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굿닥터’
밤의 고요함을 좋아한다.
수많은 이유 중에서 하나는 기도하는 듯한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다.
요즘은 밤의 고요함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무쓸모의 바쁜 시간이라 고요함을 포기하고 점심시간의 개인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빠른 점심을 먹고
요즘 푹 빠진 미드 ‘굿닥터’를 시청하는데, 오늘은 시즌2의 2부’ 절충안’이라는 주제의 드라마를 보았다.
1부 마지막에 뇌종양을 발견하면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 글래스먼 원장님과 숀의 진한 우정은 네게는 너무도 큰 감동을 주었다.
친구가 될 수 없다/있다 로
밀당을 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 신뢰, 걱정, 또 다른 가족 같은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다.
어렸을 때 죽어가는 토끼를 살려달라고 안고 온 숀과 외과의사 글래스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긴 동물병원이 아니고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이라고 말해주면서 동물병원에 갔어도 토끼의 운명은 이미 죽음만 남겨뒀음을 알려주는 둘의 대사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음을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알 수 있다.
아무튼 숀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글래스먼 원장님은 숀에게 의학책을 보여줌으로 그를 의사의 길로 자연스럽게 안내했으며, 의사가 된 숀을 본인이 원장으로 있는 대형병원 수련의로 데려오게 되는 과정은 보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면서
서로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보여주는 거 같아서 안타깝기도 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원장님
사랑하는 동생과 토끼를 잃은 숀
— 잃어본 사람들만이 아는 가족의 부재는 평생 가슴에 빠지지 않는 가시를 달고 사는 것이란 걸 알기에 나에게 그 둘은 위로해주고 싶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
또한 보통 자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굴 껴안는 게 익숙하지 않다는데 숀이 글래스먼 원장님을 위해, 치료법을 공부하는 행동들과 먼저 뛰어가서 원장님을 안아주는 장면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드라마 굿닥터의 ‘GOOD’ 단어가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어제 시청한 내용 중 인상 깊은 대사를 남겨본다.
병원에서 청소부로 근무하는 분이 췌장암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질병의 발견을 숀이 했다는 것.
지나칠 수 있는 직장 사람들의 특이사항을 기억했던 숀이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발견한 덕분이기도 하다.
가족들에게 알리고 수술을 앞두고 있는 청소부는 병원의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고, 숀은 그를 찾아서 바라보다 질문을 한다.
기도하는 게 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숀의 질문 )
청소부는 이렇게 말한다.
그 결정을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달라는 기도하는 거죠. (청소부 대답)
아…… 나도 모르게 그렁그렁 맺힌 눈물 송이들 ㅠㅠ
새벽기도를 미친 듯이 다녔던 어느 순간들이 생각났다. 정말 너무 힘들 때 나오는 기도란 걸 알기에 감정이입이 되었고, 숀은 청소부와의 대화 중에서도 그를 이해하기도 하며, 아픈 원장님을 떠올린다.
감동의 하나였다.
그리고 글래스먼 원장님과 숀의 대화.
원장님은 뇌종양수술 후 후유증을 잘 알고 있기에 의사의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오는 부분이다. 또한 정년퇴직을 앞둔 가장들의 큰 고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나 같은 경우 천정 아빠의 치매가 아빠의 뇌를 뒤덮는 순간들이 생각나서 그 장면을 보면서 점심시간 내내 훌쩍이면서 본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난 엄청 똑똑하고,
실력도 끝내주는 외과의사야.
그걸 못 하게 되다면 뭐가 될지 모르겠어.
(글래스먼 원장)
숀은 이렇게 말한다.
내 친구일 겁니다. (숀)
이 드라마에서 숀이 내 친구일 겁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친구가 된다는 것, 숀에게 친구의 어떤 의미인지를.
그리고 숀은 처음으로 리에 대한 감정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남. 여의 감정에 아파하기 전 숀은 그 감정을 잘 모르기에 피하려고 한다.
그때 이 드라마에서 따뜻한 마음의 의사이면서 숀의 동료 수련의 클레어는 숀에게 이렇게 말한다.
숀~
관계란 게 늘 쉽지만은 않아.
복잡해지고 엉망이 되기도 해.
숀은 말한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계를 안 맺고 싶습니다.
다시 클레어
상처받기 싫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차단하면 안 돼.
순간 멍 했다.
어쩌면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스승님이 앉혀놓고 얘기하는 느낌.
이 드라마에 내가 빠져들고 있는 건 나는 어쩌면 티 안나는 자폐를 앓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를 알지만 거부하는 뭔가가 내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사람이 싫었다.
너무도 따뜻한 대사들이 왜 처음 듣는 것 마냥
이렇게 교화되는지 모르겠다.
나의 시작과 도전은 언제나 즐거웠으나,
그게 문제였다.
늘 새로워야 하는 이유가 문제였다.
꾸준함이 주는 단단함을 얻지 못함은 어린 시절과 자라온 환경에서 늘 부재였던 어떤 것이 있음을 적지는 못하지만, 그렇기에 숀과 나는 어쩌면 같은지 모르겠다.
1부에서 대형병원 면접시험에서 이사장은 그에게 묻는다.
숀~ 왜 외과의사가 되려고 합니까?
숀은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고 솔직하게 말한다.
아이스크림 향이 나는 비가 온날
제 토끼가 제 눈앞에서 천국으로 갔습니다.
낡은 건물의 구리 파이프에서
음식 타는 냄새가 났던 그날에는
동생을 제 눈앞에서 잃었습니다.
그들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슬펐습니다.
어른이 돼야 했었고, 아이를 낳아서 사랑을 주는 부모가 돼야 했습니다.
그리고 전 다른 이들에게 그럴 가능성을 주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는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보호받아서 잘 자란 사람과, 보호를 잘 받지 못한 시절을 지나 누군가에게 가능성이 되고 싶은 사람은 그 하나의 목표를 보고 가면서 잊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관계 속 상처”를 떠나고 싶다는 방어력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꽤 긴 1부를 지나, 2부에서 원장님은 수술을 받고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온다.
처음으로 숀이 음악에 심취해 흥얼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숀과 내가 내뱉지 못하는 그 한 단어가 장면으로 대신한다.
어떤 사건의 “발생”으로 드라마는 전개됐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생사가 나뉘며,
감동을 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드라마에서
“인생”을 돌아봄으로써 침잠하는 어느 날의 나를 본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 경계선 너머로 사라져 버릴 소중한 경험,
그것을 글로 남기는 일은 중요하다.
자신을 위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독자라는 불특정 다수와도 내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 중에서 -
생각을 글로 남기는 일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가능성”을 주고 싶다는 숀의 대사처럼
마음에 이는 바람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름보다 뜨겁고 강렬한 굿닥터는 점심시간에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