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코. -세상을 향한 ‘감각’, ‘시선’
그물이나 뜨개질한 천의 눈마다의 매듭을 ‘코’라 부른다. 그 코와 코를 잡아맨 ‘눈’이 모여서 ‘그물’ 이 되고, 코와 코를 서로 끼워서 ‘뜨개 옷’이 된다. 우리 가족은 ‘나’라는 커다란 뜨개 옷을 이루는 한 코, 한 코이다.
동시에, 나는 ‘가족’이라는 촘촘한 그물을 이루는 한 코가 된다.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를 만들고, 연결해주며, 각자의 흐름 속에서 호흡을 맞춰 나간다. ‘허하게 모자란 구멍’은 채워주고, ‘옆’ 은 섬세하게 받혀주면서 하나의 덩어리로 살아간다. 나는 그 덩어리의 이름을 이렇게 부른다.
‘사랑 덩어리’.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모임’에는 -흘러가는 구름, 그리운 시간, 따뜻한 공기와 사람, 그리는 순간과 함께 모든 그림이- 수많은 ‘나의 주변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내게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있는지’ 묻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나는 평범하고 사소한 것부터 특별함을 아우르며 사랑했다. 어려움 없이, 큰 조건을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것을 사랑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정’은 가족이 나에게 차고 넘치도록 전해준 ‘애(愛)’로부터 올 수 있었다.
나는 가족을 통해, ‘나의 감정과 마음’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을 첫째로 배웠다. 더불어 나의 마음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대상에게 고마워하는 심정(心情) 또한 가질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메마르지 않고 샘솟는 정서를 간직하며 ‘살아있기’를 바라셨다. 이것 만이 내가 여러 사람들과 세상을 지혜롭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셨다.
“‘정(情)과 애(愛)’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죽지 않고 진정 깨어 있는 삶이다.”라는 깨달음이 20여 년에 걸쳐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오늘도 나는 조금 더 밝고 맑게 세상을 대 하는 힘을 키우고 있다.
“사랑은 나의 모든 생각과 관찰의 ‘따뜻한 시작’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이다- 총체적인 에너지이다.”
이 세상의 에너지 중, 유일하게 ‘영원한 자원’으로 살아 숨 쉬는 것이 있다면, 사랑이다. 나의 모든 감각 세포를 열어 일깨워주는 힘. 사랑은 하나의 대상과 생각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느낄 수 있게 한다.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한 대상을 사랑하고, 그것은 ‘존중’에서 ‘이해’와 ‘공감’으로 번져 나간다. 비로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존재하는 ‘어떤 것’과 나의 ‘첫 만남’을 유의미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뿌리 깊은 ‘나의 정’이다. 작은 만남도 흘러 보내지 않을 수 있는 이유, 그 대상과의 ‘만남’을 대하는 ‘소중함’에서 비롯한다.
가족들이 부어준 정성 어린 애(愛) 덕분에,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사랑’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나만의 사랑은 ‘그림과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아간다. 그렇기에 이 순간까지, 내가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고, 감사하게 글을 적어올 수 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이 없이는 무엇인가에 ‘진실된 몰입’을 할 수 없고, 나의 안으로 흡수할 수 없다. 나의 내면에 세상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는 ‘백지의 상태’를 만들 수 없다. 백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겠다’는 의지이다. 나는 이유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게 이끌리는 것이 많다.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오래 볼 수 없고,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 세상에 대한 열린 감각, 관찰, 생각이 선행될 때, ‘-을 표현하고자 하는 고유한 마음과 내용’이 일어난다. 즉, 사랑의 마음과 눈이 기초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예술과 가까운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중에는, ‘관찰 놀이’가 있었다. 부모님은 주말이면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내가 타인과 풍경, 사물 등 ‘다양한 존재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부모님은 함께 감각하고 관찰하는 시간을 일상으로 삼으셨다. 하루는 멍을 때리며 붉게 타 넘어가는 ‘해’만 넋 놓고 바라본 적이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해만 뚫어지게 쳐다본 기억, 고요한 가운데 이 세상에서 나와 해만 있는 듯한 기분이 여전히 생생하다. 해와 눈싸움을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면서 눈물도 흘려봤고, 해 주변으로 일렁이는 주홍빛 띠의 움직임을 열심히 쫓아가 봤다. 얼마나 빛이 강렬한지, 뜨겁다 못해 따가운 것을 느꼈다.
