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 걷기 예찬 ] 이란 책으로 유명한
인류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 걷기는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는 내면의 여정이다.”
,
나는 그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들과 존재들 속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면을 굳게 하려고 떠난 하와이에서 참 많이 걸었다.
하와이는 걷기에 최적인 날씨이기도 하지만, 바다와 산이 주는 영원함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장엄했다.
이국땅에서 걷는 느낌은 늘 새롭다.
자연환경이 기후에 따라 다른 것처럼 동. 식물들도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나라의 사물들을 본다는 것은 일단 우리나라에서 같은 것을 봤더라도 또 다르게 보인다.
아이들을 아침 일찍 어학원에 데려다주고(물론 버스를 이동했다.)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버스정류장 근처 아주 큰 나무 아래서 커피를 마시며 동선을 체크하고 메모를 한다.
이때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는 그곳의 일부가 되어서 움직이고, 시선에서 자유로운 그 기분.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의 반이상을 얻은 것이다.
하와이에서 많이 걸었던 곳을 적어 보자면
알라와이 운하 길 (비 오는 날 빼고 조깅)
알라모아나 파크(매주 금요일은 꼭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산책 겸 힐튼호텔 불꽃놀이 볼 때)
카피올라니 파크(생각을 차분하게 해주는 코스)
와이키키 해변 길(해변의 사람들 얼굴을 보면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여유와 낭만이 느껴지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최고조를 이룬다. 들뜬 기분과 즐거움을 느낄 즈음 노을이 살포시 고개를 들면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노을로 향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위안을, 본인에게는 깨달음을 주는 듯하다.)
다이아몬드 헤드 올라가는 길
하와이 동쪽 카일루아, 라나카이 해변 걷기 좋은 길
라나카이 필박스 올라가는 길(하와이 가시면 여기는 꼭 가세요)
하와이 북쪽 할레이와 (마음 정리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
마노아 폭포
다운타운 거리 걷기
하와이 라이에 포인트 주변이 보이는 해안선 따라 걷기 ( 이때는 자동차가 조금 필요하다)
많이 걷고 ,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인생에서 나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길었고,
속에 있는 뭔가를 끄집어내듯 시원했고,
가장 크게 웃었다.
하와이 슈퍼문이 된 기분.
그리고 하와이의 느낌이 좋았던 곳은 뜻밖에 별거 아닌 거 같음에도 별게 아닌 알라와이 (Ala Wai Canal) 운하 길이다.
다이아몬드 헤드가 (사진에서 보니는 끝이 다이아몬드 헤드 분화구이다.) 보이는 쪽으로 걸어도 좋고, 반대 방향 또한 좋았다.
운하 길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은 게들도 굉장히 많다. 팔뚝만 한 물고기도 따라오고, 자세히 보면 운하 물안에 생명들도 걸어야만 보인다.
차만 타고 다니면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놓치는 시선들이 많다.
하지만 걷기는 다르다.
걷는다는 것은 파노라마뷰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속 어두운 감정들은 어느새 날아가버리고, 시선이 멈춘 곳에서 느낀 영감들은 도전의 날개를 만들어 준다.
[걷는 사람] 하정우 배우의 책을 보면
하와이에 가기 전까지 나는 뭐에 그리 쫓겼는지 인생을 여유 있게 즐기는 법도, “쉼”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 중에도 나는 잘 쉬는 게 아니라 내가 다닌 곳의 흔적을 남기려 안달했던 것 같다.
그 별거 아닌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편안했다.
(중략)
하와이에 가면 나는 자연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온종일 걸었다. 걷고 먹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미친 일정으로 다녀온 하와이는 내게 미치도록 좋았던 휴식의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힘들면 힘들수록 하와이에 가고 싶다.
하와이를 하정우 배우처럼 또는 나처럼 다녀왔다면
이 책의 이 부분은 명문장이 되는 것이다.
다녀와서 일 년 동안은 새로운 마음으로 일했고, 아이들 또한 하와이의 일상이 그리워 다음 해에 일주일 여정으로 하와이에 또 다녀왔다.
2017년 한 달은 걷고 또 걷고 핏플랍 신발 밑창이 닳아서 버리고 왔을 정도로 걸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하와이였다면,
2018년 와이키키 쉐라톤 호텔에서 매일 조식 먹고, 차를 타고 다니고 여유롭게 지낸 하와이는 매우 달랐다.
나와 맞는 하와이는 전자였다.
