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전주책쾌 독립출판 북페어에 다녀왔다 with 잉팔사
솔직히 7월의 전주는 너무 덥고 습했다. 나는 지난 페어에서 완판을 경험한 후 기대감에 책을 잔뜩 가져갔는데 도로 무겁게 돌아왔다. 판매 부수로는 실패였다. 그럼에도 전주책쾌는 '내년에 또 가고 싶은 북페어'였다. 함께 갔던 모든 이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에 대한 이야기를 이 글로 풀어볼까 한다.
행사 장소인 연화정 도서관은 말 그대로 연꽃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초록빛 연잎이 바닥에 가득 펼치고 막 피기 시작한 연꽃은 한겹씩 고요히 꽃봉오리를 열어내고 있었다. 무거운 짐과 찌는 더위에 발걸음을 재촉하다가도 잠시 멈춰 연꽃을 바라보고 서게 됐다.
부스에서 한참 손님들을 맞이하다가도 고개를 들면 이런 풍경이 있었다. 흐린 눈을 하고 흔들리는 연잎을 보고 있자면 부진한 판매에 울적해지는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다. 손님이 있으면 손님을, 없으면 나무와 연잎들을 바라보았다.
전주책쾌는 조선시대에 책을 이고 팔도를 돌아다니던 서적상 '책쾌'의 존재를 조명하고 확장한다는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북페어를 시작하며 책쾌 분장을 한 배우님과 함께 전주, 책쾌, 그리고 오늘의 독립출판 축제를 두루 엮는 선언문을 함께 읽었다.
북페어가 진행되는 동안 연화정도서관 앞 마당에서는 한복을 입은 진행자가 상시 마당놀이를 진행했다. 제기차기, 투호 놀이 같은 것들.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다 들른 지역 주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가벼운 이벤트를 많이 준비했다. 마을 축제 같은 느낌이 났다.
이렇게 잘 준비해주신 부스를 본 일이 없었다. 미리 테이블보를 깔아 주시고, 더운 날씨 때문인지 고운 부채를, 책쾌의 컨셉에 맞는 앙증맞은 갓을 준비해 주셨다. 갓 쓴 창작자들이 부스에 잔뜩 앉아 있으니 우리는 모두 조선의 책쾌였다. 다시 봐도 정말 센스있고 귀여운 선물이다. 준비해주신 모든 물품을 유용하게 썼다.
기획단의 치밀한 배려는 행사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시작됐다. 창작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을 만들고, 그때그때 필요하거나 궁금한 사항들에 대처해 주었다. 무엇보다 행사장에서 가장 가까운 순서대로 주차장을 여섯 군데나 안내해 주고, 전기 사용이 어렵지만 본부석에서 기기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고 다양한 타입의 충전기를 구비해 주었다. 커피 쿠폰과 간식과 김밥을 주어 식사로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창작자들의 배를 곯지 않게 해주었다.
전주책쾌는 올해 시작한 북페어라 어떠한 후기도 없고 사정을 아무것도 모른 채 참석했는데, 처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려깊은 기획단을 만나 벅차게 감사했다. 에어컨이 있었음에도 실내가 더워서 창작자들도 고생을 많이 했는데, 행사가 끝나곤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획단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오픈채팅방이 행사 며칠 뒤까지 감격과 감사로 도배되어 있었으니 말 다 했다.
전주책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스는 단연 '그런 의미에서'. 책쾌 맞춤 인테리어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몇 차례 북페어를 나가다 보니 잉팔사 부스도 점점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하지만 세팅은 늘 두시간이 걸린다...), 참여하는 북페어의 컨셉에 맞추어 새단장을 하는 정성이 북페어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전주에서 열린 북페어라 아는 얼굴을 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반가운 발걸음들이 있었다. 이제는 친구 같은 미씽아카이브 송한별 작가님과의 만담, 자베르님의 책을 읽고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린 독자님의 방문, 주머니시 대표님의 방문과 책 구입(이번에는 셀러로 참여하지 않으시는데도 그냥 전주까지 오셨단다. 정말 찐 찐 찐이신 주머니시 대표님), 행사장까지 음료며 빵이며 비대면 배달해준 아성까지. 덕분에 쭈그러들지 않고 어깨 폈다.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다정은 서울 돌아가는 길에 너 집이 머니 제 집에 와서 자라고 불러준 유정의 집에서였다. 잉팔사 서울 멤버들을 집에 데려다 주고 모든 미션을 끝낸 새벽 두 시, 발끝으로 문을 열자마자 긴장한 마음이 무장해제되어 버렸다. 아주 늦게까지 편안한 잠을 잤다.
현생에 치여 살던 잉팔사는 6월 중순이 되어서야 멤버를 확정할 수 있었다. 나는 출발 당일에야 (자베르 작가님의 전주북페어 첫 출시 단편인) '질문금지' 완성본을 인쇄했고, 심지어 공용 물품 짐이 든 캐리어를 두고 왔다는 걸 첫날 부스 세팅하면서 발견했다. 부랴부랴 근처의 다이소에서 필요한 것들을 고르는데, 괜찮다고 똑같은 부스 재미없다고 오히려 좋아하는 잉팔사 멤버들이라 수많은 어영부영함을 그냥 웃어제꼈다.
페어 전일인 첫날 저녁에는 종이였던 '질문금지'를 접고 잘라서 책으로 만들고, 둘째날에는 다같이 모여 앉아 비즈 반지를 꿰었다. 웬 비즈 반지냐고 묻는다면,
이번 잉팔사에는 비즈로 공예품을 만드는 드림머메이드 작가님이 합류했기 때문이다(야호!). 그렇게 잉팔사는 책과 지류 굿즈, 비즈 굿즈가 함께하는 종합 선물세트 부스가 되었다. 북페어에서 산 책과 짝꿍이 될 만한 책갈피들이 인기가 좋았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것이 무슨 부스인지 정체성의 혼란이 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좋았던 건 같이 하는 사람들이 유쾌하고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째선지 자기 것보다 서로의 물건을 더 마음다해 팔아주는 잉팔사. 부끄러운 것 없는 사람처럼 호객하다가도 손님들 눈치를 보다 어느순간 푸슈슉 쪼그라들기도 하는 생명력 있는 그대들과 함께라서 세 번째 북페어도 참 즐거웠답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