단한 돌과 흙이어서 이 아래에서 굼벵이가 기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니 ‘화단에서 기어 나왔나’라고 말했다. 배롱나무 아래 부드럽고 검은 흙 밑에서 몇 번의 탈피를 하며 6년을 살다가 7년째에 우화를 위해 흙을 뚫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배롱나무에 올라가 우화를 하지 않고, 겨우 1, 2주를 살다가 죽을 것을, 죽을힘을 다해 이 기둥에 매달렸을까. 얼마나 세게 매달렸으면 이 바람에도 미동도 없이 붙어 있을까.
기둥에 매달린 저 죽음의 껍질은 태풍도 떨어뜨리지 못하리라.
휴가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여기도 매미가 뜨거운 태양에 데여 비명을 지르듯이 ‘쌔애쌤쌤’하며 울었다. 나무가 많은 아파트 단지의 보도 블럭 곳곳에 매미의 사체가 떨어져 있어 밟지 않으려고 땅을 보고 걸었다. 단지 내 산책로에도 개미들이 죽은 매미의 몸에 달라붙어 허겁지겁 움직였다. 이내 고택에서 본 매미의 허물이 떠올랐다. 버려진 허물의 빈 공간 속에 가득했던 7년의 심연을 생각했다. 허물 속에 갇혀 있던 맴맴맴 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매미 울음이 유독 싸하게 들린 것은 아마도 팔월의 첫날에 들은 A의 소식 때문일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관광지를 걷고 있는 내 폰에 카톡,하는 소리와 함께 A의 죽음이 전송되었다. 너무 덥고 배가 고파서 처음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단톡방의 다른 조문 메시지를 보고서야 이해가 갔다. A가 죽었다.
나는 A를 3년 전에 처음 보았다. 유난히 말수가 적고 의사표현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점심을 함께 먹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꾸준하게 했고 성실했으나 성과는 평범했으며, 정리를 잘했다. 외모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단정한 감은 있었다. 3년 전은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격주로 했기 때문에 같이 일했어도 A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늘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얇은 쌍거풀이 있는 동그란 눈 외에는 얼굴을 모른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A의 얼굴을 알지 못할 것이다. A도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A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 속의 A는 말을 걸면 작게 ‘예’하고 말했다. 나는 문득 기억 속의 그 목소리가 A의 목소리인지 궁금해졌다.
등에 업고 다니던 죽음을 끌어내려 그의 등에 올라타면서 A는 무슨 말을 했을까.
죽을 줄 알면서도 흙을 뚫고 올라와 등을 찢는 고통을 감내하고 껍질을 벗고 나온 매미처럼 쇳가루 나는 소리로 울었을까. 그이가 무슨 생각을 하였을지는 알 수 없다. 우화하면 죽는다는 걸 매미는 알았는지 알 수 없다. 휴가가 끝난 뒤 돌아간 직장에서 아무도 A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잠깐 만난 선배는 몇몇을 제외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죽음의 이유를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이의 부모도 몰랐던 A의 슬픔은 무엇이었을까. 선배의 말에 의하면 죽기 전에 매일 다른 책을 두 권씩 들고 다녔다고 했다. 왜 말을 포기하고 책을 읽었을까. 정말 책을 읽었을까.
매미가 매앰매앰 울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러다가 다시 ‘쌔에맴맴맴’하고 울었다. 얼마나 울고 싶었으면 저렇게나 맹렬히 울까. 굼벵이로 땅 속에서 울지 못하고 참았던 그 세월을 응축시켜 토해놓으려니 온 몸이 떨리고 찢어질 것 같다.
일론 머스크가 이 세상은 10억 개의 시뮬레이션 중 하나일 뿐이고, 그중 진짜는 하나뿐이라고 했던가. 말도 안 된다고 싶다가도 기원전 장자도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이야기 한 걸 보면 가능성이 있는 것도 싶다. ‘네오’처럼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 중 한 개를 선택하고 수많은 매트릭스 속에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진실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살지 않는 다른 시뮬레이션 속에서 매미는 기둥에서 내려와 아랫배에 울음을 장전하고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10억개 중 한 개인 또 다른 시뮬레이션 속에서는 A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그이의 목소리가 맴맴맴 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