“낯선 것은 초롱한 눈빛으로 생경하게 마주하였고, 익숙한 것은 더 오래 보며-” 나는 자랐다. 어둡게 비가 오던 날, 엄마와 나는 공원 벤치에 누워 먹구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를 보며 ‘자유로운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시원한 해방감이 들게 하는, 긍정의 ‘차가움’이었다. 처음으로 ‘꼭 우산을 쓰지 않아도, 가끔은 비를 맞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쓸 때에는 몰랐던 ‘비’에 대한 느낌이 나의 피부로 와닿았고, 순간 전율이 흘렀다. 비는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로워졌고, 내가 느끼지 못한 감각이 또 하나의 데이터로 저장되었다. 어린 마음에 간간이 치는 천둥이 무서웠지만, 내 온몸으로 비를 맞는 느낌, ‘누워 있는 나를 타고 떨어져 내리는’ 빗물을 바라본 기억을 잊지 못한다. 대자로 뻗어서 아무 생각 없이 비를 맞아본 경험이 ‘사소한 빗물’에 대한 내 느낌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실은 일기 예보를 듣지 못한 채 산책에 나갔던 우리는, 우산이 없어 소나기를 맞은 것이다. 쫄딱 젖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해맑게 웃으실 수 있는 나의 엄마는, 평생 ‘우연한 사고와 발견’을 ‘재미있는 경험과 추억’으로 만들어 주셨다. “딸, 우리 비 맞은 김에… 더 맞고 들어갈까? :)”라고 말씀하실 만큼 한결같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신, 순수하신 분이 우리 엄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엉뚱하지만 자유로운 매력에 젖어 들어갔다. 언젠가 엄마와 내가 장을 보고 돌아오며 공터에 핀 토끼풀을 발견하고는, 집에 가 저녁을 차려 먹는 것도 잊고 열중해서 서로의 머리에 ‘토끼풀 화관’을 만들어줄 만큼 말이다. 문득, 길가의 풀 하나에 집중해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나의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풀의 내음을 사랑하고, 빗소리를 애정 하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세상을 감각하는 마음’을 배웠다. ‘어떤 존재감’을 정직하고 순수하게 느껴낼 수 있는 감각. ‘작은 관심’과 ‘정’이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인지를 느끼고 있었다. ‘세상의 숨에 귀 기울여보는 것.’ 나는 그 숨들에 소박한 감탄과 감동의 결을 풀어낼 줄 알았다.
부모님은 나의 감정과 생각에 ‘답’을 정해 놓지 않으셨고, 덕분에 나는 눈치를 보지 않고 많은 감정과 함께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아는 단어가 몇 개 없던’ 어린 나의 옆에서, 엄마와 아빠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과 대상을 주제로 ‘구연동화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뛰어난 상상력을 갖고 계셨고, 감정이입과 그 표현이 풍부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멋진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짧고 단순하지만 솔직한 내 감정을 표현하며 즐거워했고, 그 시간들을 행복해했다. 어쩌면 내 마음은 그때부터 말랑말랑 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이제는 양쪽의 위치가 조금 바뀌었다. 이제는 내가 글과 그림으로 엄마 아빠에게 소중한 시각과 삶의 모습들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엄마 아빠는 나의 마음이 담긴 그림을 보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고 계시다. 그림 속 풍경의 느낌이 어떤지, 무엇이 가장 인상 깊은지를 잔잔하게 말씀해주시고, 나는 그 피드백을 기록한다. 20대의 내가 50대의 부모님을 모시고, 그림 안에 깃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묘한 마음이 솟는 것은 다음의 생각이 크게 다가올 때이다.
“우리가 참 닮아 있다- 혹은 닮아 간다는 생각이 들 때.”
엄마의 키보다 커버린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기 위해 ‘애정’과 ‘깊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틔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야 조금씩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저장해 놓았던 감정과 생각들의 일부를 ‘언어’로 가다듬고, 조형으로 표현해볼 수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하는 행위는 내가 ‘솔직함으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오늘도 나는 사랑으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아 돌아다닌다. 끊임없는 자유로운 영감을 위해서 노력하는 ‘관찰’은 나의 삶에 필수적인 습관이 되었다. 이 습관은 ‘따로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함께 ‘느끼는 경험’을 안겨준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섬세한 감각들이 내 안에서 쌓여 나갈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부모님의 따뜻한 시선 덕분에, 나의 시선은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날들 속에서- 항상 특별함을 찾을 수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함 속에서, ‘별다른 소중함’을 만나 간직하는 것이 나의 모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