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은데 진짜 너무 힘들어요
‘결혼식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결혼식 후에 식사를 대접하는 거 아닌가? 왜 결혼식에 초대하면서 또 밥을 사야 하는 거지?’
늘 청첩 모임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준비하던 사람들과도 같은 대화를 나눴던 걸 보면 다들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우리는 청첩모임 하기 좋은 식당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했고, 나는 결혼식 전 두 달 동안 마흔아홉 번의 청첩모임을 해내고야 말았다. 밀도 있게 행복하고 압축적으로 피로한 시간이었다. 피로가 밀려올 때마다 다시 생각이 났다. 청첩모임이란 뭘까. 꼭 해야 하는 걸까.
청첩모임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싫을 리가 있나. 미리 알아본 맛집에서 기대감에 차서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이야기가 시작된다. 간단한 근황 후 이어지는 질문.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는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양가에 인사는 했는지, 신혼집은 구했는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거기는 지금 날씨가 어떤지, 모바일 청첩장이 나왔는지. 와아 예쁘잖아! 너무 예쁘다!
문제는 이 일련의 과정이 너무 많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어쩌자고 청첩모임을 생각하면서 달력을 제대로 안 봤을까? 청첩모임은 두 달이면 족하다는 얘기를 믿었으나 내 결혼식(10/9) 전 두 달은 그냥 두 달이 아니었다. 8월 말에는 신혼집으로의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9월 말에는 개천절까지 이어지는 긴 추석연휴가 있었다. 퍽 늦어진 상견례 일정도 한 주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고, 가을의 초입인 이 좋은 계절에는 다른 지인들도 결혼 소식을 많이 알려왔다. 신혼집에 들어놓을 가구나 가전을 받기 위해서는 휴가를 내고 집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날동안 청첩모임을 너무 자주 해야 했다. 9월 1일부터 26일까지 스물여섯 번의 청첩모임이 있었다(심지어 9월 3일에는 아침-점심-저녁 3회 청첩모임을 했다). 나는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예약이 필요한 식당을 찾는 타입이 아니지만 대접하는 자리이기에 최선을 다해 식당을 찾았다. 판교에서 퇴근하고 강남으로 신촌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한 끼가 채 소화되기 전에 다음 끼니를 먹었고 PT선생님께 변명하며 운동을 했다. 드레스를 입었을 때 예쁜 태를 만들기 위해 운동하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점점 튼튼해지고 있었다.
육체가 충실하게 벌크업하는 동안 내향 자아는 신음하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는 모임이 즐거우면서도 피로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앞에 두고 피곤한 기색이 비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에너지를 잔뜩 끌어올려봤지만 눈썰미 좋은 친구들에게 들키기도 했다. 그러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미안하고 속상해서 괜히 더 축 쳐졌다. 모임을 줄이고 더 좋은 컨디션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미룰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더 이상 말을 할 힘이 없었다. 혼자 있게 해 달라는 내향 자아를 묵살하고 외향 자아에게는 초과근무를 시켰다.
지갑 사정이라고 넉넉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 식비가 얼마인가까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눈을 꼭 감고 신용카드를 긁었다. 이건 현재와 미래의 내가 분명히 협력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청첩모임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결혼식 직전쯤엔 가지고 있는 모든 신용카드의 한도가 턱끝까지 찼고, 신혼여행 비행기를 타기 전 아침에 축의금을 입금하고 모든 카드 앱 순회를 돌며 선결제로 카드들을 해방시켜 줬던 기억이 선명하다.
문제는 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욕심부린 데 있었다.
순수하게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저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랑도 한번 봐야지' 하는 당위적 만남도 적지 않았다. 누구를 서운하지 않게 하고 싶어서 숨구멍도 없이 사람들을 만났고, 그렇게 했어도 보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한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청첩 모임은 끝이 없고 그저 결혼식이 다가오기 때문에 멈추는 것일 뿐이라던 동료의 말이 기억난다. 어쩌면 청첩 모임을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내가 인터스텔라처럼 과거로 돌아가 내가 청첩장을 조금 늦게 찍도록 붙잡아 말린 것일 수도 있다.
글을 쓰고 보니 '청첩모임의 슬픔과 슬픔' 같아졌는데, 힘듦이 커서 그렇지 행복도 컸다. 결혼한 선배들이 결혼하면 정말 좋다고 이야기해 줄 때 기대와 설렘이 커지고 두려운 마음은 작아졌다. 다시 소개팅했던 그 피잣집으로, 산책했던 경의선 숲길로 돌아가 현상과의 처음을 떠올리는 것도 몽글했다. 왜 결혼하려고 결심했냐고 물을 때 그 질문에 대답하며 다시금 현상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단단해졌다.
둘이 함께 뵈었던 어른들은 자기가 모르는 쪽을 따뜻하게 바라보시며 얘가 부족하니 그대가 잘 채워달라 당부하셨고 그 모습마저 사랑이 담뿍 담겨서 참 다정했다. 현상이 다른 이와 있을 때의 모습과 나에 대해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좋았고, 나에게 현상에 대해 물을 때 현상에게 직접 해본 적 없던 말들로 답하면서 그 말이 현상의 귓바퀴를 타고 어떻게 들려질까 내심 긴장하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결혼식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들을 초대하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청첩 모임이 결혼 준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당연하다. 문제가 뭐였든 돌아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최선을 다했고, 아쉬움이 남는다고 해도 다시 돌아가서 결혼준비를, 청첩모임을 하고 싶지는 않다.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