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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모 Sep 03. 2021

먹고 사는 일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쫒아오느냐. - 김광균, 노신

'퍽'

설거지를 하다가 놀라 돌아본다.

'퍽,퍽퍽!'

조고마한 메추리알이 싱크대와 렌지후드와 바닥으로 온몸을 던지고 있다. 나는 깜짝 놀라

졸이고 있던 메추리알이 담긴 냄비를 들어냈다. 세상에나, 메추리알이 날 수도 있구나...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 메추리알의 작은 몸뚱이에는 모두 콩알만한 검은 점들이 새겨져 있었다. 탔다. 온 힘을 다해 몸을 터트리고 비상했으나 결국은 추락하고 만, 메추리가 되어 비상할 뻔했던 알들의 잔해를 치우기 위해 그날 밤 나는 새벽 1시가 넘도록 청소했다. 그 난리 끝에 만들어진 메추리알 조림은 손바닥만큼이었다. 그나마 오고 가던 딸아이가 집어먹고 나니 검고 검은 간장 국물만 남았다. 식탁에 흐른 검은 얼룩은 간장 자국인지 내 눈물자국인지. 먹자고 하는 짓인데 이게 살자고 하는 짓인가, 싶다.


 요즘 아이가 코로나로 거의 등교를 하지 않아서 일용할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느라 너무 바쁘다. 예전 살림의 두 배 이상 많아진 것 같다. 음식을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두 말 하면 입아프다. 코로나로 여러 가지 배달 먹거리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래도 매일 매끼니를 배달시켜 먹는 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 부득이하게 밥을 할 수밖에 없다. 나름 엄마라 아이에게 매번 배달과 즉석 음식만 먹이는 게 죄책감이 들어서 뭐든 해 보려 하는데 녹록지 않다. 먹지 않고 산다면 많은 시간을 즐거움에 할애할 수 있을 텐데. 만약 먹지 않는다면 실업의 고통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고 노동의 강도는 절반으로 낮아질 것이며 살육의 장면도 줄어들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슬프다.


보통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엄마'다.

여자가 아니다. 엄마다. 1인 가구가 아닌 다음에야 부모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는 다 엄마가 부엌을 데운다. ‘요섹남(요리잘하는 섹시한 남자)’들도 있지만 여전히 칭찬받을 만큼 주목받을 일이다. 아들은 물론 딸도 당연히 밥은 안 한다. 나도 결혼 전에는 부엌에서 라면 정도 끓였지 식구들의 밥을 차리진 않았다. 늘 집에는 밥이 있었고 비슷한 종류의 찌개나 국과 몇 가지 밑반찬들이 있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도 그렇게 가족들의 삼시 세 끼와 도시락을 싸고, 청소며 빨래며 늘 집을 깨끗하고 반짝이게 유지했던 엄마를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인 나는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2차전을 시작한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 동안 집안 곳곳에 흩뿌린 흔적들을 치우고 그날의 마지막 끼니를 준비한다. 설거지로 젖은 손을 닦으면 어느새 깊고 푸른 밤이다. 왜 빨래 개어 주는 기계는 없나 한탄하고 있으면 아이가 슬그머니 나오면서 “엄마, 뭐 먹을 거 없어?”하고 묻는다. 그런 건 아빠에게 물으면 안 될까?

 툭하면 ‘엄마밥’, ‘집밥’하는데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시대에도 밥은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이라는 발상은 변하질 않는다. 좋은 엄마는 밥도 잘 해야한다. 어렵다.

  요즘은 그러한 고정관념은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 그런 ‘고정 행동’은 남아있는 게 어쩐지 미스테리하고 폭력적이다. 역사적으로 요리사는 남자가 훨씬 많은데. 유명한 요리사도 남자가 많고, 연예인도 남자가 요리하면 훨씬 인기가 있지 않은가!


우리 남편도 요리사만큼은 아니라도 요리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쉽진 않다.

맞벌이다보니 둘다 바쁘고 특히 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긴 한국인지라 하루의 대부분을 장시간 임금 노동에 할애하느라 집에 오면 가사나 여가에 쏟을 여력이 없다.

특히 남자인 남편은 퇴근 이후의 또 다른 업무가 많아서 집은 여관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가사나 요리는 조금이나마 일찍 퇴근하는 내 차지가 된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여성의 인권도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여성 노동력이 더욱 착취당하는 구조로 변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맞벌이 가정의 남자는 하루 37분, 여자는 200분을 가사에 무급노동을 투자한다. 가정에서 사회로 돈을 벌러 나가라고 등을 떠밀리면서도 남자는 가정을 쉬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반면에 여자는 가사와 육아를 여전히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직장에서의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 남편도 요리에 취미가 생기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돈도 줄고 잘릴 수도 있지 않겠냐며 염려한다. 열심히 직장에서 안 짤리고 일할테니 시켜 먹자고 한다.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고 묻던 '앱'을 불러낸다.

먹고 살려면 '해' 먹고 사는 것을 포기해야하는 것인가.

이 지긋지긋한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시인의 슬픈 불안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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