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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파리 Aug 24. 2021

힘 내...라는 말에 힘이 빠지다.

2012. 12. 1

우리 고등학교 때는 체력장이란 게 있었다.

학력고사 점수에 플러스 20점이 가산되던 체력장의 종목은 내 기억이 맞다면 윗몸일으키기, 100M 달리기, 멀리 뛰기, 던지기, 매달리기와 800M 오래 달리기 등이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지막 종목인 오래 달리기를 뛰지 않아도 20점 만점은 거뜬히 넘겼기 때문에 체력장 당일에 오래 달리기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연습하는 날에는 두어 번 정도 오래 달리기를 시켰던 것 같다.

혹시나 당일 컨디션이 안 좋으면 오래 달리기까지 뛰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는 다른 종목들은 그런대로 연습을 하면 할수록 기록도 늘고 어렵지 않게 점수가 나오곤 했었는데 이 놈의 오래 달리기 완주가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다. 연습으로 뛰던 그 두어 번이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겠지만 정말 다시는 뛰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치도록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체력장 연습으로 오래 달리기를 뛰던 날이었다.

나는 제일 마지막 조에서 오래 달리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미 다 뛰고 난 친구들이 많이 응원을 해주었었다.

내가 운동장을 돌다가 가까이 갈 때면 친구들이 "OO야 힘 내~~~" 라고 크게 소리쳐서 응원을 해주었다.

그런데 보통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말이다 관중석에서 응원을 해주면 그 소리가 그렇게 힘이 된다던데 나는 정말로 이상했다.


겨우 이를 악 물고 버티며 잘 뛰다가도 "OO야 힘 내~~~" 라는 말을 들으면 그만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제발 아무 말도 안 해 주었으면 싶었지만 다음 바퀴를 돌아 가까이 가면 또 그렇게 소리쳐 응원을 해 주었고 나는 겨우 끌어올린 페이스를 또 잃어야 했다.

정말이지 그때도 참 이상했었다.

"힘 내~~~"라는 말을 듣는데 힘이 더 빠지다니!

이런 어이없는 경우가 있나.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그러고 있다.


"힘 내..." 라는 말에 자꾸 힘이 빠져서

"힘 내" 라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아서 

웬만한 전화를 받지 않고 산 지 꽤 오래 시간이 되었다.

 

나 또한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쓰기도 하였고

그나마 쓸만한 위로의 말이라는 게

얼마나 힘이 드니.

네 잘못이 아니란다.

...정도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데

오늘 <꿈다방>을 듣다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로의 말을 알게 되었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자꾸만 곱씹어지는 말.


이 말이라면 나도 없던 힘이 날 것 같은 말.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2012. 12. 1

이동진의 <꿈꾸는 다락방>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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