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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밤 Jun 08. 2024

제철 살구의 달콤함

지난 금요일에는 반가운 손님이 집에 올 예정이었다. 미리 알아둔 동네 맛집에서 식사하기로 약속되어 있었기에 별도로 준비할 건 없었지만, 그래도 집에 과일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퇴근길에 과일가게에 들러 매대를 살폈다. 망고가 눈에 들어왔지만 아직 덜 익은 것 같아 사장님께 여쭸다. "사장님, 망고 오늘 먹을 수 있어요?" 사장님은 망고를 훑으시곤 이래저래 쥐어 보시더니 난감한 듯 말씀하셨다. "그래도 며칠은 둬야 할 것 같은디." 이럴 땐 사장님 픽을 믿는다. 


"오늘 손님이 와서 과일을 좀 사두려는데, 오늘 먹을 만한 맛있는 과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살구가 맛있어요. 천도복숭아도 얘가 생긴건 이래도 맛이 좋아" 

"그럼 살구랑 복숭아 하나씩 주세요"

"예, 맛있어요, 이만 원입니다."


자전거 손잡이에 살구와 복숭아 봉다리를 하나씩 걸고 페달을 굴렀다. 유정과 주영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갑자기 바닥에 머리카락은 왜이리 잘 보이는지, 사온 과일을 주방에 대충 두고 청소기를 잡았다. 웨에에에엥 청소기를 돌리며 거실에 널부러진 물건들을 하나씩 주워섬기다 보니 어느새 손가락에는 컵 두어 개가, 주먹 속에는 그때그때 바닥 자국을 훔친 물티슈가, 팔과 겨드랑이 사이에는 널브러뜨려 두었던 옷가지들이 가득 끼었다. 그 물건들은 청소기의 진행 방향에 맞추어, 하원버스에서 내리는 유치원생들처럼 제 자리로 떨궈졌다. 싱크대로, 쓰레기통으로, 빨래 바구니로.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우삼겹 해물 짬뽕이었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조개와 홍합 껍데기를 스텐 통에 던져 넣으며 오랜만의 근황을 나누다 보니 배가 가득 찼다.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고서도 배는 전혀 꺼질 틈이 없었다. 그래도 자리에 앉았으니 입이 심심하면 하나씩 주워 먹자며 살구와 복숭아를 씻었다. 식탁 위에선 살구 향이 진하게 풍겼다. 말랑말랑 잘 익은 살구를 두 손으로 잡고 갈랐더니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며 씨앗이 정직하게 드러났다. 


"와, 이거 먹어봐. 진짜 맛있어. 살구 진짜 맛있어"

손님들은 배부르다며 손사래치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나를 보고 관심을 보였다. 방금 반을 갈라 먹은 그 살구, 맛있음이 검증된 살구의 나머지 반을 주영에게 넘기곤 다른 말랑살구를 찾아 반을 갈랐다. 세상에, 이건 더 맛있었다. 두 번째로 검증된 살구의 반쪽은 유정에게 쥐어졌다. 살구의 과육은 달콤하고 껍질은 상큼했다. 풋풋하고 달큰한 살구향이 났다. 배가 가득 찼지만 살구 배는 따로 있는 것처럼 지치지 않고 살구를 갈랐다. 갈라지지 않는 살구를 억지로 갈랐더니 덜 익은 신 맛이 났다. 저항 없이 갈라지는 살구만이 진정한 살구맛을 냈다.


살구의 제철이 언제인지 평생 알지 못했고, 살구를 먹어본 해가 손에 꼽는 것 같은데도 이 살구를 먹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지금이 살구의 계절이구나. 살구를 가르고 또 갈라 먹으니 만 원어치 살구 바구니가 금세 동이 났다. 그 중 반 이상은 내 입으로 들어간 게 분명했다. 


손님들이 떠나고 남은 복숭아를 먹는데, 복숭아는 아직 제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복숭아가 대여섯 알 남았지만 살구가 그리웠다. 그리곤 생각했다. 제철 살구를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을까, 살구로 호사를 누리자. 다시 만난 과일가게 아저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때 살구 추천해주셔서 샀는데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그리고 호기롭게 외쳤다. 살구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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