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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늘 Aug 15. 2021

일상을 말한다는 것 (下)

<일상으로부터의 해상도 : 단절된 연속, 시선의 화법>




일상의 잘못된 해석은, '흔함'이다.     

어제도 내일도, 그 모레도 흔한 일상은 계속되고, 언제나 올 것이라는 의심 없는 확신.

삶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일상이 계속된다는 말은 자명하다.     

한 가지 달라지는 것은 그 일상의 모습, 질과 태도, 가치이다.      


이제 밖을 나서면, '흰 마스크'의 세상이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고, 우리는 몇 개월 동안 숨 막히는 답답함에 점차 '적응'해 가고 있던 것이 아닐까.     




<일상으로부터의 해상도 : 단절된 연속>, 2021, 장지에 콩댐, 수묵, 호분, 76x70.5cm, 세부






적응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불편한 마스크는 어느 순간 나의 얼굴에 붙어 있는 물체가 아니라 한 몸이 되었다. 

마스크가 있기 전의 일상을 떠올리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멍해진다.

이제 흰 마스크가 '사람들의 눈과 코와 입'보다 먼저 내 눈에 들어온다.      


온통 얼굴은 뿌옇게 흐려져 있다. 

서로의 숨으로 소통하던, 긴밀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자유'와 '편안'이라는 이름 아래에 성립하기에는 힘든 개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알 수 없는 먹먹함에 빠져들게 한다.     


착잡한 답답함, 모호함이다.

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마스크로 인해 점점 흐려지고 뿌옇게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날이, 언제 올까. 오기는 올까.      






<일상으로부터의 해상도 : 단절된 연속>, 2021, 장지에 콩댐, 수묵, 호분, 76x70.5cm


        



 

'변해버린 일상', '사라져 버린 선명한 소통'을 눈앞에 그리며, 꿈을 꾸듯이- 

나는 '사람들의 요즘'. 나타나는 모습과 흘러가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들을 관찰하며, 그 속의 나는 마냥 한숨 섞인 푸념으로 이 상황과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그 한숨 이전에, 내가 변해버린 이 일상을 더 잘 감각하고, 그 감정에 솔직해지기 위함이다.     

나 한 사람의, 개인의 솔직한 감정이, 

코로나가 맞바꾼 일상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 중 하나를 담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는 이야기의 부분일 수도, 전체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림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의 열린 이야기”를 말한다.

나의 회화가 언제나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일상과 삶의 어떤 부분이다.

사람들과 함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먼저 표현하는

내밀한 심연, 겉으로 드러나는 극적인 충돌.     


이번 작업은 ‘코로나 이후 일상’으로 사람들과 함께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일상의 세 단면을 담아내고, 그 단면 속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나누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담담한 회화로, 

오늘 이 시점의 일상을 나의 눈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일상으로부터의 해상도 : 시선의 화법>, 2021, 장지에 콩댐, 수묵, 호분, 78x73cm, 세부
<일상으로부터의 해상도 : 시선의 화법>, 2021, 장지에 콩댐, 수묵, 호분, 78x73cm, 세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일상에 대한 나의 사유와 감정을 조금씩 마주하고, 

이해하고, 그려나가는 중이다. 

경험하는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일상은 미묘하고 모순적이고, 단층보다는 ‘다층’적이다. 

코로나가 찾아온 이후의 우리의 일상이 불편함과 갑갑함으로 변모한 것도 맞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일상은 끝없이 흘러간다. 매일 우울한 것도 아니고, 매일 코로나로 

힘든 일상을 바라보며 지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웃고

여전히 함께 브이로 사진을 찍고,

마스크로 인한 단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듯, 이토록 열심히 살아간다.      






<일상으로부터의 해상도 : 시선의 화법>, 2021, 장지에 콩댐, 수묵, 호분, 78x73cm






코로나가 바꾸어놓은 일상, “비어버린 일상”. 

공(空), 

코로나가 바꾸어놓지 못한 일상, 그 속에 ‘교묘히 감춰진 부정’.

애써 보지 않거나 드러나지 않는 ‘여지의 태점’.


불편한 진실과 같은 ‘어색함, 낯섦’, ‘이상함과 갑갑함’-‘편안함’ 사이의 모순.

때로 자각하지 못하는 코로나가 지은 일상의 ‘작고 깊은 허점’.     

그 ‘태점의 블랙홀’ 사이를 헤매는 작가는 ‘일상에 대한 희뿌연 감정’을, 

자극적인 매운맛의 인위보다는 절제된 무위(無爲)로, 

불편한 충돌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잔잔한 파동으로써 퍼뜨리듯, 

현재의 일상을 향한 물음표의 자태가 가장 ‘자연(自然)’한 모습으로 번져나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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