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할 수 없으니까, 집안일이다
집안일도, 일도, 연애도 다 잘하고 싶은 그녀들에게
집안일은 왜 항상 쌓여있는 것일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일까. 아무리 빠르게, 열심히 해보아도 집안일은 늘 넘쳐난다. 게다가 우리는 시골집에 있으니 여기저기를 정돈하고 청소하려면 손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저번주부터 강도가 세진 일 스케줄과 병행하려니 며칠 째 집안일과 요리 스트레스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나를 괴롭힌다. 나는 그 화를 고스란히 파트너 P에게 돌린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요리할 때 P가 핸드폰이라도 보기 시작하면, 이때다 싶어 기다렸던 욕을 속으로 퍼붓는다. 구시렁, 구시렁.
오늘은 일요일이니 쉬어야지 했었어도 정신 차려 보니 밀린 빨리를 돌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옷을 주어 담으면서 월요일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또다시 투덜 중인 나를 발견한다. 그때 깨달았다 (사실 오랫동안 머리로는 이해하였지만, 오늘에서야 실천이 가능해졌다).
모든 집안일을 지금 당장 다 하지 않아도
나의 세계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항상 정리정돈된 깨끗한 집을 유지하지 않아도
나는 여기 있다고.
가장 중요한 몇 가지만 해도
충분히 잘했다고.
다 할 수는 없으니까
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항상 긴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주머니에 달고 사는 나지만, 오늘에서야 이 긴 리스트가 나의 가치를 재는 숫자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집안일도, 일도, 연애도, 모든 일을 다 잘 해내고 싶지만, 사실 그 욕망 밑에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니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 나를 사랑해 줘'라는 내면의 슬픈 외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면의 빈 곳은 아무리 긴 'to-do-list'라도 채워주지 못한다. 그 리스트가 일로 쌓여 있던, 인간관계 숙제로 뒤덮여있던, 나의 가치는 외적의 컨디션과 비래 하지 않고 내가 수용하는 만큼 결정된다는 것을 배워간다.
집이 엉망이어서 나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며, 집이 깨끗해서 나의 가치가 올라가지 않는다. 허둥지둥 많은 일을 해치우면서 나의 내면의 빈 곳을 채우려고 애쓰는 것보다, 모든 일을 다 하지 않아도 나의 본질의 가치는 내가 정한다는 것을 되새기는 여유를 가지면서... 나는 청소하러 간다. ^^