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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밤 Dec 18. 2023

축의대를 부탁하는 마음

'우리 사이에' '당연'한 것은 없다.

몇 해 전 친척 언니의 결혼식에서 축의대를 맡았다. 보통은 또래의 남자 친척들에게 맡기는 역할인데 나와 아빠에게 제안이 온 것이 신기하고 설렜다. 한 번쯤 꼭 축의대에 앉아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이다. 아빠는 본인을 신뢰하는 어른으로 여겨준 것을 감격스러워했고, 축의금이 담긴 가방을 다리로 꼭 죄어 앉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가친척 사진을 찍을 때에도 축의금을 누가 훔쳐가면 안 된다며 도통 일어나지 않으려고 해서 돈가방을 같이 붙들고 식장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까딱 잘못해서 축의금을 도둑 맞거나 하객인 척 책상 위의 축의금을 채가려는 사람이 있을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봉투를 꼭 붙잡았다. 식이 시작하고 나서도 하객은 계속 도착했다. 식장 안쪽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이벤트가 있었던 모양이다 짐작했고, 늦게 도착한 하객들이 식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틈새로 살짝 보며 순서가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했다. 이때 깨달았다. 아, 이래서 축의대를 친척들에게 부탁하는구나!


축의대란 축의금을 받고 식권과 주차권을 내어 주는, 모든 하객이 꼭 만나야 하는 결혼식 관계자며 축의금을 절대 사수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다만 결혼식을 볼 수는 없다. 축의금을 맡길 신뢰가 있으면서 결혼식을 보지 못하는 것을 크게 서운해하지 않을 법한 사람이라면… 역시 혈연이다. 역시 친척이다. 현상은 역시 또래의 친척 형제가 축의대를 맡을 것이라 했고, 나는… 무릇 친척에게 맡기는 것이 무난하다 여기면서도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달 전 세향의 결혼식 때 친구 남편들이 축의대를 맡아 준 것이 감명 깊었던 탓이다. 


친구 남편이라니 놀라울 수도 있는데, 십여 년을 함께 산 친구들이다. 부모님들이 우리의 이름과 얼굴과 사연을 안다. 우리는 서로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언제나 우리가 축가를 불렀다. 세향의 결혼식 축가 역시 우리였다. 남편들까지 축의대에 앉아 있으니 정말로 한가족이 된 기분이었다. 우정의 공동체가 확장되고 있다고 느꼈다. 가족 행사에 모두가 역할을 도맡은 모습이 정겨웠고, 이때의 정겨움을 내 결혼식에도 재현하고 싶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잘 부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들에게 넌지시 남편에게 축의대를 부탁하는 것이 어떤지 물어보았을 땐 좋아할 거라고 했는데 직접 부탁하려니 조금 망설여졌다. 친구를 건너뛰고 남편에게 직접 연락하는 일은 최대한 만들지 않는 편이어서 연락하기 조심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모두가 함께 있던 청첩 모임에서 “축의대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하고 물어봐주어 자연스레 말할 수 있었다. “사실… 여러분께 부탁하려고 했어. 맡아줄 수 있을까?”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결혼식 당일에는 하객들과 인사하느라 축의대가 언제 도착했는지도 몰랐다. 후에 전해 듣기로는 생각보다 하객들이 일찍 오기 시작했고, 축의대를 맡은 친구 남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역할을 분담할 새도 없이 줄을 서기 시작한 하객들을 맞이해야 했다. 심지어 친구들 단체사진 찍을 때까지도 축의대에서 축의금을 받느라 사진을 함께 못 찍었다고 한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아쉬움을 남긴 것 같아 미안하고 속상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결혼식 몇 주가 지난 후였다. 당일에는 축가와 축의대 팀에게 감사하다는 연락을 단체 카톡방에 남기곤 결혼식이 끝났다는 해방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후에 친구가 살짝 언질을 준 덕분에 축의대 인원들에게 별도로 연락할 정신이 들었고, 그제야 정신없었던 결혼식 당일의 상황과 분주한 마음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십년지기라고 남편들과도 십년지기인 건 아닌데 기본적인 배려가 부족했다는 생각에 오래 반성했다. 나도 축의대에 있을 때 그렇게 긴장하고 바빴는데 그새 까먹고 너무 가볍게 어려운 자리를 부탁하곤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니. (솔직히 스스로가 별로라서 쓰고 싶지 않은 화였다…) 감사하게도 축의대를 맡아준 이들은 내게 따로 연락을 줘서 고맙다고, 우리 사이에 무슨 답례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 마음이 더 고마웠다. 집집마다 계절 과일을 한 박스씩 보내며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담았다. 


이 일들을 지나며, 부탁하는 사람 입장에선 ‘당연함’이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가까울수록 더 정중하게 요청하고 성실하게 감사를 표해야 하는 것 같다. 십년지기의 남편이 아니라 십년지기에게 하는 부탁이더라도, 가장 먼저 부탁할 만큼 믿는 사람이라면 응당 말이다. ‘우리 사이에 당연하지’는 부탁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탁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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