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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파리 Aug 20. 2021

찾아가는 여정부터가 건축이었던 그곳

프랑스 롱샹

이 길이 맞는 건가 싶은 강한 의심이 들었을 때 거짓말처럼 12번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가 '롱샹'이었다.




'롱샹성당'을 보러 가는 날 스위스 바젤에서부터 나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편하다는 바젤에서 출발이지만 두 번의 환승을 해야 했고 사이사이 기다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그렇게 두 번의 환승 끝에 한 량짜리 기차를 타고 '롱샹'이란 이름의 작은 기차역에 내렸다.

플랫폼도 없고 'RONCHAMP'이라는 표지판 하나 있는 정말 작은 기차역이었다.





나무 팻말에 적힌 화살표를 보고 거기에서부터는 구글 지도에 의존해 마을길을 걷기 시작했다.

왼쪽에 굴다리가 보일 때 즈음

길모퉁이 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반갑게 한마디 하신다.

"너 롱샹성당 보러 왔지? 이 길로 올라가면 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지름길을 알려주시는 이 친절함!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할머니들의 정서는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

(그런데 나 프랑스어 어떻게 알아들은 걸까?!)

알려주신 대로 굴다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굴다리를 지나고 나니 전설로만 듣던 으스스한 공동묘지가 왼쪽에 보이고

오른쪽에 산 길이 하나 보였다.




어젯밤 내린 비로 축축해진 산 길은 미끄러워 보였다. 공동묘지 옆을 지나니 더 오싹해진 기분으로 혼자 조심스레 산길을 올라갔다.

얼마쯤 올랐을까...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산길을 올라가며 이 길이 롱샹성당 가는 길이 맞긴 맞는 건가 싶은 강한 의심이 들었을 때 거짓말처럼 12번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성당이 나를 맞이해 주는 천상의 소리 같다고 해야 하나! 

뭔가 비현실적인 신비로움마저 느껴지는 그런 종소리였다.


어느 블로그에서 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12번의 종소리가 들리면 '롱샹성당' 에 도달한 것이라고.


정말 그랬다.

종소리가 들리고 나니 산 길의 끝이 보였고 주차장이 나왔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량들이 간혹 보였는데 뚜벅이인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저렇게 차로 올라온 사람들은 이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가 없었겠지^^!'


새로 지은 안내센터는 상상했던 진입 풍경을 망쳐 놓았지만 살짝살짝 보이는 롱샹성당의 모습은 벌써부터 

심장을 뛰게 했다. 

안내센터에서 매표를 마치고 성당 앞으로 다가갈 때 벌써부터 보이는 성당의 모습은 애써 외면했다.

첫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 자리를 잘 잡은 후에 천천히 고개를 들며 성당을 맞이했다.




롱샹성당

Notre-Dame du Haut


정말 '롱샹성당'이 그렇게 서 있었다.

건축을 처음 접했던 때 책으로만 보았던 그 사진처럼

엽서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던 그 한 장의 그림처럼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날씨가 안 좋아서 희뿌옇게 건물을 감싸고 있던 안개는 그 광경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성당하나 보는데 뭐 이리 유난이냐...싶겠지만

지금처럼 자유여행이 있지도 않았던 시절. 

간혹 용기 있는 친구들이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나와는 거리가 먼 무용담을 전설처럼 들려주던 그 시절.

그 건축물을 25년쯤이 지나서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감동은 다른 건물과 비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건물이 누구의 설계이든 어떤 설계이든 그건 중요치 않다.

내 눈앞에 서 있는 것이 그 건물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유명한 컷이지만 내가 찍은 사진으로 롱샹을 간직할 수 있다는 자체가 기쁨이었다.

인생의 로망 中 하나가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11월의 비가 올듯한 가을 날씨는 매우 쌀쌀했다.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고 너무 추웠던 나는 그동안 사진으로 마르고 닳도록 보았던 외부를 직접 확인하고 서둘러 내부로 들어갔다.


글쎄... 이곳에서 딱히 무슨 분석이 필요할까!

원래도 분석 따위 잘하지 못하지만 누구든 이 안에서는 가만히 느끼기만 해도 될 것 같았다.

쓸쓸한 날씨에 방문객이 거의 없던 적막한 성당은 조금 서늘한 추위와 함께 공간에 몰입하기 적절했다.




건축에 대해 배우지 않았어도 느껴지는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빛.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두꺼워지는 벽체의 깊이감.

지붕과 맞닿은 벽체의 들뜸이 만들어낸 가느다란 선.

곳곳에 은은하게 퍼지고 있는 빛 우물들.

그리고

육중하면서도 유려한 곡면이 만들어 내고 있는 외관의 형태감은 천장으로 막혀 있는 공간감으로 내부에서 더욱 잘 느껴졌다.





독특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감이며 문양도 정말 인상적이었지만

롱샹성당에 이런 색감이 있었다니!!!

신비로운 색상이 퍼지고 있던 붉은색의 빛 우물.

이 색감이야말로 그날의 특별한 색이 아니었나 싶다.


(c)2017.mongpary all rights resreved.


성당 하나만으로도 이미 스스로 충만했기에 이곳에 있던 다른 건물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쌀쌀한 날씨를 뚫고 돌아갈 때는 차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걸어서 기차역으로 갔다.


누군가 나에게 롱샹성당에서 제일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혹은 롱샹성당을 제대로 보는 법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이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롱샹'이라는 이름의 작은 기차역에 내려 표지판을 따라 걷다가

모퉁이 집의 할머니가 알려 주시는 지름길로 굴다리를 지나서

왼쪽에 공동묘지를 끼고 으스스한 산 길을 올라가다가 보면

천상에서 들리는 듯한 종소리를 들으면서 성당 주차장에 도착하게 되며

안내센터에서 매표를 하고 진입로에 들어서면 살짝씩 보이는 성당의 모습은 잠시 외면하고

자리를 제대로 잡고 서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한눈에 성당을 보라고.



PS. 환상을 깨고 싶지 않지만 돌아와서 알게 된 팩트체크를 하나 하자면 산 길을 올라갈 때 들렸던 종소리는 롱샹성당의 종소리가 아니라 아래 마을 교회의 종소리이고 왜 12번이 울렸냐 하면 바젤에서 아침 기차를 타고 기차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전 11시 반경이라 나처럼 늦은 걸음으로 산 길을 올라가다보면 12시쯤에 거으 산 길을 다 올라가기 때문에 정오를 알리는 12번의 종소리가 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음......너무 딱딱 떨어져서 맞는 이야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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