여행은 저마다의 이유와 편안함의 차이를 필요로 하겠지만, 나에게는 걷고 또 걸었던 걷는 하와이가 그립다.
그리고 사진은 최대한 찍지 않았다.
찍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걷고 앉아서 메모하고, 바라보고, 털어버리고 그때만큼은 액정으로 뭘 하지 않아도 하와이의 자연풍경뿐 아니라 지구의 모든 좋은 것들은 이미 눈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으니까.
세상을 다 가진 허세 느낌 충만!
모르는 곳에서 구글맵 하나만으로 길을 찾아다니고, 찾아서 쉬는 동안 바라본 곳들은 카메라가 선명도와 실물들을 비슷하게 표현할지 몰라도 마음은 담아낼 수 없기에 고유한 그곳의 느낌은 그저 담아두어야 한다.
어디에. 마음에.
예쁜 옷과 화려한 꾸밈없이 다녀도 좋았던 곳.
간편한 차림과 편안한 신발.
그것만으로도 일단 심신이 편안할지도 모른다.
하와이에선 걷기를 하다 보면 또 인내를 배우게 된다.
물론 와이키키 쪽 이야기가 아니다.
노스쇼어나 북쪽 한적한 마을에 가면 자연에 속해있는 나를 발견하면 나는 곧 인내에 이르게 된다.
쥐라기 공원의 촬영지 같은 산도 많아서 산속 트래킹을 하다 보니 놀라운 장면도 마주했다.
야생 멧돼지를 잡아서 업고 가는 사람.
얼마나 뿌듯해하면서 가는지. 그래도 생명이라 그런지 피 흘리며 업혀가는 멧돼지가 가엽기도 했지만, 약육강식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라고 느끼게 해 줬던 정글 같은 곳.
아 그러고 보니 하와이의 좋은 점이 또 있다.
뱀이 없다.
화산지형 섬이고 뱀의 천적 몽구스도 많다고 한다.
이래서 산을 걷기도 안성맞춤.
보기에는 정글 같은 숲이고, 울창하지만 우리가 무서워하는 뱀은 없다니 안심해도 된다.
단 모기약은 필수!
하와이는 해변을 따라 걸으면 수평선이 주는 물의 음악을 함께 하고,
산을 걸으면 다양한 식물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바람이 나뭇잎의 피리를 둘려주며, 비 오는 날 산맥을 보면 없던 물줄기가 생겨나 폭포가 생긴다.
이거 굉장한 볼거리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의 산책도 권하고 싶다.(물론 비바람 몰아칠 때 말고)
호오말루히아 보태니컬 가든에 갔을 때.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킬 때까지 비가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차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그러더니 하나 둘 떠나고 결국 남은 건 내차! 하나.
나도 고민을 하다 15분 정도 아이들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니 비가 그쳤다.
그리고 산을 보니 이런 장관이......
안개가 내려왔다 올라갈 때마다 마술이 펼쳐졌다.
산맥 사이사이로 폭포가 하나 씩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 잘못 봤나! 싶었는데 분명 두 개의 폭포는 세 개가 되고 그리고 여기저기 폭포가 생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도 하와이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한 풍경중 하나라고 현지인이 알려주셨다.
그걸 봤냐고... 대단하다고 하면서 ^^.
바로 인내다.
사람들은 비가 와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가든의 주차장을 빠져나갔을 때 처음에 고민으로 시작한 시간이 인내로 바뀌면서 누구나 다 볼 수 없는 광경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또한 인스타그램 하와이를 보면 하와이 보태니컬 가든 입구 사진이 많다.
이 또한 장관 + 장관이다.
손으로 툭 치면 놀라는 미모사가 지천에 널렸고, 동물들은 자유롭게 오간다.
자연학습장, 동물원 그리고 국립공원 느낌 모두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걸으면서 자연에 속하고 싶다면 호오말루히아를 추천한다.
여긴 관광하러 오신 분들이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많이 알리고 싶다. 지금은 조금 유명해진 듯 하지만......
걷는다는 것.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나에게는 그랬다.
아, 휴식에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아프고 힘들어도 나를 일으켜서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거였구나.
하정우 “걷는 사람” 중에서
이 문장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걷기만큼 인상적이었다.
휴식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니!
생각의 전환은 이런 거구나.
해야지~ 할 거야~ 보다는 하구나. 이 뜻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걸으면서 땅이 주는 느낌을 아는 사람은
오늘도 내일도 어느 곳을 가서도 걸어야 한다.
기억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