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30, 2020
지금 머물고 있는 에어비앤비는 유틸리티 포함 한 달에 250유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비가 많이 온 탓에 급히 결정했는데 추위의 느낌으로 치자면 자동차와 뭐 별다를 것이 없다. 무엇보다 인터넷 신호가 약해(없다고 보면 된다) 집 안에서는 그 어떤 메시지도 보내지지 않고, 집 밖을 나가 큰 도로변으로 걸어야지만 신호가 잡힌다. 인터넷과 맞바꾼 넉넉한 들판, 거기에 닭, 염소,양 등이 있어 그나마 다행일 뿐. 주말 1시 이후로는 외출금지령이 떨어진 이곳이지만,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게 어르신분들 참 쿨하다.(아니신 분들도 많다)
우리 집 어린이와 공놀이를 하고 있으니 건너편 들에서 양들 풀 먹이고 계시는 할머니가 반갑게 인사한다. 언제나 그렇듯 뭐라고 뭐라고 하시는데 뭐라고 하시는지는 오로지 나의 느낌에 맡길 뿐. 그 상황에 걸맞은 단어하나를 골라(고를 필요도 없는 범위) 모션까지 더해 말하니 유쾌하게 맞장구 치신다. 아이의 공 따라 이리저리달리다 보니 할머니가 콩알 크기로 보일 만큼의 거리가 되었고,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안녕하고, 일부러 렌트한 집 마다하고, 주차된 자동차 안에서 노래 들으며 놀고 있는데 누군가 차 뒤편에서 기웃거린다.
돌아보니 아까 그 양치던 할머니. 문을 열고 밝게 인사했더니 아 너네 여기 있었니 하는 표정으로 큰 쇼핑백 하나를 건네신다. 여전히 다시 뭐라고 뭐라고 하신다. 무슨 말인지 여전히 하나도 모르지만 다 이해할 수 있다 고맙다고 연신 말하는 사이에 집 주인(대신 하우스 시팅 하는 아일랜드) 아저씨가 오더니 할머니를 노려보며 가라고 한다. 나는 아저씨한테 이웃 할머니인데 모르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내 집이 아니기에 더 그랬고. 할머니는 아저씨에게 미안하다며 씁쓸한 뒷모습으로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나는 그저 고갯짓과 표정으로 배웅할 수밖에...아일랜드 아저씨는 가끔 수상한 사람들이 집을 기웃거리기에 확실히 해야 한다 했고 정말 그렇게 확실히 했다.
오늘 아침에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 이렇게 마음을 쓰셨을까 하며 쇼핑백을 열어본다. 6-7세 정도가 입었을만한 보풀 달린 핑크색류의 옷들로 가득하다. 당연히 우리집 어린이는 관심이 일도 없고, 실제로 입힐 만한 옷도 없었지만 뭐랄까 마음 깊은 아래쪽에서 무언가 뜨뜻한게 올라왔다. 산책을 마치고 온 그는 들판에 할머니가 앉아있다 했고 되게 슬퍼 보였다고 덧붙였다.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포르투갈 단어 중 하필이면 왜
frio를 골라가지고, 하필이면 그때 우리집 어린이는 왜 잠바를 입지 않고 있어가지고, 왜 하필이면 아일랜드 아저씨는 그때 와가지고, 할머니를 슬프게 만들었을까... 춥다고 한 말에 손녀 옷 가방 한가득 들고 올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세상이 나쁘다 나쁘다 해도 아직은 이렇게 살만한 정이 남아있다는걸. 다시 한 번 양치는 할머니를 마주칠 수 있을까. -포르투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