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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밤 Jul 21. 2023

혐오로 둘러쌓인 작은 안전일지라도 포기할 수 없기에

뉴스앤조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다큐멘터리 후기

기독교 언론단체 뉴스앤조이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시사회를 보고 왔다.텀블벅을 통해 후원했던 프로젝트였다.

https://tumblbug.com/leviticus1918


이 다큐멘터리는 퀴어문화축제를 꾸준히 방해해 온 보수 개신교 집단의 역사를 짚는다. 2014년 경부터 시작된 방해는 축제를 반대하는 민원으로, 공간 대여 승인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행진 길을 막는 것으로, 맞불을 놓듯 지척에서 반대집회를 여는 것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에서 주목하는 것은 반대와 혐오에도 불구하고 계속 축제를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다. 정체성이 부정당하고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마음이 들 때, 모두에게 커밍아웃을 하는데 교회의 장로이고 목사인 자기 부모에게만은 할 수 없을 때, 일평생을 다녀온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외치며 나를 몰아낼 때, 유일하게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은 혐오의 눈빛 가운데 똘똘 뭉친 나와 같은 사람들의 모임, 퀴어문화축제다. 


어떻게 안전할 수 있겠는가. 나를 알지도 못하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칼날 같은 시선으로 내가 잘못됐다는 듯이 비난하며 소리치는데. 축제가 끝나고 다시 무지개 뱃지를 달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나 무섭다는데. 나를 바라보던 그 사람이 내 옆집 사람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 밖을 나올 수가 없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안전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서 사람들은 모인다. 방 안에 홀로 숨어있는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위축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나에게 숨구멍을 열어주기 위해.


그 말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했고 시사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이 울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너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개신교인들의 플랜카드에 분노가 일었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해서 더 울었다. 



아래부터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다.


나도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죄는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이 땅에서 살아가기를 노력한다. 신에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가장 소외당하던 세금 징수관과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하셨다. 사람들이 둘러싸 그들을 돌로 쳐죽이려 할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말씀하셨다. 모두가 돌아갔다.


개신교의 가르침상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시절부터 그랬다. 거짓말하지 않고, 이웃의 것을 탐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고, 도둑질하지 않는 사람 어디에 있는가. 죄는 끈덕지게 달라붙어 좀체 떨어져나가지 않는다. 개신교뿐 아니라 많은 종교에서 마음을 정결케 하기 위해 끊임없는 수련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므로, 설령 무엇이 죄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비난하고 정죄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죄를 벌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죄를 사해준다는 면제부를 팔던 중세 교회가 잘못되었다며 일어난 종교개혁이 개신교의 태동이지 않나. 그런데도 '내가 동성애는 안할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건 죄라며 목에 핏대를 세워보는 거다. 교회가 세습될 때, 목회자들의 성범죄가 이어질 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람이 죽을 때, 친구의 불륜과 불의를 보았을 때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죄가 아닌가? 확실한 건, 퀴어를 혐오하는 목소리들 덕분에 퀴어들은 교회와 하나님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버린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이것은 죄인가 아닌가. 


예수님이 남기신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가지였다. 우리에게 남겨진 몫은 사랑이다. 사랑은 온유한 것이다. 자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다정한 관심이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된다.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라는 말 뒤에 펼쳐지는 폭력적인 장면들을 생각해 본다. 나를 사랑하니까 가족들을 무례히 대하고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이들을 깎아내렸던 사건들을 후회한다. 사랑은 내가 가진 손쉬운 편견과 판단을 저지한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고, 답답하고, 온전해지는듯 하다가도 자꾸 깨어지는 것 같다. 사랑에 서툰 우리는 서로를 상처내며 사랑을 배워간다. 그럴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그렇다.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나의 마음은 누군가 말하는 사랑도 뭣도 아닌 무관심이었다. 일년 내내 벌어지는 신촌에서의 갖가지 행사들. 보드 대회, 물총 축제, 온갖 팝업스토어와 다르지 않은, 조금 더 특이한 모습의 행사. 더 솔직해지자면 흘겨보는 마음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보지 않을 거다. 누군가의 존재가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이라면 그 자리는 귀한 자리다. 사람들도 이걸 알고, 좀더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계속 숨어 있고 싶었는데,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다정한 한 걸음임을, 사랑의 어떤 시작임을 믿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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