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vs 영화 <로스트 도터>
요즘 나는, 딸이 그렇게나 밉다. 이름만 불렀을뿐인데 돌아오는 건 사나운 대답뿐이니 말을 걸기가 싫어질 지경이다. '띡띡띡' 현관문 비번을 누르는 소리,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자동반사적으로 안방으로 뛰어 침대로 몸을 던진다. 그렇다. 자는 척 하는 것이다. 사춘기 딸을 대하는 요즘 나를 보면, 스스로도 우스워 죽겠다.
그런 와중이니 아이의 생일이 다가와도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이미 넉넉하게 가진 '요즘 아이'인지라 필요한 게 도대체 있을까 싶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건, 다름 아닌 아이팟이었다. 엄마인 내가 생각하기엔 중학생 선물 치곤 너무 비싼 물건이다. 여러 사람에게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요즘 안 가진 애들이 거의 없다'였다. 금요일이면 몰아보게 되는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못해준 것만 사무친다하니, 해줄 수 있을 때 해줘야지 큰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당장 내일 받아야했기에 쿠* 회원인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곧장 전화가 왔다.
"너 갤럭시 쓰잖아. 왠 아이팟?"
사정을 들은 친구가 혀를 끌끌 찼다. 자신은 꼴뵈기 싫어서 절대 안 사줄것 같다고. 아이들 선물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친구의 말한마디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치? 내가 생각해도 좀 오바이긴 해.' 처음에 생각한 내 마음이 쪼잔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확인받듯, 친구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난 역시,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되지 못하나보다.
딸의 유학을 위해, 죽은 엄마의 영혼과 죽은 자식의 숨결이 살아있는 집까지 팔아버린 애순이가 떠올랐다.
'그래! 집도 팔아버리는 엄마가 진짜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지, 자식이 갖고 싶다는데 이 정도 살 형편은 되잖아. 돈을 벌지 않는 친정 엄마도 얼마전 날 위해 팔찌 사라고 돈을 주셨잖아. 해줄 수 있을 때 해주자.'
다시 마음을 되잡고, 로켓 배송에 의지를 실었다.
그간의 알수없는 미안함을 씻어내고, 매번 눈을 흘기는 아이의 환히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로켓배송으로 일찌감치 내 손안에 들어왔건만, 여전히 아이는 냉랭했다. 하는 행동 또한 얄밉기 그지 없었다. 내가 왜 저런 자식을 위해 선물을 샀을까? 받자마자 반품을 시키기고 싶었다. 이 쪼잔함은 애순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금명이를 위해 집까지 싹 팔아버리는 엄마, 어떻게해서든 자식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 엄마,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때문에 희생하는 엄마. 이런 한국적 부모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내 얕은 사랑이 순간 부끄러웠다. 나는 저렇게까지 내 자식을 사랑하나? 미울때가 더 많은 요즘인데? 나는 왜 사춘기 투정하나 잘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일까?
수많은 질문과 함께, 오늘도 여전히 화를 내는 사춘기 딸 앞에서 '지겹다'라는 말이 마음에 솟구쳤다. 딱 그만큼, 미운 마음이 마구 올라온 만큼, 죄책감이 먼지처럼 들러붙었다.
그렇다고 이 현실판의 세계에서 자식을 버릴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으니, 영화에라도 기대고 싶었다. 그렇게 <로스트 도터>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로스트 도터>는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 여자 교수의 이야기이다. 해변에서 마주한 젊은 엄마와 아이를 응시하며, 꾹 눌러두었던 자신의 사연과 상처를 마주하기 시작한다. 학문적으로 유망했던 그녀는 두 딸을 낳아 키우며 지쳐간다. 엄마인 우리가 뻔히 알고 있듯, 아이는 그런 엄마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엄마인 레다는 지겨웠다. 끊임없이 요구하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욕망과 꿈을 찾아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떠난다.
"애들이 없으니 어떻던가요?"
"너무 좋았어요. 폭발하려는 걸 참다가 결국 터져버린 것처럼"
너무 좋았다고 하기엔 그녀의 표정은 처참히 일그러졌다.
그녀는 3년만에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다시 돌아갔다고 하더라도 아이들 마음은 생채기가 났을 터이고, 그녀는 그렇게 딸을 잃어버렸다(lost daughter).
예전 같으면 무책임한 엄마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비난했을텐데..
아이를 사춘기까지 키워보니 레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때론 엄마가 아닌, 나로 살고 싶은 순간이 넘치고. 때론 엄마하기 싫을 때도 있는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희생과 사랑만 강요하는 '엄마'라는 이데올로기가 엄마인 우리를 옭죄는 건 아닐까. 엄마 안에도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미워지는 마음이 충분히 들 수 있는게 진실이다. 그 마음조차 터놓을 누군가가 없다면(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표현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엄마 마음은 골병이 들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미움이 일어나는 엄마가 나쁜 엄마는 결코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위니캇의 글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건 그렇다 치고 아기를 미워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엄마가 되는 일을 이상화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나름의 좌절과 지겹게 반복되는 일과가 있고 정말 더이상 못하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아이들을 보살피다가 비슷한 생각이 들지 말란 법은 없다.'
'강력한 원시적 존재가 바로 우리 엄마라는 사실..
좋아하지만 결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게 믿을 수도 없는 인간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어렵고 위태로운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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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또한 엄마를 향한 분노와 증오가 있다. 사랑했던 엄마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점점 알아가는 사춘기 시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엄마를 매번 경험하는 시기이니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흘러넘칠 것이다.
그러니, 나는...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밉게 말하는 딸을 여전히 사랑하되,
<로스트 도터>의 레다처럼, 자식이 지겨워지는 마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너그러이 받아들여야겠다.
모순과 양가적인 감정을 잘 받아들이는 능력을 모성애임을 잊지 말고..
아이인 사춘기 내 딸에게도, 엄마인 나에게도 서로를 향한 미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서로를 향한 사랑만큼 실망할 수도 있다는 걸..
...
그것이 너와 나만이 아닌 우리 모든 존재가 그렇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배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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