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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파리 Feb 28. 2022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나는 몇 명 남지않은 대학교의 (시간)강사입니다.


7년 전...... 처음 시간강사로 학교에 나가던 당시에는 시간강사가 학교에 무척 많던 시절이었다.


(여기까지 써놓고 언제 다시 이어 쓸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강사와 겸임교수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너무 커져 버렸다. 시끌벅적한 이슈가 조금 지나면 글을 올려야겠다.)


(이제 좀 관심에서 멀어진 듯^^...... 다시 끄적끄적)


시간강사를 2년째쯤 하던 때였나...

갑자기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씩 하던 강사분들이 하나둘 학교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강사법이란 게 곧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매 학기마다 겸임교수들이 그 시간강사의 그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도 곧 3년을 못 채우고 시간강사에서 잘렸다.


그때는 이런 상황에 화가 정말 많이 났었다.

아니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만드는 법인데 학교는 이런 식으로 법을 피해 가다니!

게다가 속속 채워지고 있는 겸임교수들의 스펙을 보니 유학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와서

왠지 서럽기도 하고 위축이 되어서  

아니 전부 유학파로 수업을 채우면 너무 밸런스가 안 맞는 거 아니냐며

괜스레 주변에 화를 내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실은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위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곤 학교를 나와서 싹 잊어버렸다.

다시 강의할 일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후에 진짜로 강사법이 시행되던 학기에 두 학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급하게 강의할 사람이 필요한데 강사를 지원을 해보라는 이야기.

그동안 강사들을 너무 전부 없애버려서 그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ㅎㅎㅎㅎㅎ


그래서 다시 강사가 되었다.

강사법의 보호를 받는 강사 말이다.

(이제는 시간강사가 아니라 강사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강사 지원 후에 또 전화를 받았다.

저기요 여기 학교인데요 이력서에 논문이 빠져 있어서요.

아 네! 저는 논문이 원래 없는데요~ (너무 당당함)

앗! 아...... 알겠습니다. (매우 당황함)


텅 비어 있는 이력서!

논문도 없고 저서도 없고 오로지 건축사만 있는 이력서.

다시 강사가 된 첫 학기가 끝날 때쯤 나는 이 나이에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대학원을 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실무 일도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이거라도 몇 년 더 하려면 학위를 따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진짜로 주변의 교수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상담도 하고 학비도 알아보고 했다.

우연히 학교 홈피를 검색하다가 알고보니

우리 과에 강사는 나 포함해서 딱 두 명.

우리 과에 학사인 사람도 나 포함해서 딱 두 명.

두 가지 항목에 모두 걸쳐 있는 사람은 나 혼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예전처럼 나이 많으면 수업도 안 듣는데 학점 주던 시대도 아니고

학비 갖다 바치며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다 버린 2년이 될 것 같았다.

학비도 학비이지만 그 시간에 돈을 벌 수 없으니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나로서는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좀 뻔뻔해지는 걸로 나는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또 자르려면 자르라지 뭐...

난 학생들만 보고 가자!!!

코로나로 일이 더 없던 지난 2년 반 동안 정말 정말 열심히 강의했고 매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새롭게 맡았던 2학기의 이론 강의는 매주 밤을 새고 거의 일주일을 다 써가면서 자료를 만들었고

매번 하던 설계 강의도 온라인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학생들이 피해가 없도록 노력을 했다.

뭔가 보상을 받기 위해 그런 건 아니지만 학기마다 진심 어린 학생들의 반응을 보면 솔직히 말할 수 없이 뿌듯하고 감사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스스로 떳떳해져 갔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이제 괜히 혼자 가지고 있던 자격지심도 이겨낸 것 같고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른 것 같은데

스스로 강사자리를 내려놓아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바뀌었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모든 직업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스펙이 중요하지 않던 시기에 뭔가를 시작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완전 옛날 사람이다.

나 이렇게 열심히 해왔는데 왜 알아주지 않는거야~~~라고 외치며 시대 보정을 해달라고 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변했다.

한 가닥 끈을 간신히 붙잡고 떼를 쓰고 있다는 느낌에

이제는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사 임기가 끝나는 이번 학기후에 다시 지원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제는 내가 안 하려고 한다.


바뀐 시대에 맞게 더 젊고 더 실력있는 자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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