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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사 Apr 08. 2022

적당한 노이즈가 필요했다.

주간 오공사 #14

지금까지 잘 버텨주던 에어팟이 맛이 가버린 바람에 에어팟 프로를 샀다. 에어팟과 에어팟 프로의 가장 큰 기능 차이는 노이즈 캔슬링이라고 친구가 해보라고 해보라고 추천하여 외부 소리가 차단된 채 거리를 걸어보았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 지하철이 덜컹이는 소음, 매장에서 세어 나오는 노랫소리 까지, 정말 바깥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평상시 듣기 싫던 소리들이 내 귀로 들어오지 않으니 잠깐, 아주 잠깐은 문명의 힘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2곡을 듣고, 나는 바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껐다. 왠지, 뭔가 이건 날 위한 기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과 내가 모두 차단된 채 녹음된 사운드만 듣는 게 어색했다. 이 어색함조차 생경해서 왜 이런지 생각해보았다. 어떤 이유로, 노래가 노래처럼 안 들리는지, 그럼 나에게 노래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내 인생에 노래가 없이 지나간 날은 아마 없을 것이며,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거나 지루한 출근길에 사기를 올려주는 기능을 노래는 지금껏 착실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노래의 가장 큰 기능은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이다. 수능날 들었던 곡, 1월 1일 00시에 들었던 무한 긍정송, 고등학교 때 서울로 레슨을 다니면서 버스 안에서 듣고 울던 곡, 친구들과 함께 떼창을 하던 아이돌 곡, 엄마가 운전만 하면 부르는 트로트 등등.  그 순간의 나를 떠올리게 하고, 그 시절의 나를 잠시 그리워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노래가 가진 가장 큰 기능이었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냄새를 기억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곳에서 들은 플레이리스트를 늘 기억했다. 일본 밤거리를 거닐며 들었던 아마자라시의 노래, 공원에서 들었던 lauv의 곡. 가족끼리 여행하는 길에 막냇동생이 차 안에서 불러주던 K-pop 메들리까지. 그렇게 그 곡들은 그날의 날씨, 온도, 함께였던 사람 등 추억을 다시 불러왔다. 


아마 나에게 노이즈 캔슬링은 위 기능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의 상황을 차단하는 것이 나에게는 노래의 가장 큰 기능을 잃게 하는 것이었다. 2호선 내선순환이 들어오면서 듣는 출근 송과, 그냥 출근 송은 내게 다른 것이었다. 바람소리,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비가 쏟아지는 소리 모든 소리들이 나에게는 음악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내게 노이즈 캔슬링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떠올렸다. 침묵으로 이루어진 연주곡이다. 4분 33초 동안 연주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으며 관객들의 바스락 거림, 작은 심장소리, 머리칼을 넘기는 소리 등 우리의 일상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곡. 누군가는 이 곡을 음악이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는 충분히 음악이라고 본다. 우리의 일상은 어쩌면 불규칙한 리듬과, 불협의 멜로디가 만들어낸 조화로움일 수 이기에, 나에겐 역시 적당한 노이즈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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