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뜨린 물건은 없는지 확인한 후 백팩을 닫고 어깨에 둘러멘다. 방을 나가기 전 화장대 거울을 보고 앞머리가 이상하지는 않은지 체크한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지하철역까지 걸어간다. 항상 그래왔듯이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지하철이 도착하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몇 분 기다렸다가 지하철을 탄다. 정확히 세 정거장을 가서 내린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손목시계를 본다. 시간을 보아하니 오늘도 전력질주를 해야만 하겠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가서 역 밖으로 나선다. 눈앞에는 직선으로 쭉 뻗은 보도가 있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위의 짤막한 글에 제목을 붙인다면 아마도 '과외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나는 과외를 하러 갈 때마다 생각한다. 5분만 일찍 나왔다면 뛸 필요가 없었을 텐데. 최근에는 날씨가 선선해져서 그나마 괜찮지만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더운 여름에는 뛰면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무의식이 과외를 하러 가는 길에도 유산소 운동을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기라도 한 것인지 나는 지금까지도 매번 5분 늦게 나가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과외 수업이 끝나면 때마침 차를 몰고 그 근처를 지나가시던 부모님이 거의 항상 내가 과외 수업을 하는 곳에 들러 나를 태워가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과외 학생과 꽤 오랫동안 수업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야 처음으로 수업이 끝난 후 혼자서 집에 가게 되었다. 그날은 아파트를 나와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과외 수업을 하러 뛰어올 때와는 달리 천천히 걸어가면서 앞쪽이나 발밑이 아니라 도로 건너편을 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내가 그동안 그 길을 따라 뛰어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던 까닭이다. 나무들은 가을을 맞아 잎이 노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예뻤지만 나는 예쁜 것은 둘째치고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지도를 찾아봐야만 했다. 지도는 그 길이 맞다고, 내가 그날도 과외 수업을 하러 오는 길에 뛰어오던 바로 그 길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있는 보도, 그러니까 그날 내가 낯설다고 느낀 그 길 바로 옆에는 큰 공사장이 있어서 보도를 따라 높은 방벽이 설치되어 있다. 매번 과외 수업을 하러 가는 길에 그 방벽을 따라 정신없이 뛰어가는 내 눈에 유일하게 들어왔던 것은 거기에 붙어 있는 우리 지역의 마스코트와 표어뿐이었다. 그렇게 뛰어가다 보면 방벽이 없어지고 어느새 아파트로 이어진 횡단보도가 나타난다. 그날 나는 약간의 의심을 품은 채로 바로 옆에 있는 공사장 방벽을 따라 걸어가다가 내가 매일같이 지나치던 지역 마스코트와 표어가 나타나고서야 깨달았다. 그 길이 바로 내가 두 시간 전에 지나온 길이 맞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 길을 그렇게나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도로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앞만 보고 급하게 달리다 보면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어진다. 그나마 과외 수업을 하러 가는 길은 집에 가려면 반드시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못 보고 지나친 것들을 언젠가는 볼 수 있지만, 인생에는 유턴이 없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리면서 그냥 지나친 주변의 풍경들이 나중에 돌아보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가 되어서야 궁금해지고 그리워진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인생은 한 곳만을 바라보고 전력질주를 하다가 언젠가는 지치게 되는 육상경기가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걸어가며 지도에 나온 길과는 다른 길로 빠지기도 하고, 주변 풍경이 예쁘면 잠깐 쉬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예고 없이 바꾸기도 하는 산책에 더 가깝다. 그리고 산책의 묘미는 주변의 풍경을 살피는 데서 온다. 그러니 힘들면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며 발밑이 아니라 도로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